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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드 Feb 29. 2024

좋은 회사를 만났다는 신호

그래도 회사를 좀 다녀보니 이런 것 같더라


조금 부끄럽지만 나는 한 직장에서 2년을 넘긴 적이 없다. 오래 근무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하지만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매번 생겼다. 하지만 직장을 자주 옮겨봤기 때문에 인사경영을 전문적으로 알지 못해도, 인맥이 좁아 주변에서 유효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어도 나름대로 ‘다닐 만한 회사’에 관한 기준을 세울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비전문적이고 틀릴 수 있으나 내 경험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먼저 내가 다니기 싫었던 회사들이 공유했던 특징을 적어보겠다.


1. 법을 어기거나 편법을 쓰는 회사

법을 제대로 존중하지 않는 회사는 무조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블랙 기업’의 면모들은 각종 사이트에 휘황찬란하게 나와 있고 그중엔 경이로운 이야기도 많은데, 내가 겪은 건 그에 비하면 소소하고 심지어 보편적인 편이다. 하지만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고 하지 않나. 관행이나 시스템이 더 안 좋아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기 때문에 나는 1번에 속하는 회사에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다.


그러니 이런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사가 만료 기간이 임박한 연차를 소진하라고 독려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이유로 연차 사용을 강요한다든가, 업무 능력에 이상이 없는 비정규직 혹은 파견직 직원을 단지 정직원으로 만들어주기 싫어서 내보낸다든가, 신성한 근로계약서에 장난을 치는 등(예: 갱신된 연봉 금액에 퇴직금을 은근슬쩍 더하기) 은근하게 얄미운 짓을 하는 회사는 조심해야 한다. 이런 ‘업보’가 쌓이면 점점 회사에 다니기 싫어지고, 경험상 그만큼 업무 집중도도 떨어지는 것 같았다.


2. 마이크로매니징이 심한 회사

예를 들어 근태를 점검하기 위해 지문 인식 기록을 매달 확인하고 직원들의 서명을 받는 건 조금 빡빡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마이크로매니징까진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직원이 한 달에 커피 머신의 캡슐을 10개 이상 소모했는지 체크하는 건 솔직히 치졸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현대인의 커피 섭취에 제한을 걸다니! 실제로 이런 일을 자행했던 회사는 커피 머신 외 믹스커피와 차 2종류만 제공했으며 카누는 있지도 않았다.


한편 직원이 업무 시간 내에 감당할 수 있는 업무량을 확인하고 점검하는 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각자 그것을 기록하고 조직장들이 종종 확인하며, 기록되지 않은 날짜의 데이터를 채워달라고 알림을 주신다. 그런데 매일 매니저에게 내가 오늘 하루에 해치운 분량과 그다음 날에 할 예정인 일의 분량, 오늘 회사에서 즐겁고 힘든 일은 뭐가 있었는지 퇴근 전 강제로 보고하는 건 다른 문제라고 본다. 일이 몰릴 때도 있지만 숨을 돌릴 여유가 생길 때도 있으며, 대부분 회사를 무덤덤하게 다니지 그 안에서 ‘야호, 신나는 일!’, ‘아이고 이건 힘든 일이네ㅠㅠ’ 같은 감상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는단 말이다. 심지어 즐거운 일이 없어서 없다고 적었는데, 너무 일기처럼 적지 말라고 뭐라고 한다면? 거짓된 감정 노동까지 시키는 마이크로매니징을 반길 직원은 아무도 없다. 나는 지금도 그 회사가 왜 이런 일을 강제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3. 나를 아프게 하는 회사

어떤 식으로든 개인의 건강을 갉아먹는 곳에는 있으면 안 된다. 우리는 어쨌든 살아보자고 노동을 하는데, 나를 병들게 하고 심지어 죽이려고 하는 회사에 있을 이유가 없다. 우리는 모두 독보적이며 소중한 존재다. 그것을 존중해주지 않으며 나를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위협하는 회사는 그릇된 곳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좋은 회사의 객관적인 조건은 합리적인 수준의 연봉, 워라밸 확보가 가능한 환경, 꼰대 없는 문화 등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그런 당연한 이야기 대신 내가 다닐 만한 회사, 오래 다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는 회사를 만났을 때 개인적으로 경험한 것들을 소개하겠다. 


1. 추가 근무가 억울하지 않은 회사

심정적으로 1분이라도 더 있기 싫은 직장이 있는 반면, 기꺼이 몇 시간 정도의 야근은 감당할 수 있는 회사가 있다. 내 경우 업무량의 편차가 굉장히 심해서 주중에는 바쁘지 않다가 주말에 급하게 일감을 처리해야 할 때가 있다. 마감일 협의 없이 날아온 업무를 당일에 끝내야 하는 경우도 꽤 있다. 나는 내 시간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고 나의 워라밸은 돈보다 훨씬 소중하다고 믿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 주말이나 저녁의 일부를 회사 업무에 할애하는 게 그다지 억울하거나 기분 나쁘지 않다. 그럴 때 나는 이 회사에 내가 호감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2. 유능하면서 인간미 있는 상사가 있는 회사

많은 이들이 일보다 사람이 힘들어서 직장을 나온다고 하고, 나를 괴롭히거나 업신여기는 조직장이나 직급 높은 누군가가 있다면 정신적 수명이 줄어든다. 그런 만큼 나와 잘 맞고 좋은 상사를 만나는 건 정말 중요하다. 나는 지금까지 나에게 별 관심이 없거나 가르쳐줄 것이 없는 상사를 보았는데, 경험상 회사와 사람 모두에 기대할 것이 없으면 당연히 애착을 품을 수 없고 자연스레 이직할 계획을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분야가 달라도 유능한 상사를 발견하면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진다. 내 직무와 연관되는 분야가 아님에도 그 상사의 유능함을 내가 알아차렸다면 그에겐 전문성을 제외하고도 훌륭한 점이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그의 인간성을 엿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일 잘하고 강강약약인데 사람 냄새도 풍기는 조직장은 귀하다. 개인적으로 지금 내가 그런 분을 보고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3. 월요일을 덤덤하게 맞이하게 하는 회사

월요일이 오는 게 너무 싫어서 일요일 밤에 잠이 안 온다거나 출근하기가 너무 싫어서 문득 사고라도 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경험, 무척 불행한 일이지만 이런 걸 경험한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사실 비정상적인 일이다. 회사에서 하루에 최소 9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이런 느낌을 경험했다면 실상 인생의 상당 부분이 증오스럽고 포기하고 싶다는 뜻일 터다.


일요일이 지나면 당연히 월요일이 오기 마련인 이 시간의 흐름을 두렵게 하는 회사는 정말 유해하다. 오래 다닐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 회사에 재직하고 있으면 월요일이 와도 별 감흥이 없다. 피곤하다거나, 더 늦잠을 자고 싶다거나, 날씨도 안 좋은데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보다 더 부정적으로 사고가 발전하지는 않는다.


자연을 혐오하게 하는 회사가 있다면 나올 궁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은 결코 자연을 바꾸거나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회사에 별 악감정 없이 무난하게 다닌 적이 없는 듯하다. 과연 고생 끝에 낙이 오고 소시민에게도 사필귀정의 축복이 떨어지는 모양이다. 부디 모든 사람이 좋은 회사를 만났다는 신호를 주는 곳에 오래 다닐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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