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아래서 다시 떠올린 그 말
그런 날이 있다. 입술이 얼얼해질 만큼 매운 닭발로 나를 괴롭히고, 샤워하는 동안 냉동실에 잠깐 넣어둔 시원한 맥주로 나를 달래야 하는 날이. 괴롭히고 달래는 것을 오가다 보면 가슴께를 꽉 막고 있던 것이 조금씩 풀린다. 그 틈새로 나온 것은 부끄러움과 무력감 같은 것들이다.
비 오는 날은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비와 아이들 사이에는 서로 주고받는 주파수가 분명히 있다. 같은 수업을 해도 비 오는 날의 아이들은 더 산만하고 사고도 많이 친다. 지난주 어느 날도 그랬다.
흐린 아침 탓인지 슬금슬금 지각하기. 친구가 발표할 때 끼어들기. 선생님이 양치하러 간 틈을 타 장난치기. 하루의 삼분의 일쯤은 내내 잔소리만 했다. 평소였으면 잔소리하고 나서 원래대로 돌아와 수업을 했겠지만 그날은 그러지 못했다. 부글부글 끓는 내 마음을 아이들도 알았을 것이다. 오늘 왜들 이러지?
아이들을 보내고 선배 선생님을 복도에서 만났다. 오늘따라 아이들이 말을 안 들어서 힘들었다는 내 말에 ‘비가 와서 그래.’라고 하신다. 맞다. 비와 아이들 사이에 통하는 주파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반쯤은 화에, 반쯤은 피로에 지친 내 얼굴과 선배 선생님의 얼굴은 달랐다.
“선생님은 오늘 얘들 말 안 들어서 화 안 나셨어요?”
“얘들은 얘들인데 뭐.”
가끔은 화가 나지 않아도 아이들에게 짐짓 화난 척 정색하고 화낼 때가 있다. 감성이 이성을 앞서는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보여준다. 교실에서 넘으면 안 되는 선들을. 그런데 인간적으로 화가 나서 화를 낼 때도 있다. 그날의 날씨는 높은 확률로 비가 오거나 우중충하다. 인간적인 화 뒤에는 교사로서의 자괴감이 밀려온다. 아이들인데, 그러는 게 아이들인데.
“선생님 하늘 좀 봐요.”
우리 학교가 음지에 있어 좋은 점 한 가지는 벚꽃이 늦게 피고, 늦게 진다는 것이다. 동네 벚꽃은 다 져도, 학교 한편에 있는 벚꽃은 지지 않는다. 아이들과 마지막으로 벚꽃을 구경하러 나갔다. 벚꽃 아래서 첫 단체 사진을 찍는다는 말로 교실을 나서면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다들 즐거워한다. 우리 반에서 제일 무뚝뚝한 아이가 보라고 한 하늘에서는 마지막 벚꽃비가 내렸다.
삐뚤빼뚤 줄을 대충 서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사진은 내 욕심이고 아이들은 교실 밖에서 놀 생각에 바쁘다. 바닥에 그려진 달팽이 무늬 위에서 하는 놀이인데, 한 팀은 달팽이 안에서 다른 팀은 달팽이 밖에서 출발한다. 냅다 뛰어서 만나면 가위바위보를 하면 된다. 이기면 전진, 지면 줄 뒤로 다시 서기.
10초면 이해하는 간단한 놀이를 아이들은 오랜만에 내리쬐는 햇살과 흩날리는 벚꽃 아래서 했다. 지켜보는 나는 금방 지루해지는 그 놀이를 하고, 또 한다. 가위바위보를 져도, 이겨도 깔깔대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얘들은 얘들이네.
비 오면 더 떠들썩해지고, 옆 친구가 들뜨면 덩달아 붕붕 뜬다. 교실 밖으로만 나가도 “선생님 최고!”를 외치고 꽃보다 몸으로 활짝 노는 걸 더 좋아한다. 그러니까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누구인지 잠시 잊었다가 다시 깨닫게 될 때가 있다. 닭발과 맥주를 먹었던 비 오는 날처럼. 선생님도 선생님인데 가끔 사람이 되기도 해서.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