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에 사는 이모가 나에게 신발을 선물해 준 적이 있다. 캐나다에 올 때 가져왔다. 토론토에 있을 때 애지중지하고 안 신고 있다가 1년이 지나서 밴쿠버로 이사 와서 신어보았다. 안타깝게도 평소 내가 신는 신발 사이즈보다 좀 작게 나왔는지 엄지발가락이 아팠다.
사회복지사로 일할 때의 일이다.내가 일했던 센터에는 특히 패션에 관심이 많은 노숙자들이 많았고 그래서 일하러 갈 때 가끔 안 쓰는 옷들과 가방을 donation 물건으로 가져가는 재미가 있었다.
이곳 센터의 패셔니스타 중에 제일은 cindy였다. 신디는 마약류의 일종인 canabis 중독자다. 성격이 괴팍하고 포악한 싸움꾼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가가기 어려워하는 성격을 가졌다. 안타깝게도 장기 흡연으로 심장근육에 산소결핍이 돼서 무거운 산소통을 들고 다니는 53살의 중년 여성이다. 요새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동맥경화증이 생겨서 병원까지 다니는 상황이었다.
신디가 센터로 들어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센터에 새로 들어온 물건 구경하기. 어찌나 신발에 욕심이 많은지 맨날 보면 다른 신발을 신고 있다
이번에도 내가 가져간 신발을 제일 먼저 알아본다.
저 핑크 신발 내가 가질 거야 나 신발 없는 거 알잖아
뻔뻔하게어제도 새로 들어온 부츠를 바로 가져가놓고 신발이 없다고 빨리 달라고 재촉하는 신디. 갖고 싶은 것을 못 가지면 욕하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것을 나와 같이 일하는 옆에 동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우리는 사이즈라도 안 맞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 신발이 가기를 기대하면서 조심스레 신디에게 물어보았다.
사이즈 8인데 괜찮아?
나 8이야 완전 딱이지!
어쩔 수 없이 이번에도 그 신발은 신디의 것이 되었다. 사람들이 더 몰려오기 전에 옆 동료와 잠깐의 상의 후 신디에게 그 분홍신발을 건네주니 아니나 다를까 신발을 받고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걸음아 나 살려라 바로 신는다. 성질 급한 신디. 한국인의 피가 섞였는지 빨리빨리를 너무 좋아한다.
(동족은 동족을 알아본다고 그래서 내가 신디에게 더 정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Cindy. 햇볕이 쨍쨍할 때 선글라스는 기본 장착탬이다. 평소에는 액세서리도 주렁주렁하고 다닌다
새 신발을 신고 좋다고 실컷 밖에 돌아다니고 잠에 든 신디
그 사람의 옷 입는 스타일이나 좋아하는 색을 보면 대충 그 사람의 성격도 보인다. Elizabeth는 army무늬나 호피무늬를 좋아하는 괄괄한 여장부 같은 성격이다. 나와 옷 입는 스타일이 비슷한 앨리자베스에는 절대로 노란색, 핑크색 옷은 입지 않는다. 평소에 잘 안 입는 레깅스와 호랑이가 그려져 있는 티셔츠를 가져간 적이 있는데 그것들은 모두 이 엘리자베스의 소유가 되었다.
캐나다로 퍼진 나눔 실천
이곳에서 일할 때 안 쓰는 물건을 가져가서 나눠주면 한국에 있을 때 활발히 했었던 당근마켓 나눔을 할 때 생각이 든다. 실제로 당근마켓 앱도 캐나다에 진출 한지 오래다. 며칠 전 내가 사는 동네로 설정하고 올라오는 물건들을 유심히 눈여겨보았다. 올라와있는 아이템들이 생각보다 별로 없었다. 캐나다 사람들에게는 아직은 당근마켓 이 보편적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근마켓의 취지를 생각해 보면 이웃과 옹기종기 밀집되어 사는 한국에서 인기가 더 좋은 것 같다.
어쨌든, 당근에서 안 쓰는 물건 나눔도 많이 했지만 나도 좋은 이웃들로부터 받기도 많이 받았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물건을 공짜로 받으면 기분이 정말 좋았던 것처럼 여기 노숙자 들도 내 나눔으로 행복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행복해지는 순간들도 많았다. 나에게 나눔을 실천할 수 있게 해 도와주고 더불어 사는 것의 행복을 느끼게 해 준 이곳 노숙자 센터 사람들에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