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낯선 메시지가 한 동안 연락 없던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아버지가 위독하시다. 임종 잘하실 수 있도록 기도부탁한다!"
메시지를 받고 몹시 혼란스럽다. 불과 얼마 전에 그의 아버님이 고향 왜관에서 샤인머스캣 농사를 지으신다는 말을 들었고, 그리고 포도가 풍년이라고 한 박스씩 사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도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그의 아버님이 위독하시다는 메시지에 온종일 마음이 무거운 상태로 퇴근을 했다.
저녁을 보내고 밤자리에 들 무렵에 마침내 부고를 받았다.
곧이어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버지, 소천하셨다!"
"아.. 그랬구나! 더 연락이 없어서 한고비 넘기신 줄 알았는데. 어쩌냐! 니 밥은 먹었나? 기운 내라"
날이 밝자마자 약속되어 있던 일들을 서둘러 마치고 대전, 추풍령을 넘고 구미를 지나 칠곡으로 향하고 있다.
북구미 IC를 빠져나오자 큰 대로 옆으로는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겨울 시골 마을겨울에는 어둠이 찾아오고 있다.
멀리 산 밑 허름한 집 굴뚝에 연기가 피어나는 정겨운 모습도 오랜만이다.
그런 모습도 잠시, 30년 지기 친구와 함께 한 많은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른다.
그와 나는 대학교 4년 동안 늘 붙어 다녔던 친구다. 나와는 정반대의 성향을 갖고 있다. 극 E인 그와 극 I인 내가 어쩌다 보니, 군 복무 기간을 제외하고는 대학생활 내내 같이 다닌 것도 영원한 미스터리다. 그런데 그런 그와는 IMF가 세상을 뒤집어 놓고 어수선한 상황에서 아무 계획도, 정보도 없이 1999년도에 함께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떠난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더욱이, 첫 직장도 같은 회사를 다녔으니 더 이상 그와의 질긴 인연을 어떻게 더 설명할 수 있을까
요 며칠 업무스트레스와 여러 번잡스러운 일 탓에 피곤했으므로 충남 홍성에서 경북 칠곡 왜관까지 왕복 430km라는 물리적 이유를 핑계 삼아 편리하게 계좌에 부의금 송금하고 위로랍시고 카톡 메시지 간단하게 몇 자 보내고 끝낼 수 있겠다 싶었지만, 세상의 그런 편리함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우리들만의 그 무엇이 있었다.
결혼 전 나도 한 때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 때가 있었다. 가족의 도움은 물론 다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처참한 상황에 처해있을 때, 그는 아무 말 없이 그의 공간을 내게 내어줬고, 내가 눈치 보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아무런 조건 없이 도와줬다.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늘 옆에서 격려를 해주고 믿어주었다.
시간이 흐르고 생활이 안정이 되어 갈 무렵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면서 내게 또다시 두 번째 인생 난관이 찾아왔다. 이때도 아무 조건 없이 당시 본인도 부담되었을 금액을 흔쾌히 빌려주었고 결국 그 돈으로 종잣돈 삼아 다시 모든 걸 회복할 수 있었다. 물론 친구가 빌려 준 돈은 오래지 않아 이자까지 붙여 갚았다.
그 후로 각자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고 비록 멀리서 살고 있어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어쩌다 만나는 날에는 힘들었던 옛날 얘기도 이제는 추억이 되어 웃을 수 있고,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로부터 급하게 전화가 걸려온 적이 있다.
"000야 미안한데, 나 딱 한 달만 쓰고 줄 테니까 돈 좀 빌려 줄 수 있나?"
친구의 질문에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얼마나? 계좌 불러!"
(솔직히 다시 못 받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가장 힘들 때 그 친구는 아무 조건 없이 도와준 친구이기에 그렇게라도 그때의 고마움을 갚고 싶었다.)
그리고 한 달 뒤 친구는 약속된 날짜에 다시 송금해 줬다.
삶에서 가장 치열했던 20대, IMF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세상이 뒤집혔을 때 세상으로 첫발을 내딛어야만 했던 우리들, 그 무렵 우리는 그렇게 세상과 맞짱을 떠야 했고 그 외로운 길에 우리는 함께 할 수 있어 버텨냈고 결국요란했던 20대의 젊은 날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종교적으로도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고
인생 가장 낮은 곳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오준 그
아버님의 소천 소식을 가장 먼저 나에게 알리는 그의 목소리, 낮은 떨림으로도 전해지는 그의 슬픔이 그대로 느껴진다.
친구 아버님이 주신 마지막 선물 덕에 말로만 들었던 친구가 태어나고 뛰놀며 자랐을 왜관을 달리고 있다.
(대문사진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