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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vergreen Sep 08. 2024

소설 동래성

현재와 과거의 두 장부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됐소?" 부사가 중대장에게 물었다.

“왜군을 물리쳤습니다.”

“그래요, 언제 전쟁이 끝났죠?”

“…7년 걸렸습니다.”

“뭐!! 7년이라고요?”

“…”

중대장은 부사의 놀람에 아무런 얘기를 덧붙일 수 없었다.


“전하는 어떻게 되었소?”

“선조께서는 무사하셨습니다”

“선조? 선조가 누구요?”

중대장은 잠시 놀라 머뭇 거렸지만, 이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조선 임금들의 칭호는 후대에 정해 진다는 것을.

“아, 지금 계시는 전하입니다.”

“전하가 무강하시다니…성은이구료.”

중대장은 부사의 눈가가 젖어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침내,

받고 싶지 않은 질문이 부사의 입에서 나오고 말았다.

“이 성은 어떻게 되었소?”

중대장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알고 있소, 중과부족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예상하고 있소.”

“얼마나 버티었소? 원병은 오는 거요? 성의 백성들은?”

“…”

중대장의 침묵은 더욱 길어졌다.

중대장은 이런 질문들이 괴로웠다.

‘기록에 의하면 3시간.’

속으로 되뇌는 이 말들이 심장을 뚫고 나와 버리고 말았다. 중대장은 억누를 수 없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미간을 숨기려 고개를 떨구었다.



다행인가.

부사는 대답을 재촉하는 대신 지긋이 눈을 감은채 자신의 고개를 떨구어 내렸다.  


“당신 시대의 조선, 아니 이 나라와 민족은 어떻소?”

이 질문에는 아주 쉽게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으나,  갑자기 말이 나오려다 목에서 걸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무겁고 분한 수치감이 중대장의 가슴을 또 한 번 치는 것을 느꼈다.

굉장히 길다고 느껴지는 침묵의 시간을 깨고 이번엔 부사가 의아스럽고 호기심 가득 찬 목소리로 다시 다그쳤다.


“왜… 왜 이리 침묵이 길단 말이요?”

이 순간은 중대장에게 너무나도 가혹하고 잔인한 시간이 되고 말았다.

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충성스러우며 의로운 자에게 먼 미래의 조국은 바로 눈앞의 왜 놈들에 의해 다시…

여기까지가 중대장이 생각한 전부다. 그 이후의 남북 분단과 여전히 일본에 비해 약한 국력… 여전히 존재하는 매국노 같은 이들…. 중대장 스스로도 왜 우리는 이 정도밖에 안될까 라는 자괴감에 그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마비되고 말았다.


갑자기 부사의 말에 무거운 엄숙함이 실려 있었다.

“솔직히 말해 주시오. 그대의 침묵은 어느 정도 많은 것을 얘기해 버리고 말았소. 사내대장부로서 나라의 녹을 먹는 자로서 무거운 진실을 감내할 의지와 책임감도 있소”.

그는 참으로 의연했고, 과연 한 나라의 장수와 충신의 품격을 갖추고 있었다.

“결국 이 나라는 왜의 것이 되고 맙니다”.


“뭐!! 아니, 그럼 이 조선 아니 이 우리 민족의 나라는 영영히 왜의 것이 되고 만 것이요?”

“왜로부터 이 전란을 극복했지만 다시 침략을 받고… 나라를 다시 찾았으나….

나라는 다시 두 개로 나뉘고, 왜는 아니 일본은 여전히 우리보다 부강합니다.”

“뭣이!... 아니 이 지경을 겪고서도 다시 왜에 침공을 받고 기어코 나라를 잃어?”

“무엇이 문제요? 왜 이 민족은 이렇게 약하오?”


‘정말 무엇이 문제였을까?’ 중대장은 쉬운 답일 거라 생각했지만, 순간 답을 찾기 위해 애쓰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정말 무엇이 문제였던 말인가? 아니, 왜? 이 왜란 이후 500여 년이나 지난 이때에도 이 민족과 나라는 저 섬나라보다 강하지 못하단 말인가?’

그러면서, 나라와 민족은 생각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관료들과 정치인들. 오직 자신의 잇속만을 위하면서 이념의 명목으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을 내몰아 가는 이들, 경제라면 의와 공정은 무시되고 묵인되며 나갔던 최근의 역사들. 그리고 그 많은 매국노들. 친일부역자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면서 왜 그들이 저렇게 악행을 행하도록 놔둔 임금이며 대통령이며 심지어 잘못된 정치인들을 뽑은 국민들은 어떠했나…여러 가지의 생각들이 정신과 마음을 혼미하게 했다.


“나는 당신의 말을 믿지 못하겠소!”

갑자기 부사의 무섭게 노려보는 눈매와 함께 격앙된 목소리를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민족이 그렇게 나약하고 어리석지 않을 것이요.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아니, 다른 세상의 것을 보았거나 아니면 다른 세상에서 왔을 것이요.”


부사의 말을 수정시킬 여력이나 의지가 생겨나지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모든 무거운 진리들이 얼굴과 몸을 미동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격한 분노의 마그마가 차가운 대지에 스며져 나오듯, 뜨겁고 눈물이 꿈쩍이지도 않는 눈사이로 흘러나왔다. 부사는 흠칫 놀라더니, 깊고 무거운 침묵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중대장에게서 인정하기 싫은 진실을 읽고 말았다.


길게 느껴진 침묵의 시간이 지난 후, 갑자기 부사가 한쪽 무릎을 꿇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한 팔에 쥔 칼을 바닥에 내 꽂으며 그는 많은 눈물을 얼굴에서 땅으로 떨구었다.


이 현재와 과거의 두 장부는 그런 모습으로 아픈 조국의 역사만큼의 시간만큼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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