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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vergreen Aug 26. 2024

소설 동래성

휴식

2차 전투 준비

중대는 얼굴 위장을 위해 가지고 있던  종이 책자를 불태워 재를 만들어 사선으로 얼굴에 검댕이 자국을 그렸다. 종이를 불태우는 광경에 성내 주민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저렇게 귀한 종이를 태우다니’.


만일의 경우 백병전이 생길 경우 적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위장을 하였다.  주간 훈련 중이었던 탓에 위장약을 부족하게 가지고 있었다. 남은 위장약은 나중에 야간 전투를 위해 남겨 두기로 하였다. 성내 주민들에 비해 군사들의 얼굴은 굉장히 하얀 편이었다. 검은 줄무늬가 가히 위협적으로 보였다. 


소이

베레모를 소이에게 씌어 주었다. 얼굴빛은 다소 그을린 편이었지만, 베레모밑으로 이목구비가 더욱 뚜렷하고 이마에서 빛이 나 보였다. 순간 김일병의 마음 한 구석에 부질없는 생각이 떠 올랐다. 

‘이 여인이 나의 시대에 있었더라면…’. 


이름이 “소”라고 말했었다. 성이 김이고 이름이 소라고. 김일병은 소라는 외자가 어색해 끝에 “이”를 덧붙여 소이라고 불렀다. 소이는 군인모가 멋있어 보이고 왠지 특별하게 사람을 만드는 것 같아 좋아했다. 그것을 쓰고 김일병에게 하인 다루듯 명령을 해 보았고, 현대 군인만의 독특한 경례를 해 보고 순수한 웃음을 공중으로 내 보내고 있었다. 그 순수한 아름다움은 그녀가 입은 헐고 퇴색한 무명 위로 더욱 비범한 감동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주 잠시일 뿐일 이 평화의 시간에 시대를 거슬러, 이상하고 우연한 계기로 만남을 갖는 이 젊은 두 사람에게 이 시간과 장소는 어색함과 낯섦을 잃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겁탈하려는 왜군들이 없었다면 이 둘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먼 미래에서 신기한 물건이라는 것이 휴대폰 밖에 없었지만, 그것은 둘에게 깊은 감정의 교류를 이끄는 중요한 다리가 되었다. 더욱이 소이는 신기하고 감격에 가까운 물건을 가지고 있는, 앞에 있는 이가 더욱 특별하고 경이롭게 느껴졌다.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과 음악, 동영상 속의 움직이는 사물과 사람들의 모습에 그녀는 모든 혼을 빼앗긴 듯 보였다. 이걸로 먼 곳에 있어도 서로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말에 경이를 뛰어넘어 두려움까지 생기는 것을 소이는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 남자를 좋아할 수 있을까...?'.

 

김일병은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군번줄을 목에 걸어 주었다. 그녀에게 반짝일 뿐 이상한 글자가 새겨진 두 조각의 투박한 모양의 철조각 목걸이를 목에 거는 것이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그것에 어떤 감정을 얹어 기꺼이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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