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1년, 도쿄 살아보기
딱 1년만 바람쐴겸 도쿄에 살아보려고.
대학을 졸업하고, 이과생으로서 무료한 실험을 피하는 최선으로 보였던 변리사라는 직업, 그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다 한 두 문제 차이로 2년연속 낙방한 후, 도대체 그 업무가 무엇인지, 변리사 업무가 궁금해서 회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들어간 특허법인을 시작으로, 아이스크림 회사와 영국계, 그리고 미국계 상업용 부동산 자문회사를 거치며 분주하게 살던 40대의 어느 날.
문득, 도쿄에서 사는 삶에 대해 단 한번도 깊히 생각해보지 못한채 급작스레 도쿄에 건너오게 되었다.
난 아무런 마음의 준비없이 백수가 된다.
나를 이 삶으로 이끈 가장 강력하게 끌어당긴 것은 148 평방미터의, 심지어 동남아도 아니고 웬 야외수영장이 딸린 빈티지 아파트, 그리고 아들의 인터 스쿨에 대한 달콤한 제안이었다.
도쿄에서
그것도 당시 컨설팅 프로젝트마다 등장했던 공간과 콘텐츠의 매력, 다이칸야마 츠타야.
그 건너편의 벽돌색 아파트는 누가보더라도 마음을 뺏길 수 밖에 없는 자태로 내 마음에 훅 박혀버렸다.
게다가, 당시 초4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는 앞이 보이지 않던 아들의 학습 역량으로부터 해방감을 줄수 있는 자유로운 학풍의 캐네디안 스쿨은 내가 짊어졌던 부모로서의 마음의 부담을 한꺼번에 씻어줄 수 있는 최고의 솔루션이었다. 입버릇처럼 말해오던 "영유없이 3-4학년때 한번 나갔다올꺼야"가 현실에서 이뤄질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꼭 영어의 문제라기 보다는, 가만히 앉아 학습하는 것을 매우 어려워하는 채로 4학년을 맞이하고 있었다.
도쿄에서 내가 할일은 아들을 아침에 라이드해주고, 맛집 검색 후 마음에 드는 미슐랭 가이드에 등장할 법한소바집이나 스시집에서 여유로운 혼밥을 즐기는 것.
오모테산도에 나가 쇼핑을 하는 것.
일본어를 잠시 배우는 것.
이런 삶에 대해, 보통의 한국인이라면, 일단 불안감이 엄습한다.
나름 한량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낯선 시간적 여유를 이토록 가져도 되는지' 에 대한 근본없는 죄책감. 끊임없이 진행된 16년의 학업 + 20년 가까운 회사 생활.
이에 대한 금단 현상은 3주 정도는 매일이 매우 고통스러웠고,
신기하게도 고작 한달이라는 시간이 지나니 말끔하게 사라졌다.
회사 다니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던 나는 (죄송합니다. 근데, 사실입니다. 언젠가는 그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들려드릴께요. 그곳엔 그런 분들이 꽤 계시니. 맛집, 좋은 공간 찾아 취미처럼 많이 다니시지요? 그런게 업무인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회사에서의 팀의 실적을 무척 즐기던 나는, 타고나길 백수에 최적화된 인간임을 깨닫게 되는 데에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은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더 아무것도 안하고 싶은 어느 날은 그냥 누워 섬 햇살이 가득한 도쿄의 하늘을 바라보거나, 또 다른 어느 날은 열심히 긴자를 1번지부터 9번지까지 쇼핑을 즐기거나,
한량의 정점.
대낮의 나마비루!!
맥주 뮤지엄에서 즐기거나, (나는 가끔 그냥 맥주이고 싶다. 임신중 가장 힘든 것이 맥주를 못 마시는 거였다. 반전은 많이는 못마신다. 그러나 너무 사랑한다.)
복잡한 스케쥴로 가득차있던 서울 생활과는 정반대의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주말에도 들러야 하는 경조사 하나 없고, 부모님 또는 친척집을 방문하지 않는
가족과 나에게 올곧이 충실하지만 낯선 라이프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서울 사람들에게 딱 1년만이라도 권해보고 싶은 '초단순 라이프'에 대한 매력을 너무 쉽게 알아버린 것이다.
일본어는 한마디도 못하는 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쿄를 낯설게 느끼기 어려웠다.
워낙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서 생활을 시작한 것도 있지만, "감시 카메라 작동중" 처럼 아무리 한자문화권이라도 이렇게까지 같은 말이 사용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닮아 있는 언어, 어순, 행정절차, 입을 열지 않는한 티나지 않는 룩,
서울 옆에 다른 동네 같은 느낌으로
-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서울, 도쿄, 뉴욕이 한꺼번에 차로 갈 수 있게 붙어 있는 상상- 서울에서 레인보우 브릿지를 건너면 도쿄, 거기서 브루클린 브릿지를 건너면 뉴욕. -
이렇게 시작된 도쿄 생활이 1년을 넘어, 2년, 3년 그리고 올해 벌써 6년을 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