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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vergreen Aug 25. 2024

소설 동래성

부사의 결심: 천군과 왜군이 오기 전 동래성

부사 송상현은 결단을 해야만 했다. 싸울 것인가, 투항할 것인가.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이미 결심을 선 터였다. 주위의 부장들과 병사들을 보았다. 그리고 성 안의 백성들을 보았다. 군사를 제외한 힘쓸 수 있는 남정네들을 제외한 성안의 백성들은 여자들과 노약자들과 어린아이들. 성안의 군사 천여 명. 일반 백성 사천 여명. 이 중 부녀와 아이들 노인들을 제외한 싸울 수 있는 인원은 고작 이천 여명.

    부사의 눈과 마주친 병사들의 눈에서 비장함과 동시에 두려움도 보였다. 성안의 백성 대부분에 흐르는 공기 속에는 이미 절망스런 슬픔이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부사는 일본인 친구를 통해 왜군들의 싸움 방식을 익히 전해 들었다.

    싸우기 전에 무조건 투항하면 모두 살려 주는 것과 싸우다 중간에 투항하면 군사들만 처형하고 성내 주민들은 살려 준다는 것. 그리고 끝까지 싸우면 성내 모든 이들을 몰살한다는 것. 송상현에게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조건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사실이다.


송상현의 결심

조선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 조정이 미웠고, 많은 탐관오리들이 저주스러웠고, 심지어 하늘 같은 임금이 원망스러웠다.

    그는 이 동래성이 무너지면 조선 전체가 왜군의 손에 들어갈 것이라는 것을 짐작했다. 그 머릿속에 무수히 죽어가는 백성들. 수탈당하고 겁탈당하는 백성들과 콧대 높고 남의 나라 구원에 적극적이지 않은 명나라 군의 지휘아래 싸우는 많은 병사들. 부사는 이 나라가 이미 운명을 다 했다는 것을 알았다. 설사 이 전쟁이 왜군의 승리로 끝나지 않더라도 이 나라는 저들의 무지막지한 칼에 유린당할 것이다. 살아있음이 죽음보다 못 한 운명의 백성들이 될 것이다.


그는 백성들에게 묻기로 했다.

    '떠날 자는 얼른 떠나라. 나무라지도 처벌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병사들은 자신과 끝까지 남아 항쟁해야 한다'라고. 성내 백성들 중 몇몇 가정들이 쭈뼛쭈뼛 옆걸음 치며 무리 중에서 나와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많은 성민들이 남아 있는 것이다. 좀 전의 슬픔과 절망으로 가득 찬 눈들에서 결의와 분노가 빛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 저들은 싸울 것이다. 죽기까지. 부사는 더 한번 백성들에게 호소하였다. 그러나 성민들의 마음은 이미 굳은 듯했다. 성내 사람들은 만약 자신들이 떠나면 부사가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부사는 결코 왜에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결하거나 한 놈의 왜놈이라도 죽일려고 사력을 다해 싸울 것이다.

    그리고 많은 성내 백성들에게는 '도대체 여길 떠나 어디로 도망가란 말인가'라는 자괴감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조선 팔도가 금방 왜의 손에 넘어갈 것이고, 임금은 백성의 안위와 상관없이 어느 산성이든 명나라든 숨어 들어갈 것이다. 조선 어느 팔도에 가든 비참한 삶이 기다리고 왜군의 온갖 농락에 처자식들이 유린당할 것이다.


이 일 이전에 적으로부터 항복과 회유의 권유가 있었다.

몇몇 왜군이 뭔가 큰 목판을 들고 말을 타고 달려와 성 앞에 세우고 가는 것이었다. 목판을 세우기 전 그들의 얼굴에는 여유와 거만의 미소가 가득한 것이 성위의 군사들에게 확연히 전해졌다.

목판에는 '싸울 테면 싸우고 싸우지 않을 테면 길을 열어달라'라고 쓰여 있었다.


부장들과의 회의 그리고 최후의 성내 백성들에게 통보와 소통. 그리고 마침내 완전 무장을 하고 전투 깃발들을 세우며 송상현의 명에 의해 두 명의 군사가 말을 달려 왜의 목판보다 더 큰 목판을 곁에 세워두고 왔다.

'죽기는 쉬우나 길을 내 주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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