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남자친구가 있을 때마다 그들을 내게 항상 소개해줬다.
처음에는 친구라는 말로 소개해 주셨는데
나는 눈치로 일반 친구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지만
그냥 모르는 척 어머니의 거짓말에 맞춰주곤 했다.
이제 내가 나이 들어감에 따라
더 이상 이성친구라 속이는 일은 없어지셨지만
어머니는 당시의 만나던 남자친구를 아버지라 부르길 강요하시곤 했다.
그런 불편한 만남도 호칭도 내 의견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나는 그냥 어머니의 꼭두각시처럼 행동할 뿐이었다.
한때는 그게 어머니와 나의 평화를 지키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어른들은 나를 마냥 어리게만 보는 건지
아니면 나를 같은 사람이라고 취급하지 않는 건지는 몰라도
나는 내가 알고 싶지 않은 사실들과 사람들에 대해 알아야 했다.
그 사실이 내게 상처가 될 거라곤 어른들은 몰랐었다.
아니면 조심스러워할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도..
명절에 시골에 내려갈 때면
고모들은 내 앞에서 어머니의 흉을 보기 바쁘셨다.
"어린애를 두고 집 밖에 나가다니 미친 X 뭔 X"
"어머니랑 연락은 하니? 뭐 하고 지낸다니?"
"너희 아빠가 얼른 재혼을 해야 할 텐데"라는
내가 들으면 상처가 될 이야기들을 정말 아무렇지 않게 하셨다.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곤 하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말들이 전혀 아니었다.
나는 그 당시에 시골에 간다는 게
갈 때마다 어머니 이야기가 나온다는 게
너무 싫었고 숨이 막혔다.
아버지는 그때마다 항상 나 몰라라 밖으로만 나가셨는데
나는 그 이야기들을 오로지 나 혼자 감당해야 했었다.
그리고 다른 어른들 외에도 부모님은 내게
아버지는 어머니 욕을 하시고
어머니는 아버지 욕을 하셨다.
누가 뭘 했고 누가 이랬고
나는 정말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는데
왜 내가 알고 싶지도 않은 사실들을 내게 이야기하시는 건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부모님의 개인적인 힘듦과 고통까지 내가 짊어지기엔
너무나도 어린 나이였는데
왜 자신의 힘듦과 상대방에게 받았던 상처들을
내게 털어놓고 자신의 마음만 편해지고자 하는 것인지
내가 그걸 듣고 어떤 반응을 해야 하는 건지
나를 조금이라도 배려하지 않는 행동들에 정말 신물이 났다.
부모님과 어른들은 내가 얼마나 힘든지
어떤 감정인지에 대해선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많은 사람들 중 단 한 명도
내 마음을 헤아려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의 나에겐 정말 제대로 된 어른
그 한 명이 너무 필요했는데
나는 그냥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