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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랑 Aug 21. 2023

인생은 아름다워.

고마워요 내 인생, Singapore

한창 ‘magical moment'라는 기내 서비스를 진행하던 때였다. Magical moment 기내에서 손님들과 소통하고자 회사에서 마련한 시즌성 이벤트였다. 결혼기념일이나 생일 같은 특별한 날을 맞이한 손님을 만나면 비즈니스클래스에서 제공되는 케이크와 샴페인 등 간단한 다과를 준비하고 크루들이 손 편지를 써서 손님에게  전했다.


보통 손님이 항공기 탑승전에 먼저 사연을 보내고 기내에서 이벤트를 여는 타 항공사에 비해 타르항공은 승무원이 먼저 손님에 대해 알고자 노력하길 원했다. 그만큼 친밀하게 먼저 다가가고 소통하는 서비스를 강조했다. 손님과의 대화를 통해 손님 특별한 날을 알게 될 경우 손님의 요청이 없이 승무원이 서프라이즈로 이벤트를 열어드리는 차별화된 기내서비스는 의외의 감동을 선사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싱가포르로 가는 비행. 첫 번째 밀서비스를 끝내고 한 크루가 갤리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부사무장에게 이야길 시작했고 크루들이 삼삼오오 그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자기 담당 존(Zone)에 한 손님이 암으로 투병 중이신데 의사 말로는 앞으로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다고 했단다. 그 시간 동안 남편과 함께 세계 여행 중라고. 그 손님을 위해 ’magical moment'를 만들어주고 싶다고 크루들이 입을 모았다.



우리끼리 만든 롤페이퍼, 샴페인, 작은 케이크. 모든 준비를 마치고 두 분을 뒷 갤리로 모셨고 놀란 두 분은 밝게 웃으며 연신 ”땡큐 쏘 머치“하며 우리를 안아주었다. 두 분께 샴페인을 건내자 서로 따스하게 마주 보며 가볍게 잔을 부딪힌 다음 투병 중이시던 손님이 ”Life is beautiful"하며 남편을 바라보았다. 생애 마지막을 정리하는 시기에 인생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손님을 보며 모든 크루가 눈시울 붉다. 애써 미소로 감추며 행복한 여행이 되시길 축복드리고는 그날의 마술 같은 시간, magical moment 이벤트는 마무리됐다.


매 달 비행으로 가던 싱가폴이었지만 그날 비행을 마치고 마주하는 그곳은 평소와 다른 느낌이었다. 괜히 몽글대는 마음에 클락키로 나 야경을 감상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걸어보았다. 바쁘게 지나치던 곳들도 쉬이 지나치지 못했다. 눈에 보이는 이쁜 가족들의 모습에 시선을 떼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바라보기도 하고 엄마와 딸로 보이는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웃는 모습도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와 심장을 간지럽혔다. '끝'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스치던 모든 평범한 것들은 언젠가 마지막이 있다고 생각하니 하나하나 특별하게 다가왔다. 기내에서 함께한 그 노부부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나와 같은 풍경을 보며 인생을 아름답다 생각하고 있으시겠지? 죽을병에 걸렸다고 신세 한탄만 하거나 지난 과거를 후회만 하는 대신 살아있는 그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며 시간을 채워나가는 그 부부가 나에게 준 울림이 싱가폴이라는 아름다운 도시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다.

여전히 때때로 지치고 힘들 때면 그분들을 떠올린다. 웃었다 울었다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며, 그 숱한 오르막 내리막을 묵묵히 걸어 아름다운 노년을 맞은 그분들. 나는 과연 생애의 끝자락에서 지나간 내 인생이 아름다웠노라 말할 수 있을까, 생각에 잠긴다. 따스한 웃음으로 우리를 예쁘게 바라봐주시던 멋진 그 어르신처럼 늙어갈 수 있을까. 곧 끝이 날 생에 마지막 문턱에서 후회로 점철된 나날이 아닌 감사로 만족한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 끝엔 '나도 그렇게 살아내고 싶다‘ 다짐하게 된다.

으로도 인생의 굽이굽이, 깊은 고민에 빠질 때마다 나는 오래도록 그분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어린 우리들에게 생의 소중함을 알려주셨던 두 분. 세상 어디에 계시든 행복하시길. 하늘의 별이 되셨다면 그때만큼 반짝이는 아름다운 별이 되셨으리라 믿으며, 그 인연에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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