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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리 May 09. 2023

1년 전 나에게 편지가 왔다.

바로 작년, 2022년 3월 5일 토요일 아침 나는 '1년 뒤에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더란다. SY가 예비 신부님이던 시절, 예비 신랑 YJ와 함께 친구들을 위해 준비한 고즈넉한 한옥스테이에서였다.


결혼 준비하느라 바쁠 텐데 이런 공간과 시간을 친구들을 위해 준비한 마음이 참 예뻤다. 더군다나 예산도 빠듯할 것이 분명한데 이날의 모든 비용을 SY가 온전히 부담했다. 그래서 우리도 서프라이즈 선물로 브라이덜 샤워를 성심성의껏 준비했다. 풍선, 커튼, 가랜드, 콘페티, 꽃다발... SY를 생각하며 어울리는 소품들을 고심해서 골랐고, 고생한 만큼 성공적인 축하 파티가 되어서 기뻤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우리 스타일대로 왁자지껄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다들 퉁퉁 부은 눈으로 '1년 뒤에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투숙객을 위한 한옥스테이의 서비스였다. 처음에는 유치하고 낯간지럽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 편지가 다시 내 품으로 돌아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물론 편지를 받을 때쯤엔 그 편지를 썼었다는 기억조차 없지만 말이다.


편지는 시간 맞춰 도착하지는 못했다. 1년하고 한 달 조금 더 넘는 시간이 걸렸다. 사실 얼마큼의 시간이 걸렸든 어떠한가. 편지 봉투에 눌러 적었던 주소로 잘 찾아와, 끝끝내 현재의 나에게 뜻밖의 위로를 전해주었으니.


TO. 2023년 3월 5일 일요일 아침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나는 어제 SY, YJ의 결혼을 축하하며 좋은 공간에서, 좋은 사람들과 편안하고, 힘들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잠들고 아침을 맞이했어.


서로를 참 많이 아끼고, 사랑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니 SY가 YJ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토록 행복해하는 이유를 알겠더라. 오래오래 행복하고, 건강하길. 모든 좋은 일들이 그들에게 향하길 빌었어.


1년 뒤 네가 이 편지를 읽을 땐 무얼 하고 있을까? '1년 뒤 나에게 보내는' 이런 편지엔 늘 비슷한 종류의 고민을 적었던 것 같은데 네 성격상 그런 고민을 여전히 하고 있을 테니 고민을 그만두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


그저 또다시 그런 마음이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이전보다 아주 조금만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길, 그래서 덜 상처받고 빨리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길 바랄게. 넌 그럴 힘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아. 너 자신에 대한 신뢰를 절대 잊지 마!


편지의 전문이다. 그날의 감정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이 친구들과 작년만큼 절친하지는 않다. 오히려 소원해진 것이 맞다. 관계는 다른 모양으로 바뀌었지만, 서로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은 변치 않았다.


작년의 내가 궁금해했던 올해의 나는 퇴사 후 새벽에 잠들고 오후 일어나는 수면 패턴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하루에 1개씩 꼬박꼬박 브런치 글을 쓰고 있던 때이기도 하다. 그리고 걱정했던 상황은 결국에는 벌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편지의 내가 바랐던 것처럼 좀 더 유연하게 잘 대처했던 것 같다. 


TO. 2024년의 나에게


편지가 우편함에 들어 있는 것 봤을 땐 어떤 내용을 썼었는지 아무리 기억하려고 해도 기억이 나지 않더라. 네가 편지를 썼었는지도 까먹고 있었던 게 미안해질 만큼 걱정해 준 덕분에 나는 아주 조금, 진짜 아주 조금 더 유연한 사람이 되어 있는 것 같아. 태풍이 세차게 불 때 나무는 부러지거나 뽑혀버리지만, 갈대는 바람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더라도 결국 땅에 뿌리 박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매사에 전전긍긍하던 20대를 지나, 비로소 밀물과 썰물처럼 들일 건 들이고, 흘려보낼 건 흘려보내는 30대가 찾아온 것 같아. 일상을 살아가느라 네가 편지에 쓴 바램은 기억도 못 하고 실천하지 못했더라도 시간이 그렇게 만들어 주었으니 다행이다.


지금의 난 내년의 나에게 어떤 사람이 되길 빌어줘야 할까? 조금 생각해 봤는데 이렇게 할게. 2024년을 살아가고 있는 나야. 그땐 네 능력을 마음껏 뽐내고, 네 가치가 훼손되지 않는 일을 찾았길 바랄게. 그 속에서 즐거움까지 찾는다면 너무 좋겠어.


아브라카다브라! 말하는 대로 이루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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