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김상진
간절히 원하고 바라면 상상하던 것들이 이루어진다고 했나요?
<1975.김상진> 다큐멘터리 영화를 3년 반에 걸쳐 만들고 작년 올해 김상진 열사 50주기 기념사업 추진위원장으로 일하면서, 더 깊숙하게는 대학 입학하던 1979년, 서울농대의 전설이었던 ‘김상진열사 할복’ 역사를 만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제 마음속에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있습니다. 이른바 ‘김상진학(學)’입니다.
1975년 4월 12일, 할복의거 다음날 운명하자 박정희 유신정권은 시신을 탈취, 장례도 치르지 못하게 하고 화장을 하고 모든 언론을 통제했습니다. 그로 인해 국민들은 김상진 열사 의거를 함께 호흡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시대적 폭압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 들은 열사로부터 영향을 받고 운명을 개척하면서 한국 민주주의는 한 발짝 두 발짝 때로는 혁명적으로 진전을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학생운동의 출발점’이면서 ‘민주주의의 불사조’처럼 영원히 살아 있는 김상진에 대한 연구와 논제설정, 새로운 발상으로부터 나오는 다양한 콘텐츠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참 아쉬웠습니다.
중요한 고비 고비마다 마음속에서 민주화를 향한 ‘누름단추’로 늘 작동을 했지만 ‘조국의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길이라면 보잘것없는 생명 바치기에 아까움이 없노라’ 일갈했던 열사의 삶의 무게만큼 사회적 의제로 정립하지는 못했습니다. ‘김상진학(學)’ ‘김상진논(論)’이 활개치고 김상진을 중심으로 원심력과 구심력이 동시에 작동하는 스토리가 ‘실생활 민주주의’로 퍼져 나가는 꿈을 꿨습니다. 50주년 기념사업 준비하는 중에 한 선배님과 그 따님의 노고로 할복 당시 시점 현장 육성(원본테이프)을 50년 만에 기증받았습니다. 마음속에 뜨거운 게 올라왔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바라던 꿈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게 아닌가 싶은 만남이 있었습니다. 김상진 열사의 둘째 누님, 그러니까 9남매 중에 여섯째가 김상진이고 위로 큰형님 둘째 형이 있고 누님이 세 분 계셨고 아래로 여동생 세 분이 있습니다. 둘째 누님의 외손녀 백승이 양이 두어 달 전 제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우연히 김상진 열사가 외할머니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검색을 하다 보니 다큐멘터리 영화도 있고 감독이 저라는 사실을 알고 전화를 한 것입니다.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남은 8남매를 소원하게 만든 시대의 아픔, 남모를 트라우마와 고민 속에서 마음을 풀고 함께하고 연대하고 뜻을 모으는 계기로 50주년을 맞이하자 의지를 맞추고 있습니다.
백승이 양을 만났습니다. 올해 대학교 4학년으로 도서관학 전공하고 있고, 집중해서 고민하는 분야가 ‘역사’, ‘기록’이랍니다. 기록의 중요성을 충일하게 받아들이고 글을 쓰는 소질도 있어서 출판사의 제안으로 동화와 관련한 책도 출간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도서관에서 오래된 역사적 기억을 찾아서 정리하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던 차에 김상진 열사가 외할머니의 동생이라고 하는 사실을 재작년에 알게 되고 할머니를 모시고 이천 민주화운동공원묘지에 다녀왔습니다. 할머니가 한을 풀었다고 말씀하셨고 다녀 오신 지 열흘 만에 외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큰 아픔과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백승이양은 그때부터 우리 역사에 김상진이란 할아버지가 계셨고 외할머니의 동생이라는 걸 알고 호기심이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검색 경로를 해서 장편 다큐멘터리<1975.김상진>이라는 영화를 검색했고 그 감독이 저구나 싶어 연락을 했다고 그랬습니다.양재동 모 카페에서 기록의 중요성, 남으신 8남매의 의미,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김상진이라는 인물이 지닌 오롯한 의미의 재구성, 50년 시·공간의 의미를 알기 쉽게 이야기 나눴습니다. 커피가 유난히 달달하고 맛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친구가 논문도 써야 하고 이후로도 계속하고 싶은 일이 ‘기록과 관련한 일’을 하고 싶다고 하길래 제안을 했습니다.논문 주제와 평생 걸어가고픈 학문과 실행방법으로 ‘김상진 학’을 하면 어떻겠는가? 할아버지이시기도 하니 그 핏줄이 열사의 뜻과 지향을 찾아서 연구하고 탐구하고 영역을 넓혀가는 작업은 매우 의미가 있을 것 같다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반색을 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도 주제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고민했다고 하거든요.가장 최근에 살펴본 키워드가 ‘역사의 조연’이었답니다. 역사 속에서 주인공 주연만 있는 것이 아니었고 그 주연이 빛나게 도왔던 조연의 역할들을 콕 집어서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승이양 ‘생각의 틀’이 상큼·발랄했습니다. 감독님 말씀을 듣고 보니 할아버지 김상진 열사의 뜻과 꿈과 지향을 탐구하는 공부와 학문적인 실천이 중요하고 평생을 두고 해야 할 일로 고민을 하겠다고합니다.굉장히 반가워하고 즐거워했습니다.
야무진 꿈과 실재하는 소질(글쓰기)도 있고 역사와 사회를 헤아리는 시선, 의지도 신선합니다. 거기에다 상진 형님의 핏줄이라는 느낌이 보태지면서 ‘아 이 친구가 우리가 꿈꾸었던 ‘김상진학’ ‘김상진론’을 체계적으로 풀어가는 중심 역할을 하겠구나’ 짐작했습니다. 더하여 우리 김상진기념사업회는 알차고 능력 있는 젊은 실무자를 얻게 되는 게 아닌가 생각을 했습니다. 50주년 준비를 하면서 가족 상영회를 기획하기로 했습니다. 그 자리에 기념사업회 회원들도 참석하여 우애를 다지고 또 50주년 행사에 어떻게 서로를 가늠할 수 있을지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승이양을 만나고 김제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아~ 이렇게 일이 이루어지는 건가!. 다행스럽다. 늦었지만 영화도 만들고 50주년 기념사업 준비하면서 다양한 미디어 자료, 인터뷰, 자료, 증언과 역사적 문헌등의 자료들을 나름대로 모으고 정리해가고 있습니다. 팩트 체크하고, 상황을 정리하고 있는 국면이기 때문에 향후에 승이 양을 비롯해서 젊은 학자들이거나 기획자들이든 뛰어난 역량을 가진 친구들이 영상으로, 음악으로, 오페라로 또는 글로 책으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다양한 콘텐츠로 민주주의 역사가 된 ‘김상진의 삶’이 널리 공유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연구하고자 할 때 자료를 뒷받침해 주고 응원할 생각을 하니 괜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가족들과 만남이 기다려지고 우리가 꿈꾸고 있는 ‘김상진의 민주주의’가 세계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자리 잡는 날을 다시 한 번 마음속에 새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