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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서 Feb 15. 2023

2. 봄날에 만난 손님을 떠올리며.


졸업식 시즌이 다가왔다.

사람들은 대목이라 하지만 실상은 아니다. 이때만 되면 꽃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서 한 송이에 5000원씩 팔아도 남는 게 없다. 제값을 받으려니 너무 비싸서 안 리고, 값을 내리려 하니 한없이 깎아야 한다. 울며 겨자 먹기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더군다나 코로나가 돌던 시기였다. 학교로 가는 졸업식 꽃다발 대신, 가족끼리 소소하게 축하하는 꽃다발이 소소하게 들어왔다. 

나는 예약된 꽃다발을 정리하다가 프리지어 꽃다발을 발견했다. 자녀가 있는 중년 손님이 아닌, 젊은 남자손님이었다. 남자손님은 취업으로 힘들어하는 여자친구를 위해 꽃다발을 샀다.  다른 때 같았으면 흔한 주문이지만, 그때는 흰 종이에 검은 물감이 떨어진 것처럼 눈에 확 띄었다. 그리고 검은 물감은 점점 더 짙어져 갔다. 시간이 갈수록 축하를 위해 만들어진 꽃다발보다 위로와 격려를 위한 꽃다발이 많아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안 그래도 좁은 취업문이다. 바늘구멍 실을 넣어야 하는데 바늘구멍이 막혀버린 거나 마찬가지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스트레스 잔뜩 쌓인 머리에 바람 한 번 쐬는 것도 힘들어졌다. 이런 현상이 1년 가까이 되자 사람들은 기분전환용으로 꽃을 찾 시작했다.


하루는 젊은 여성손님이 꽃을 사러 왔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오셔서 간단한 근황까지 주고받을 정도로 친해졌다. 오늘 점심은 뭘 먹었는지 새로운 꽃이 들어왔는지. 간단한 주제를 시작으로 취업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격증을 따고 토익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까지 모자라 개성을 보여주기 위해 블로그까지 이력서에 쓰는 시대.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채우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공무원을 목표로 고시원으로 들어가는 시대.

손님이 말하는 시대는 참 가혹하고, 동시대에 살고 있는 또래로서 너무 공감다. 생마늘을 씹은 것처럼 아리고 씁쓸하기까지 한다. 마지막엔 내가 경력 없고 능력 없어서 취업을 못하는 거라고 말을 흐렸다. 정말 슬픈 말이었다. 더 슬픈 건 부모님의 잔소리라고 했다. 손님은 미간을 잔뜩 찡그린 손님은 꽃향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표정은 풀어졌지만, 물물교환이라도 한 듯 꽃을 건넨 내 손에 손님의 고민이 묻은 것 같았다. 찝한 기분을 시작으로 다른 손님이 생각났다.


자기 자식걱정 푸념이 아니라 험담 식이로 하는 분 들이 있다. 무슨 꽃집에서 그런 말을 하냐고 하겠지만, 세상은 넓고 다양한 사람이 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던 진상이 실제로 존재 줄 몰랐다. 나도 직접 겪기 전까진 두 거짓말인 줄 알았다.

런 분들은 모두 격양된 얼굴과 침을 뱉는 듯한 거친 어투로 답답한 속을 내뱉는다. 내 자식은 누굴 닮아서 그럴까. 취업을 못해서 큰일 났다. 공무원시험을 본다는데 또 떨어질 거 같다. 충분히 속상해 보이지만, 과연 그 자식만큼 속상할까 궁금하다. 위로받고 싶은 존재에게 비난받는 건 심장에 비수를 꽂는 아픔이다.

취업준비기간은 삭한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조언으로 다가온 거짓위로에 둘러 쌓인 시기다.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 설 수 없는 절벽에서 누군가 발목을 끌어당기는 낌이 하루종일 이어진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2030으로서 겪어 본 일이라 충분히 공감한다. 취업실패로 안 좋은 선택을 하거나 우울증에 걸린 분들도 이해 간다. 만약 내가 꽃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나도 그중 한 명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 여성손님은 그런 자신의 상황을 잘 알기에 꽃으로 위안을 삼고 싶었을 것이다. 나도 꽃으로 위안을 얻은 사람으로서 그분을 응원한다. 하지만 9월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분을 다시 본 건 3월 초였다.

처음 봤을 때처럼 따스한 바람이 부는 화창한 봄날이었다. 매일 쓰던 흰 모자를 벗고 긴 머리를 단발로 싹둑 잘랐다. 화사한 미소를 입꼬리에 걸며 항상 보기만 했던 비싼 장미를 잔뜩 골랐다. 나는 너무 달라진 모습에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지만,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드디어 취업에 성공한 것이다. 손님은 면접이야기를 끝으로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됐다며 아쉬워했다. 나도 아쉬웠다. 하지만 긴 취업준비기간을 이겨낸 모습이 한겨울을 버티고 자란 꽃처럼 아름다웠다.

취업은 끝이 아니고 시작인 만큼, 앞으로 더 힘든 일이 생길 것이다. 더 다치고 더 울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마다 그분이 자기 자신에게 꽃 한 송이를 선물로 줬으면 좋겠다. 굳이 꽃이 아니어도 좋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맑은 하늘을 보며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처음엔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천천히 고개를 돌리면 바람이 느껴질 것이다. 봄이면 바람 따라 나비가 날아다니고, 여름이면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가을에는 낙엽을 보고, 겨울에는 흰 눈으로 머리를 식힐 수 있다. 조금 차분해진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길가에 아무렇게나 핀 꽃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흠집 없고 예쁘기만 한 꽃은 아니다. 대신 각자의 개성을 갖고 살아간다. 그 꽃이 잠시나마 가슴 한편에 들어와 힘든 마음을 보듬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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