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살아가기
"넌 지금 실패한 거야"
2016년 여름 서울의 한 자취방
아버지는 첫 직장을 퇴사하겠다는 나의 말에 실망한 눈빛으로 현관 밖을 나가셨다. 나는 퇴사가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실패와 친해져야만 더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근데 이날 아버지에게 들은 '실패'에 대해선 반박할 용기도 없었고, 오히려 스스로에게 부끄러웠다. 왜 그런 걸까?
어릴 때 학교를 다니다 보면, 자기가 하고 싶은 걸 꾸준히 찾는 친구들이 보였다. 자신만의 리더십과 소통 능력을 발견해 반장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 프로그래머의 꿈을 가진 친구, 운동을 하다가 선수의 꿈을 가진 친구처럼 말이다. 반면에 나는 목표도 꿈도 생각하지 않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나마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는데 당시에는 컴퓨터로 그림을 그려 다음이나 네이버 카페에 공유한 후, 사람들과 소통하는 걸 좋아하는 정도였다. 딱 그 정도?
나는 우리 어른들과 사회가 만들어낸 프레임 속이 너무나도 편했다. 그냥 어른들이 정해주는 방향에 맞춰 살아가면 내 인생은 큰 문제없이 행복할 거라 생각했다. 어른들은 외쳤다. 일단 고등학교는 무조건 인문계로! 대학은 인서울! 전공은? 비전이 좋은 곳으로! 직장에 들어갈 땐 연봉이 높을 거라고! 얼마나 편한가? 몇 년간의 목표가 이렇게 단계적으로 정해지다니... 지금 돌아보면 오류인 부분이 참 많지만, 아무런 목표가 없던 나는 별생각 없이 받아들였다.
근데 문제가 생겼다.
이런 단계도 결국 성적이 좋아야 하는 건데... 내 성적은 항상 바닥을 치고 있었다. 집에선 성적 관리를 위해 여러 학원들을 알아봤지만, 난 결국 공부와 친해지지 못했다. 그렇게 중학교 생활이 끝나갈 무렵,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갈 수 없다는 결과를 받게 되었고 이 소식에 어머니는 울음을 터뜨리셨다. 나는 어머니의 눈물에 당황해 어쩔 줄 몰랐고, 곧바로 방에 들어가 이불 속에서 벌벌 떨었다. 뭔가 내 인생이 크게 망하기 시작했다는 불안감으로 가득 찼다. "인문계를 못 갔으니 대학은 갈 수 없겠지...? 나 공장 들어가야 하는 거야?" 그렇게 아무 목표가 없던 나는 어른들이 정해준 길을 잃을까 봐 두려워했다.
그렇게 나는 동네 외곽 쪽에 위치한 상업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부모님은 실업계 전형으로 대학을 가는 방법을 제안했다. 나와 성적이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과 경쟁을 하면, 가능성이 있다고 믿으셨나 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더니! 그래.. 인문계는 가지 못했지만, 이곳에서 잘하면 대학에 꼭 갈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안도하며 다짐한 나였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공부를 시작한 나는 여전히 대학에 갈 이유도, 전공도 찾지 못했다. 그냥 대학 졸업장 하나가 취업에 큰 영향을 준다는 말에 꽂혀서 열심히 했던 거 같다. 그렇게 나는 대학에 갈 수 있는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생활이 마무리되어갈 때쯤, 대학 원서접수 시즌이 찾아왔다. 다행히 실업계 전형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은 꽤 있었다. 막상 원서 접수를 하려니 전공을 무엇으로 선택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경영학과? 수학은 싫은데... 산림환경자원학과? 여긴 대체 뭐 하는 곳이지? 그러다 하나의 학과가 눈에 팍 하고 들어왔다. 바로 시각디자인 학과다. 평소 그림 그리기에 관심이 많던 내게 딱이지 않은가! 게다가 실기 없이 수시 지원이 가능했던 곳이었다. 나는 눈을 반짝이며 원서를 접수했고, 시간이 흘러 결과를 발표하는 날이 찾아왔다. 나는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합격자 발표 버튼에 마우스를 올렸다. 이렇게나 긴장을 했던 적이 있을까... 그래 질러보자 (딸깍)
.
.
.
.
불합격
세상에서 가장 뼈아픈 글자였다. 다행히도 다른 학교의 경영학과는 합격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대학 입학의 목표는 이룰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남들이 정해준 목표에 맞춰 살아오던 내가, 이곳에선 뭔가를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기에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래도 부모님은 내가 합격한 대학교에 꽤나 만족하신 듯했다. 그래... 뭐 경영학과도 나쁘지 않을 거다. 지인 중에서도 경영학과를 나와 대기업에 취직했다는데 어떻게든 길은 생기지 않겠나. 또 안일한 상태로 대학 생활을 상상하며, 시간을 보내는 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스마트폰에서 모르는 번호가 울렸다.
"안녕하세요 XX대학교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지원했던 디자인학과에 추가 합격 소식을..."
그렇게 나에게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대학 생활은 꽤 재밌었다. 중고등학생 때처럼 여러 과목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없었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 결과물을 만들어 가는 작업 방식도 잘 맞았다. 애초부터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계획한 결과는 아니었지만, 뭐 어떤가 결국 잘 흘러가고 있지 않은가? 나는 나름 대학 생활을 열심히 이어갔다. 장학금도 꾸준히 받았고, 전공에 크게 활용되지 않았던 동영상과 3D 프로그램을 추가적으로 배워, 남들이 표현하지 못하는 기술을 습득했다. 게임으로 치자면 밸런스가 균형 있게 잡혀있는 육각형 능력치의 캐릭터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대학 생활도 서서히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4학년 2학기에 들어설 때, 나는 한 학기를 더 보내기보다는 반년이라도 빠르게 취업하여 경력을 쌓고, 돈도 벌고 싶었다. 학과 부회장의 경력도 있고, 나쁘지 않은 대학 생활을 보냈다 생각했는데... 취업할 용기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그 흔한 인하우스와 에이전시를 구분하는 방법도 몰랐다. 결국에 나는 또 중고등학생 때처럼 내가 처한 상황을 해결해 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역시 수동적으로 살아온 사람이 한순간에 달라지는 건 쉽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교수님의 추천으로 서울 강남에 위치한 한 3D 에이전시를 추천받게 되었다. "교수 추천으로 취업하면 망한대"라는 소문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난 그들과 다르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솔직히 그 회사가 나와 잘 맞을지 걱정은 됐지만 일단 부딪혀 보자는 마음으로 취업을 결정했다.
그렇게 나의 첫 직장 생활은 예상했던 대로 순탄하지 않았다. 에이전시 특성상 야근과 철야가 일상인 점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내가 이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깨닫지 못했다. 나름의 목표가 있어서 이곳에 온 거라고, 스스로를 속여가며 선택에 책임을 지고 싶었다. 사실 그건 나의 목표가 아니었는데 말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하고자 하는 것에 특별한 목표는 없었다. 매번 누군가에게 의지하려 하고, 방향을 제안해 주기 바라는 어린아이였다. 그러나 첫 직장에 근무하는 순간에도 이 사실을 제대로 깨우치지 못했다. 난 그저 일이 힘들고, 연봉이 짜다는 이유로 사직서를 썼다.
집안에서의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 좋지 않았다. "다들 그렇게 버티고 사는 건데, 그걸 못 하고 나와?" 어른들의 세계에선 내 선택이 철이 없게 느껴질 것이다. 난 그렇게 첫 직장을 나온 이후에도 남들 시선을 의식했고, 한참을 빙빙 돌고 나서야 목표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목표 없는 삶을 살다 보면 하루하루 의미 없이 버티는 날이 많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수동적인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 상태를 최대한 빠르게 인지하고 고치려고 노력한다. 그 과정은 여전히 어렵지만... 현재의 모습이 과거의 모습보다 더 마음에 든다는 것이 큰 힘이 된다.
목표는 생각지 못한 상황에서 찾아오기도 한다.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생각하다가 정해질 수도 있고, 직업 또는 사소한 상황, 그리고 당장 이루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하다가 마주할 수도 있다.
또 목표는 우리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이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관찰이 꾸준히 필요하다. 나는 이전에도 브런치에서 글쓰기 도전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일에 치여 금방 잊혀졌고 몇 년을 돌아 오늘날 글쓰기를 도전하고 있다. 김미경 선생님은 자신의 꿈을 찾으려면 수십억의 돈이 들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브런치는 돈도 필요 없다. 꿈으로 발전하는 걸 기대하지 않지만, 재미있는 취미로 남기만 해도 살아감에 있어 큰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나도 글을 읽는 당신도 작은 것부터 하나씩 목표를 세워보자 다양한 기회가 열릴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