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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광임파워먼트센터 Nov 09. 2023

정신건강 회복 수기

나는 중 1때부터 정신과에 다니게 됐다. 마음이 이상하여 정신과에 다니게 됐다. 한창 공부할 시기에 공부도 안하고 음악이나 듣는 나였다. 지금와서 보면 후회할 일이다. 내가 공부를 포기하지 않고 살았으면 지금의 나와 다를 것이다. 좀 더 훌륭하게 될 듯 싶다.

중 1때부터 치료를 받았지만 지금까지도 완치 못하는 상태이다. 증상이 심해져 입원을 한 적이 있다. 환청, 망상이 있어서 입원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입원기간이 짧기도 하지만 2년이라는 시간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했다. 나름대로 힘들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서 퇴원을 했다. 또 입원하는 일이 발생되었다. 개인병원에 2년씩 두 차례 입원했고 세브란스 병원에서 2개월 입원한 적이 있다. 또 다른 개인병원에 몇 달씩 입우너하고 국립정신병원에도 2차례 정도 입원한 적이 있다. 퇴우너 후 낮병동에 다니게 됐다. 현재는 D센터에 다니고 있다. 이제는 입원이라는 것은 벗어난 것 같다. 그야말로 지역사회에서 사회인으로서 살고 있다.

센터에 다니면서 취업을 한 적이 있지만 아주 짧은기간이었고 취업에 그렇게 많은 비중을 가지진 못했다. 나에게 취업도 중요한 것 같다.

병을 가지고 사회활동은 중요하다. 조현병이라는 굴레에서 살고 있는 나이다.

상태가 호전되어 취업도 하고 증상에서 벗어난다면 좋겠다. 입원하지 않고 집에서 잘 생활할 수가 있다. 좀 더 나아져야 하는데 잘 되질 않는다. 입원하지 않고 잘 생활하는 나이다.


- 66년생 H


나는 요새 오랜만에 창작의 여정 시간에 글을 써본다. 원래 대학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정신건강이 돌아왔으며 생활이나 취미 등 운동을 병합적으로 하고 했다. 배드민턴을 하면서 다이어트를 했다. 전에 아팠던 회복을 하면서 건강을 챙겼다. 그런데 나에게 조현병이 찾아왔다. 병원을 가 약처방을 받았으며 완치가 됐다. 근데 갑자기 혼잣말이 있었다. 발음 독학을 공부하며 고쳤으며 말더듬까지 극복을 했다. 

10년 전 일이다. 갑자기 여의치 않게 나에게 과거 망상 기억났다. 무슨 용무도 모르게 기억이 지워졌으며 쓰러질 뻔 했다. 원격으로 당했다. 그림 기억이 났으며 환청이나 착각 등 모두 만물의 근원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 놀랐으며 가족의 힘으로 치료가 돼서 다행이다. 아파서 병원에 진단을 받았는데 다행히 입원을 몇 개월해서 조현병을 고쳤다. 많은 일이 있었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조현병을 극복하면서 완치가 됐다. 즐거웠으며 희망이 생겼다. 건강을 다시 챙겼으며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자 파이팅!


- 90년생 H


나는 피해망상, 관계망상, 불안, 초조, 안절부절 못하는 증상이 있다. 이런 증상들을 주치의한테 말하고 처방을 받아 약을 복용하고 있다. 처음 병원에 입우너해서 보름정도 지냈는데 무언가 두렵고 무서웠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퇴원하고 약을 복용하면서 증상이 나아졌다.

나는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사회의 낙오자가 아닌 지역사회에 참여하는 활동가로서 나는 만족스럽게 살고 있다. 정신건강센터에 다니기 전에는 불안, 초조, 안절부절 못하고 밤에 잠도 안오고 내 자신이 정말 힘든 증상들이 있었는데 센터에 다니면서 병이 호전되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지금 다니고 있는 D센터는 다닌지 7년정도 되었다. 별다른 문제없이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건강도 회복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센터가 있었기에 나도 이만큼 회복된 것 같아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고 있다.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배가 나와서 체중조절을 해야 되는데 잘 안 빠지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비만체중 때문에 걱정이 좀 되나 사는데 지장은 없다. 앞으로도 D센터에 다니면서 많은 도움을 받을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 70년생 K


나는 정신과 약을 먹은지 22년쨰이다. 처음 약을 먹었을 때는 약이 독해서인지 잠만 쏟아졌다. 그러나 지금은 좋은 상태로 일상생활을 한다. 그리고 정신적인 문제도 거의 정상인 것 같다. 다만 부족한 것은 기억력과 총기가 좀 떨어지는 것 같다. 내 정신질환은 조현병이다. 환청과 환시 그런 것이 많다. 약은 매일 체크리스트를 체크하며 먹는다. 가끔 약 먹은 것이 헷갈릴 때도 있다. 나는 약을 열심히 먹고 매일 헬스와 조깅을 한다. 그리고 건강한 일상과 생활을 위해 식단조절도 한다. 그리고 다양한 취미 생활도 한다. 음악이 주는 영향도 큰 것 같다. 그리고 무언가에 계속해서 도전해 왔다. 가수가 되려고 매일 노래를 하고 음악을 듣고 악기도 다루고 작곡에 대한 공부도 하였다.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노력을 해왔다. 세월은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 어느덧 21년이 흘렀다. 삶과 세월은 그냥 가는 것 같다. 얼마나 효과적이고 유용하게 쓰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나는 그동안 정신적인 안정과 마음적인 안정을 위해 노력해왔다. 이제는 그런것들이 습관이 되어서 일상생활을 하는데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 회복의 정확한 개념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현 상태는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다. 편안한 마음과 평범한 정신 그것이 중요한 것 같다. 최적의 상태로 삶을 사는 것 그것이 회복인 것 같다. 


- 74년생 K


정신과 약을 매일 잘 복용한지 2년 6개월이 되었다. 내가 정신병을 인정하고 다시 입원하지 않기 위하여 약을 복용하고 주사를 맞은지는 1년 6개월이 되었다. 내가 아프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 되었지만 내 스스로 정신병인 조현병을 인정하지 못했다. 조현병, 정신분열증이라 하는데 나는 환청, 환시를 경험했다. 하지만 맨 처음 환청을 경험한 때는 ‘텔레파시’라고 믿었다.

뇌 속에 목소리가 들렸는데 오빠의 목소리였고 오빠는 과학기술대학에 근무하고 있어 나는 이 경험을 텔레파시라고 믿었다. 지금은 환청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환청이라고 인정하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지금도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던 경험은 너무나 끔찍하다. 그곳에서 몇주 몇 개월 마지막 입원시에는 거의 일년을 입우너했었따.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주민과의 불화로 입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주민들이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화가 생겼다. 

H사업체에 근무했을 당시 모든 staff들이 조현병 환우여서 서로 약을 복용하고 같은 경험이 있어서 편하게 근무한 것 같다. 조현병이라고 환청을 받은 후 정상인들과 근무하는 곳에서도 잦은 다툼이 생기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다툼이 생기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는데 20~30대를 열심히 일만 했지 다툼이 있지 않았다. 늘 프리랜서로 일했기 때문에 다툼이 없었고 아이들을 상대로 일했기 때문에 문제가 많지 않았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기억은 아직도 불쾌한 일이다. 내가 약을 잘 복용하는 것은 재입우너하지 않기 위해서다. 내가 아팠을 때 늘 큰일이 있었다. 오빠가 아팠었고,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이기도 하고 결혼생활이 꺠지기 시작했을 때라 나는 복잡한 내가 싫다. 지금 생각해보니 난 환청과 환시를 경험할 때에 비상식적인 행동을 했었던 것 같다. 돌아가신 분들의 환시를 보았다. 그래서 어떤 때는 따라간 적도 있었다.

약을 복용하는 요즈음 어쩜 나는 맘이 제일 편한지도 모르겠다. 지난일을 떠올리려 하니 머리만 복잡하다. 아픈것도 좋은 추억이 아닌 것 같다. 내가 아프게 된 것은 꿈 때문이었다. 밤마다 꿈을 너무 꾸어서 병원을 찾아간 것이다. 분명 낮에는 행복한데 밤에는 꿈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시달리기 보다도 꿈을 잘 꾸지 않는 것이 내 잠의 패헌인데 꿈을 꾸는 것은 자연스런일인데 인셉션처럼 꿈을 꾸게 되었던 것이다. 꿈을 그렇게 많이 꾸는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인셉션이란 영화가 나왔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텔레파시처럼.

아팠던 기억을 꺼내려니 생각이 복잡해진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 노래가 나온다. 환청에 들렸을 때의 일을 어찌 잊으랴! 아버지가 병원에 계셨고 나는 집에서 아빠의 목소리를 들었다. 빨리 오라고 하셨다. 막상 병원에 가니 큰집오빠가 오셨다. 나는 분명 앞싸고 이제야 병을 인정한다! 병을 인정하기에는 많은 세월이 걸렸다. 환청과 환시를 경험하고 싶지 않다. 집에 가서 다시한번 글을 작성해야 할 것 같다. 내글이 일목요연하지 못하고 아직도 아픈 것이 정리되지 못했다. 2012년 오빠 사망, 2018년 부모님 사망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 67년생 S


5년 전의 일이다. 나는 조현병을 앓고 있었따. 3개월이란 입원생활을 마치고 통원치료를 하게 되었다. 내가 입원했던 병원은 너무 멀어서 가까운 동네 의원으로 가게 되었다. 물론 소견서도 지참하고 동네 의원에서 약을 처방 받았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2주일이 지나도 약물 부작용으로 몸 상태는 좋지 않았다. 그 당시에 나는 2주 간격으로 외래 진료를 받았었다.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었다. 이렇게 매일 아프면 차라리 죽는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매일 했었다. 2주마다 매일 약을 바꿨다. 나는 견디지 못하고 이곳 저곳 다시 다른 의원을 찾아 헤맸다. 그곳에서도 나를 감당하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보냈다. 나는 이대로 죽는거 아냐? 라는 생각을 했었다. 어쩔 수 없이 또 다시 다른 병원으로 갔다. 그곳은 더 형편 없었다. 내가 소견서를 보여주니 휴~우 하고 한숨부터 내쉬더라구요. 그래서 그 병원은 하루만 처방받고 다른곳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때마침 언니가 혹시 원장 선생님은 잘 알고 계시지 않을까 D센터 원장선생님 한테 여쭤보자고 했다. 마침 원장선생님이 개원하지 얼마 안되는 지인이 있는데 상담도 많이 해주신다고 하셨다. 나는 당장 그 병원으로 달려갔다. 나의 증상들을 하나둘씩 얘기하며 그동안에 있었던 일도 쭉 나열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다른 병원에 갈 때도 없고 여기서 마무리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내가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처음에는 서로 조율하는 과정에서 이약 저약 바꿔가며 처음부터 다시 맞춰가야 했다. 선생님 이약은 빼면 안되고 이약은 이래 저래 해서 안되고 등등 여기서도 약을 조율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처음으로 불안제를 뺏었다. 그 다음에는 공황장애, 우울증, 공포심 등등 또 다시 조율해가며 맞춰 나갔다. 그렇게 한달동안 약을 바꿨지만 마찬가지였다. 나는 진짜 죽고 싶었다. 하느님 저좀 살려주세요. 이렇게 매일 약과의 싸움은 더 이상 못 견디겠어요.  매일 같이 기도하고 또 기도했어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의사 선생님께서 출산 날짜가 임박하여 한달동안은 다른 선생님이 진료봐주실 꺼라며 한달동안 주치의 선생님을 기다렸어요. 

나는 아직 고정적으로 먹는 약이 없는데 어떡하지? 할수없이 나는 한달동안 주치의 선생님이 처방해준 약을 그냥 먹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달동안 그 약을 꾸준히 먹으니 좀 나아진 것 같았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은 어느 병원에서도 말해주지 않았던 건 왜 일까?

지금 당장은 힘들어도 꾸준히 먹어보라는 의사 선생님이 단 한명도 안 계셨다. 나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약을 조율해 나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조율해 나가면서 운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내가 살길은 스스로 내가 일어서는 것이다. 이렇게 다짐하고서 열심히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산에 올라갔다. 비록 낮은 산이지만 나는 열심히 돌고 또 돌았다. 운동하다 쓰러진 적도 있었다. 나는 그때마다 내가 살길은 운동밖에 없다고 맹신하고 또 맹신했다. 1년전쯤부터 나는 일상생활을 하게 되었다. 나머지 4년은 약과의 싸ᆞ움에서 이겨냈고 일상생활 하게 된지는 1년이 조금 넘었다. 나는 또 다시 약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조현병, 약물 부작용 방지약, 공황장애, 우울증, 불안증, 좌불안석 등등 증상이 많았지만 지금은 조현병, 우울증 약간만 먹고 있을 뿐이다. 

내가 참을 수 있는 약은 먹지 않았다. 나머지는 내 의지로 운동하면서 이겨냈다. 지금은 조현병, 우울증 약만 조금 먹고 다 이겨냈다. 불안증이 조금 있기는 하나 약은 먹지 않고 있다. 주치의 선생님은 이제는 줄일 약도 없으니 용량을 조금씩 줄이자고 하셨다. 이정도면 일상생활을 어느정도는 할 수 있으니 여기에서 멈춰 지역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또 노력해야 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의 기도와 노력으로 일상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정신적, 신체적으로도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를 바라며 하루하루 내 주어진 삶에 충실하고 감사하며 목표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67년생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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