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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vergreen Jun 08. 2024

물이 포도주가 된 이야기

수업 후 어느 학생의 질문

어느 날 열역학 강의가 끝난 후 한 학생이 내게 다가와 묻는 것이었다.

"질문이 있는데 잠깐 시간을 내주실 수 있나요?"

나는 의례 수업 내용에 관한 것인 줄 알았다. 흔쾌히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가나 혼인 잔치 때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기적 [1]을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요?"


학교가 미국 침례교 계열 학교인 탓에 많은 학생들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물론 외국인 유학생 들도 많고 꼭 신자여야 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외국인 유학생들 중에는 중국인 학생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동아시아 담당 입학처장이 아주 열심히 한 까닭이다. 그리고 실제로 학교 재정에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었다. 한국의 기독교 대학들과 자매결연 탓에 한국 교환 학생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그리고 캠퍼스에서 가끔 히잡을 쓴 여학생들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교수진과 교직원 모두는 침례 받은 기독교인이어야 했다. 그래서 거의 학교 구성원의 10명 중 8명쯤은 기독교 신자들이다. 그러나, '진정 하나님을 믿는 이는 과연 얼마나 될까'. 나는 이런 질문을 이곳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후 스스로에게 많이 던졌다. 물론 겉보기로 누가 진정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사는 가를 판단할 수 없다. 그렇지만 신앙보다는 자본주의 논리로 강하게 물들어 가는 학교 전체의 분위기를 지속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러다가 다른 많은 유서 깊은 대학들처럼 신앙의 색채를 다 버리고 티어(Tier) 1이니 2니하며 학교 랭킹 올리기에 급급해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나는 그 학생의 눈을 직시했다. 성실했고 시험 성적도 우수한 학생이었다. 그가 무엇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질문을 나한테 하기 전에 얼마나 본인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을까. 과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주일에는 교회에 나가는 신자로서 성경의 기사와 과학적 해석 사이에 많은 번민이 있었을 것이다.  때로는 훌륭한 신자인 척 스스로 겉치레하며 쉬운 답을 찾으려 기적의 차원에서 생각을 얼버무리며 마무리했었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아주 일말의 불경함을 가지게 된 자신에 놀라며, 성경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라고 독백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런 질문을 내게, 자신보다 나이가 많으며 수업 시작 전에 기도로 시작하는 그럴싸하게 보이는 크리스천에게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제발 답을 해 달라고.


나는 그 학생에게 최대한 실수하지 않고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신중하게 대답하였다.

"물이 포도주가 되는 것은 현재 과학적 입장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 일을 하는 것은 화학적 작용이 아니라 신이 했기 때문이다. 나는 예수님의 행동과 권위가 과학의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고 생각한다. 혹시 모르지, 아직 인류가 모르는 화학작용을 신께서 그때 사용하셨을지. 그래서 이것은 과학적 현상보다 하나님의 직접적 개입과 계시로 보아야 한다"


히스기야 왕이 병이 들어 죽게 되었을 때, 그가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하며 낫기를 바랬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가 병에서 나을 것이고 죽지 않을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그 증거로 해 그림자를 거꾸로 십도 물러날 것이다고 말씀하셨고, 실제로 해 그림자를 나타내는 해시계의 시침이 거꾸로 움직였다 [2]. 즉, 그날 하루는 여느 때보다 훨씬 길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면 즉, 지구가 역방향으로 자전을 하면 조류에 의해,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이스라엘은 홍수가 날 것이며 히스기야도 안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과학적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으며 끊임없이 이어진다. 우리는 과학을 통해 많이 알아 왔고 또 많이 의문을 가질 것이며, 또 많이 안 것 때문에 또 많이 모르게 될 것이다.

히스기야 왕의 예화처럼 기적에 대한 과학적인 해석을 시도했을 때, 과연 통쾌히 답을 얻을 수 있겠는가? 나는 만약 지구가 역방향으로 자전해 조류에 해안가에 급격히 밀려와도 하나님이시라면 어떻게든 조류의 범람을 막으실 수 있었으리라 믿는다. 조류의 문제뿐인가,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에 자연재해는 발생하지 않았을까.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당신의 어떠하심을 나타내시려고 그에게 인간 눈에 가공할 기적을 보여 주셨다. 그뿐이다. 신에 의한 기적. 그 어떤 것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이 가지는 권능과 위엄에서 오는 신의 역사와 행위. 그 자체는 과학적 사실과 자연적 현실을 뛰어넘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경외심을 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은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든다. 가능할까? 개미의 아인슈타인 수백 마리가 인간을 연구한다 하자. 그(것)들이 과연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수천 년 수만 년이 지나도 개미들이 알 수 있는 것은 고작 인간이 신고 있는, 자신들을 아주 쉽게 밟혀 죽일 수 있는 그 무시무시한 신발 바닥의 문양에 대한 연구로 개미들의 노벨상을 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과학이라는 우수한 도구를 가졌지만, 그것이 형이상학적이고 보다 철학적이며 가치와 신념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답을 줄 수 없다. 


그 학생은 내가 말하는 동안 두 눈에 초점이 또렸했으며 아주 주의 깊게 듣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학생과 헤어지며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나의 기도는 그 학생의 영혼에 다가가 있었다.

 


[1] (요한복음 2장 1절 - 11절)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 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2](열왕기하 20:1-11)

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4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6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7   이사야가 이르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상처에 놓으니 나으니라 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표가 있나이까 하니 9   이사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부터 왕에게 한 징표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혹 십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하니 10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십도가 뒤로 물러갈 것이니이다 하니라 11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해시계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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