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과정을 모두 마친 아들과 오랜만에 단둘이서 산책을 나갔다. 15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성취감을 느꼈을 아들이 선뜩 산책길을 따라나섰다. 11월답지 않은 날씨, 한기보다는 더위가 느껴지는 토요일, 그래도 가는 가을이 아쉬워 가을이 잠시라도 머물러 있을 법한 예산 추사고택으로 향한다. 달리는 차 안에서 딱히 할 말이 많지는 않지만 내심 기분이 좋았다. 아들과 단둘이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건,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고택에서 추사의 정취를 하나하나 되짚어 본다. 얼마 전 발목을 다쳤던 아들은 발걸음이 다소 불편하지만 고즈넉한 기와집을 신기한 듯 살피다 담벼락 위에 걸친 빨갛고 노란 형형색색의 단풍에 눈길이 멈춘다.
추사의 창의적인 글씨체에 한번 반하고, 담벼락 단풍에 감탄을 하고, 오밀조밀 달린 감을 보며 자연이 주는 풍성함에 놀란다. 11월의 바람이 이 처럼 포근할 수 있을까. 고택의 주는 풍요로움을 즐기지만 끼니때가 되면 느껴지는 허기는 어찌할 수 없기에 아들과 다시 예산시장에 들러 관광객들 틈에 끼어 국수 한 그릇 뚝딱하며 간단하게 허기를 달랜다. 돌도 씹어먹을 나이의 아들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해 그가 좋아하는 닭꼬치와 달달한 카페모카를 사들고 동네 가까운 공원으로 이동한다. 캠핑의자와 테이블을 간단하게 펼치고 사 온 음식들을 세팅한 후 나무 가지 사이로 따뜻한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우리들만의 시간을 갖는다.
포장해 온 닭꼬치의 달달함과 고소함은 말할 것도 없고 아들과 한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어서 얼마나 귀중한 시간인가.
중학교 과정을 마치는 아들과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아주 다양했다.
고등학교 진학, 수능, 영어 공부 방법 및 노하우, 클래식, 아이돌 음악, 쇼펜하우어, 미래의 직업, 여행, 쉼, 글쓰기의 중요성, 브런치 활동이 돈이 되는지 등...
내가 아들이 나이였을 때, 나는 아버지와 그런 대화를 해보거나 어디를 같이 다녀 본 기억이 없다.
그 시절의 아버지들이 대부분 그러했듯 선친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 대화도 산책도 못해본 것이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그때를 원망할 이유는 없지만 내가 이제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고 그때의 내 나이가 된 아들을 볼 때면 그 시절 아버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세월이 흘러 아버지로서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