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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리 Feb 07. 2023

귀하디 귀한 집김밥

지금은 김밥천국뿐만 아니라, 고봉민, 김선생처럼 김밥 전문점이 많이 생겼지만 어린 시절 소풍날이면 엄마가 아침에 부지런히 싼 집김밥을 도시락통에 차곡차곡 쌓아 오는 친구들이 많았다. 봉지과자 몇 개와 꽝꽝 얼린 보리차, 음료수는 덤이다. 생일파티에도 김밥은 빠지지 않는 메뉴였다. 여기서 반전은 난 사실 김밥보다는 유부초밥파이다.


그런데 가끔씩 슴슴한 집김밥이 당길 때가 있다. 되게 저렴하고 간편한 한 끼인 이미지와 다르게 속재료 준비부터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내는 그 순간까지 여간 정성이 들어가는 음식이 아닐 수가 없다. 그래서 쉽사리 해 먹지 못하는데 지난 주말에 아빠의 "집김밥 먹고 싶다" 한마디가 날 움직이게 만들었다. (앞으로 1년간 김밥 주문 금지 명령을 내리긴 했지만.)


재료

- 김밥김

- 밥

- 당근 

- 오이 

- 달걀

- 김밥햄 

- 단무지

- 우엉 

- 납작 어묵 

- 시금치


기타 조미료

- 소금

- 간장

- 미림

- 참기름

- 깨소금


김밥 밥 준비

김밥 1줄에 밥 반공기정도를 잡고 밥을 해주면 좋을 것 같다. 평소보다 물을 조금 덜 잡고, 다시마 한 조각 같이 넣어주면 풍미가 살아난다. 고슬밥을 짓겠다고 물을 너무 적게 잡으면 나중에 김밥이 딱딱해진다. 고슬고슬한 밥을 큰 그릇에 옮겨서 한 김 식힌 다음, 소금, 깨소금, 참기름을 넣어 밑간을 해주면 준비 끝. 


김밥 속재료 준비

불이 닿아야 하는 재료들은 양념이 없는 순서 먼저 처리해야 한다. 달걀 지단 -> 당근 -> 어묵 순으로. 지단은 두께감 있게 부쳐서 채 썰었다. 당근은 기름과 소금에 식감이 있을 정도로 살짝만 볶는다. 납작 어묵은 미림과 간장을 동량 넣고 바삭하게 볶아주었다. 열이 닿는 재료들은 꼭 펼쳐서 식혀주는 것이 좋다.


오이는 채 썰어 소금 간을 하고 재워서 아삭한 식감은 살리고 절여지면 물기는 짜준다. 다른 재료들을 볶기 전에 미리 소금을 쳐두면, 볶기 단계가 끝났을 때 알맞게 절여져 있다. 모든 것을 채 써는 이유는 김밥을 먹을 때 속재료들이 좀 더 잘 어우러지는 맛이 난다.


김밥햄은 표시된 결대로 잘라서 끓는 물에 데쳐주고, 시금치 반단은 뿌리를 잘라 줄기부터 끓는 물에 데쳐주면 좋다. 시금치는 약간의 간장과 깨소금, 참기름으로 양념을 해주었다.


단무지와 우엉은 세트로 파는 걸 사 왔는데, 시간 여유가 되면 우엉조림을 만들어서 넣어주면 더 담백하고 고소한 김밥을 즐길 수 있다. (당연한 소리)


김밥 말기

여기부터는 속도전이다. 밥이 너무 식어버리면 김밥이 딱딱해지기 때문이다. 밥을 얼마나 깔고, 속재료를 어떤 비중 넣는지에 따라 김밥의 전체적인 간과 모양이 결정된다. 속재료과 과하게 들어간 요즘 김밥은 집김밥과 어울리지 않는다. 한입에 쏙 들어가야 제맛이다. 나는 밥을 최대한 얇게 까는 편이다. 되려 빈틈을 슬쩍 만들면서 밥을 깐다. 그다음에 속재료는 적당히. 참 적당히가 어려운 것인데 이건 얼마를 넣으라 말하기 참 애매하다.


가장 어려운 관문인 말기. 사실 감으로 후루룩 뚝딱 할 수 있는 부분인데 글로 설명하기는 어렵게 느껴진다. 손가락 끝으로는 속재료가 나오지 않게 안쪽으로 밀어 넣어주면서 손바닥으로는 원통으로 말릴 수 있도록 굴려주면 잘 말린다. 밥알이 묻지 않은 김 끝에는 물이나 참기름을 발라서 마무리해주어야 한다. 중간중간 힘을 주어 모양을 매만져주어야 나중에 김밥을 썰 때 흐트러지지 않는다. 터질까 봐 슬슬 말면 애써 만 김밥이 다 풀려버린다. 참기름을 겉면에 살짝 발라 전체적으로 문질러주면 김밥이 마르지도 않고, 김밥끼리 들러붙지도 않는다.


김밥 썰기

준비한 속재료와 밥이 딱 맞게 떨어질 때의 희열이란! 김밥 7줄이 완성되었다. 평소 먹던 김밥 두께로 썰다 보면 딱 10조각으로 썰린다. 꼬다리는 주워 먹고 동그랗게 썰린 김밥을 동그란 접시에 빙 둘러 플레이팅 할 때 참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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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동안 넷플릭스에서 '선술집 바가지'라는 일본 드라마를 보았다. '선술집 바가지'는 '심야식당'처럼 맛있는 음식과 술 그리고 대화로 하루종일 어깨에 무겁게 지워진 짐을 내려놓고 가는 선술집이었다. 집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돈 받고 파는 것이라 스스로 '바가지'라 이름 지은 선술집이었다. 닭날개 조림, 당근잎 볶음, 고추냉이 장아찌, 두부튀김, 나폴리탄 파스타 같이 소박한 음식을 내지만 손님들은 간단한 주류를 곁들이며 그릇을 싹싹 비운다. 


집김밥도 '바가지'를 씌워도 마땅한 음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꽤나 정성이 들어가는 음식일 뿐만 아니라, 집집마다 김밥을 만드는 속재료와 방법이 다르고, 우리가 잊고 살았던 어린 시절의 한 조각을 떠올리게 하니 말이다. 게다가 추억의 값은 감히 매길 수 없으니 더더욱 바가지를 씌울 수밖에 없다.


난 이번에 소풍날 아침 작은 불 하나만 켠 부엌 한편에서 앉은뱅이 상 하나를 펼쳐놓고 유부초밥을 싸던 할머니를 떠올렸다. 그리운 나의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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