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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꽃봄 Oct 06. 2023

첫 번째 주말, 상해 우캉루와 티엔즈팡

여과된 7월의 더위, 딱 하루의 여행


  출장 후 처음 맞는 주말이었다. 나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이곳에 왔다. 아이와는 눈물의 이별을 했고, 남편에겐 대역죄를 진 것만 같았다. 그래, 호텔에 박혀있기엔 잃고 온 것들이 너무 많다! 최선을 다해 즐겨야지.


  중국의 여행지는 몇몇 어플을 살피다 보면 금세 추려진다. 내가 사용한 어플은 너무나도 유명한 ‘大众点评’과 ‘美团’이었다. 지극히 상업적이지만, 다양한 여행지가 소개되고 사람들의 평도 볼 수 있어 아주 유용했다.


  나의 첫 번째 여행지는, 우캉루와 티엔즈팡. 걷자.



   사진은 여과한다. 추억하기 좋은 것들만 남겨두고. 상해의 사진들은 습기를 여과했다. 싱그러운 우캉루의 거리도 여름에 걷기엔 덥다. 힘들다. 아이를 낳고 근 4년 만에 찾은 자유로움이 동력이 되어 그저 웃으며 걸었지만, 더웠다. 주말에 찾은 거리이니 사람도 많았다. 나의 자유는 상해의 습도와 강렬한 해, 발과 어깨에

채인 인파를 여과했다. 푸른 거리가 아름다워 보였다.



    간간히 오는 주말의 딱 하루 여행은 아쉽다. 평일의 이 거리는 반드시 고요할 것이었다. 명소를 뒤로하고 사람이 없는 길을 찾아 걸었다. 살림집 창문을 뚫고 흘러나오는 그릇소리, 요리하는 냄새, 나무 그늘에 앉아 부채로 더위를 쫓는 할아버지, 평화.



   한참을 걷다 우캉루의 시그니처 맨션을 만났다. 신호거 걸린 찻길에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꽃단장을 한 소녀들은 카메라 방향을 제외한 모든 곳에 시선을 두고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했고, 그녀들을 사랑하는 소년들은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그 모습이 위험해 보이고, 우스웠다. 사랑스러운 풍경 안에서 나를 건져낸 건 언제부터였을까. 그러고 보니 사진첩엔 내 사진이 없다. 내가 아끼던 내 얼굴 대신 하얗고 뽀얀 지우 얼굴이 가득하다. 묘한 기분으로 우캉루를 빠져나왔다.



   도저히 지도를 보지 않던 나는 티엔즈팡과 우캉루를 묶어서 여행하는 정석도 알지 못했다. 그저 걷고 또 걷다가 북적이는 곳을 만났을 뿐.


   티엔즈팡은 아름다웠다. 생각보다 사람도 많지 않았다. 상점들을 하나씩 둘러보지는 않았다. 그저 길이 주는 기운에 하늘하늘 걸어 다녔다.



   커피 한잔 마시고 마무리하려 했던 하루의 여행은 갑자기 만난 스콜로 급히 마무리되었다. 상해 여름은 자주 마른하늘에 비를 뿌렸다. 무거운 가방 한켠에 자리한 작고 빈약한 경량우산이 비 오는 풍경을 미화시켜 주었다.


   우산이 없던 사람들은 울상을 하고 건물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고, 쏟아붓는 비를 막을 길 없는 작디작은 우산에 머리만 겨우 넣은 나는 비를 뚫고 걸었다. 발도 옷도 모두 젖어갔지만 혼자 천운을 누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가벼우니 경량우산이 아니냐며 가방에 욱여넣어주던 진이 그리웠다. 진의 잔소리는 귀가 따갑지만, 늘 이렇게 도움이 된다.


   낯선 일주일을 보내고 떠난 딱 하루의 여행은 나를 돌아보기에 충분했다. 사랑하는 것들을 그리워하면서도 자유를 갈망하는 모순 덩어리. 모두 갖고 싶은 욕심쟁이. 빛 좋은 핑계가 많은 선량 하지만 이기적인 엄마,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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