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김상진
한마디로 ‘인간애’다. 가족이나 친구나 동료 이웃들에 대한 ‘청년 김상진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케이스다. 전방 군대 생활할 때 같은 내무반에 폐병을 앓는 부하 사병이 있었다. 부모님이 면회 오실 차비조차 없을 정도로 가난해서 약을 사 먹지도 못했다. 군대에서 치료해주지도 않는 상황이라 거의 무방비 상태로 앓고 있었다. 피를 토하는 모습을 보고 김상진은 사비를 들여 약을 사 먹이고, 힘을 내라고 고기 국밥을 사 먹이기도 하는 등 군대 생활 내내 끝까지 챙겼다. 이 사병은 몸을 다시 건강하게 회복했다.
두 번째로는 아마 죽을 결심을 하고 난 직후인 듯하다. 한 1주일 전쯤엔가 그때 결혼한 둘째 누님댁을 찾아간다. 둘째 누나가 당시 여러 사정이 얽혀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웠을 때인데 그게 마음에 밟혔나봐요. 열사가 찾아가서 가지고 있던 용돈(그러니까 일반적인 용돈 금액을 넘어서는)을 누나에게 건네면서 아이들 과자 사주라고 이야기를 하며 돌아섰다.
세번째 이야기는 동료 선·후배 배려하기다. 의거 전날까지 살았던 써클 한얼합숙소 ‘푸른여관’에는 방이 7~8개가 있었다. 2인 1조 방 배정을 할 때 동료 후배에 대한 배려가 돋보이는 장면이 있다. 권오섭이라고 하는 후배가 다리를 다쳐 기브스하는 바람에 소변, 용변이나 일상활동을 방 안팎으로 꼼짝없이 처리해야 했다. 누군가는 옆에서 그 역할들을 도와야했다. 아마 방 배정을 할 때 권오섭하고 같은 방 룸메이트 되는 거를 알게 모르게 꺼리는 분위기가 있었겠죠. 그런데 복학생이자 최고참인 김상진이 ‘내가 오섭이랑 같이 지내겠다’ 해서 룸메이트가 된다. 그 방에서 뒷수발 들고 할복의거 당일 아침까지 후배를 챙긴다.(권오섭의 회고)오섭은 의거 전날 기부스를 풀었다. 혼자 걸을 수가 없었다. 상진이 가방메고 어깨동무 해서 학교 대강당 계단 앞까지 데려다준다. 그리고 잠시 기다렸다가 잔디밭으로 걸어 나가 연설 하고 할복 한다.
[질문4_1]
책을 준비하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나 감동적인 순간이 있었다면?
50주년기념사업 추진위원장으로 한참 일하는데 한 여자분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누구십니까? 그랬더니 김상진 열사가 결혼까지 약속하면서 열렬하게 사랑했던 연인의 둘째 여동생이라는 거예요. 메시지 주고받다 가서 만나본 자리에서 슬프고 감동적인 얘기를 들었다. 김상진 아저씨가 낭만적이고 문학정서도 깊은 데다가 속마음이 따뜻해서 큰언니뿐만 아니라 자기하고 바로 위에 언니까지 자기는 그때 중학생이었는데 정성을 다해서 보살펴주고 아껴주었던 뭉클한 장면들이 기억이 난다. 함께 등산 갔을 때 나뭇잎에 낭만적으로 편지 글도 써서 언니에게 바치는 모습, 이런 거를 액션플랜이라고 해야 되나요? 이런 장면들을 보고 상진아저씨를 좋아하고 존경했다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그래서 아! 상진형은 참 따뜻한 인간성을 가진 사람이구나 또 확인이 되는 순간이었죠.
더 극적인 장면이 있어요. 그렇게 결혼까지 약속했던 사랑하는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조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할복자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큰 언니가 맞이해야 됐던 황망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겠죠. 그 슬픔을 견디느라 큰 언니는 내면으로 가라앉았고 이후 식구 어느 누구도 상진형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았고 언니도 꺼내지 않으셨다고 합니다.그렇게 언니는 모든 삶을 삭히다가 한 10년쯤 전에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하시더라고요. 마지막에 가족들을 한 분 한 분씩 들어가서 임종을 보라고 얘기했을 때 들어가서 “언니! 내가 마음껏 김상진 아저씨에 대해서 얘기 할께” 하면서 얘기를 주고받았다고 해요. 언니는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회고하니까 언니 눈가로 눈물이 쭉 이렇게 흐르더랍니다. 그리고는 떠나셨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 분은 김상진아저씨가 집에만 오면 늘 앉아있던 ‘뚜껑 열리는 의자’를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세 자매와 열사에 관한 그런 애틋한 인간미, 서로가 서로에 대했던 온 정성, 그 따뜻한 인간미들이 돋보인다. 가슴 뭉클하고 절절했던 사랑의 서사도 맛보았다. 굳이 모른 척하고 넘어가도 될 상황이나 저간에 대해서 일으켜 세워주고, 어루만져주고, 보태주고, 격려하고 그러면서 일을 함께 실행했던 모습들이 김상진의 감동적인 면면이 아닌가 생각한다.
#1975.김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