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박, 깜박 알람 내버려 두기

지금 내 앞의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by 서정

깜박, 깜박.


잠깐 본 모니터 화면에서 메신저 알람이 내 눈을 잡아끈다. 누굴까? 무슨 일일까? 확인해 볼까 싶다가 그만둔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에게 돌아간다. 올해는 5학년 아이들을 맡게 되었다. 어제만 해도 3월 첫 주의 어색함 속에 얼어 있던 아이들이다. 내 재롱과 너스레에 어느새 아이들 입에서 말, 말, 말들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고학년이 되어 굳어버린 입에서 나오는 귀한 말들. 놓칠 수 없다.


작년에 처음으로 부장 업무를 맡게 되었다. 한 해 내내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우리 반 말고도 책임져야 하는 학교 일이 부담스러웠다. 몇 번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공문들, 선배 선생님들께 하는 어색한 안내. 그리고 수업 중에도 노랗게 깜박이는 새로 온 메시지 알람들.


메시지는 대부분 곧장 답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공문을 또다시 읽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확인해야 했다. 아이들을 하교시키고 해도 충분했지만, 나는 스스로를 보챘다. 수업 중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컴퓨터와 전화기를 붙들고 있을 때가 많았다. 아이들과 헤어지며 그런 순간들이 미안했다.


올해도 같은 업무를 맡게 되었다. 작년과 같은 후회를 하고 싶지 않다. 집중해야 할 것을 잘 골라내고 싶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편이 대개 옳다는 것을, 작년에 조금 배웠다.


우리 반 아이들은 아직 4학년 같다. 저들끼리 놀다가도 “선생님 탐방 3일 차!”와 같은 말을 하며 쉬는 시간마다 내게 몰려온다. 좋아하는 음식 이야기를 하고,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이야기를 한다. 점심시간에는 펭귄 얼음 깨기 보드게임에 나를 초대했다. 돌아가며 펭귄 아래 얼음을 톡톡 쳤다. “한 번 쳤으면 계속 쳐야지!” 와르르 펭귄과 얼음이 무너질 때 우리도 다 함께 와르르 웃었다.


첫 모둠 활동을 해봤다. “난파선에서 하나 남은 구명보트에 태워야 할 사람은?” 초등학생들은 상상력이 한 스푼 들어간 토론을 좋아한다. 내가 시작을 알리기도 전에 서로 말하느라 정신이 없다. 작년의 나는 쪼르르 ‘지금이야!’하고 컴퓨터로 달려갔을 것이다. 올해는 쌓여갈 알람은 내버려 두고, 수업이 끝나면 사라질 얼굴들을 더 바라보았다.

에세이 이미지_제미나이.jpg 수업이 끝나면 사라질 얼굴들/ 제미나이 AI 이미지


금요일 자정에 잠들어 토요일 12시에 일어났다. 개학 첫 주는 강력했다. 내리 12시간을 잤다. 어제 못 마무리한 일들이 머릿속에서 깜박거렸다. 해결책을 떠올리다 그만두었다. 쉬자. 지금 해야 할 일은 푹 쉬기. 남편과 오늘은 학교 일을 입 밖에 꺼내지 않기로 했다. 말하면 만 원 내기.


빨래방에 가서 미뤄 둔 빨래를 하고, 빨래를 기다리는 동안은 좋아하는 카페에서 책을 읽었다. 첫맛은 고소하고 끝에는 은은한 딸기향이 남는 커피. 읽다가 멈추고 생각하게 하는 책.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에 와서는 각자 좋아하는 일을 했다. 남편은 야구를 보고 나는 글을 쓰고. 집중해야 할 것만 남은 하루는 내가 생각하는 행복과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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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을 바라보고 싶은데 곁에서 깜박이는 것들이 너무 많다. 메시지 알람, 내일의 걱정, 뱉어버린 말에 대한 후회. 그 불빛에 멍하니 시선을 빼앗기면 금방 놓쳐버린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들을. 아이들이 용기 내어 건넨 말, 나를 채워 줄 주말의 휴식,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들.


깜박, 깜박.


작은 불빛들에서 고개를 돌려 내 앞의 시간을 가만히 바라보려고 한다. 3월의 다짐이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