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아침, 15분 여행
출근길. 15분 거리였지만 낯선 곳이니만큼 일찍이 길을 나섰다. 크고 웅장한 빌딩들을 가로질러 가면 푹푹 찌는 더위에 땀 흘리는 출근시간이 줄어들 텐데,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지도 위의 내 위치는 버벅댔다. 통신강국 한국에선 생각지 못해 본 장애물이다.
내가 있는 홍챠오 상무구(虹桥商务区)는 지하도로 대부분 연결되어 있는데, 덥다고 그리로 갔다간 출근길에 미아가 될 것이 뻔했다. 아직 출근인원이 쏟아지지 않은 여유로운 길을 걸었다. 큰길로.
여행하기엔 조금 불편한 옷을 입은 여행객이 된 나는 주변을 탐색한다. 갑자기 기분이 붕 뜨더니, 입술이 씰룩씰룩거렸다. 그리고 15분 내내 거울 없이도 그려지는 환한 얼굴을 했다. 잠시 출근이라는 두 글자를 잊는 그야말로 출근길, 인생에 다신 없을 설레는 출근길이다.
무심코 걸으면 분명히 놓쳤을 어여쁜 것들이 보였다. 길 곳곳의 조형물이다. 10년 전 어린 내가 여행을 다닐 때 그러했듯이, 사소한 것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걸었다. 카메라는 상해의 습도는 담지 못해서, 기억이 무뎌진 먼 훗날 사진을 들여다보면 청량함만 남을 것 같았다.
출근길 마지막 경유지는 편의점이다. 중국은 콜라 종류가 다양하다. 딸기맛, 바닐라맛, 복숭아맛... 실망할 것을 알면서도 딸기맛 콜라를 집어든다. 맛이 어땠든 흔한 콜라가 아니니 한번 먹어볼 만은 했다.(이날 후로 다시 사 먹진 않았다)
바빴다고 할 수는 없지만 쏜살같이 지나가버렸던 업무시간이 끝나고, 저녁엔 현지 동료들과 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둥근 탁자는 수많은 요리로 채워지고, 쉴 새 없이 빙글빙글 돌았다.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모든 긴장이 술 몇 잔에 빙그르르 풀렸다. 친절하고 따뜻한 동료들. 이쯤 되면, 다른 복은 몰라도 나의 인복 하나는 믿어도 될 것 같다.
쩨쩨한 양꼬치는 저리 가거라, 찐 양꼬치가 나왔다. 신선하고 큼직한 양고기가 멋들어진 나무꼬치(红柳)에 꽂혀 노릇노릇 구워져 나왔다. 양꼬치 앤 칭따오? 요즘 대세는 양꼬치 앤 우쑤 (乌苏)다.
wusu 맥주는 중국 신장지역에서 만들어지는 맥주이다. 양꼬치 역시 신장의 대표적인 먹거리라, 둘의 조합이 자연스럽다. 칭따오보다 목 넘김이 부드러워서 다가오는 가을이 더 어울린다.
중국생활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됐는데, 요리재료로서의 토마토는 아주 매력적이다. 볶고 끓이고, 요리의 맛이 특별하고 깊어진다.
한국인인 내가 있으니 정제된 메뉴였겠지만, 중국 요리는 언제나 참 맛있다. 닭고기 요리에 넓은 면추가! 환상이다.
15분 여행을 마치고, 첫 회식에 기분 좋게 취해서 모자란 취기를 채우려 편의점에 들렀다 왔다. 이렇게 놓고 사진을 찍고 나니 정말 여행이다. 코로나를 겪고, 아이를 낳고.. 근 5년 만인 듯하다. 지우를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지지만, 그런 것 치고 자유가 주는 쾌감은 짜릿했다. 주어진 일은 그저 성실히 하면 된다.
공허한 호텔에서 맥주를 마시며 확신했다. 아, 생각보다 더 멋질지도 모르겠다, 내 상해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