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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꽃봄 Aug 05. 2023

자네, 상해 장기출장 어떤가?

최과장의 기회와 지우엄마의 위기


  양양에서 맞은 눈부신 여름을 마무리하고 출근 한 월요일이었다. 출근을 하자마자 팀장님의 면담신청이 들어왔다. 대개의 면담은 크고 작은 변화를 예고한다.


- 두 달 정도, 상해 출장인원이 필요해.


   최과장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기꺼이 가겠다고 했다. 내다 보이는 결과가 결국 가야 하는 것이라면, 제안이 왔을 때 주저함이 없어 보여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회사원으로서는 강단이 생겼는데, 지우의 엄마로서는 아직 신입사원이라, 겁이 났다. 두려웠다.


   지극히 나를 위한 결정이었다. 이직 후 조직 안에서 아직 눈에 띄지 못했고,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것도 나고, 뽑아놓고 보니 말뿐인 사람으로 치부되기도 싫었다. 이번 출장이 제대로 입지를 다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놓고 모성애라며 절절거리기는, 이 또한 모순이다. 가슴 아픈 이별을 하고 말았으니, 나머지는 꼭 잘 해내야 한다. 지우와의 시간과 맞바꾼 기회이다.


D-7 묵묵히 둘만의 시간

   

   양양 햇살집 공사가 한창일 때였다. 현장방문이 필요해 진이 집을 비운 주말, 나의 출국이 7일 남은 시점이기도 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난 지우를 데리고 마트를 갔다. 모자를 뒤집어썼더니 재빨리 방으로 뛰어가 작은 모자를 챙겨 와 따라 쓰던 지우. 나는 지우가 없는 시간을 잘 버틸 수 있을까.



   카트에 얌전히 앉아 이것저것 카트 안에 넣는 지우와, 몰래 빼내려는 나의 치밀한 심리전이 시작됐다. 그녀의 선택에는 제법 이유가 생겼다. 이건 이래서 필요하고, 저건 저래서 좋다고 한다. 웬만한 것들은 잘 빼냈는데, 차마 빼놓지 못한 DIY쿠키세트.



  집으로 돌아와 지우를 씻기고, 든든한 피자 한판을 올려놓고 쿠키 만들기를 시작했다. 동글동글 지우가 얼굴을 만들면 어찌저찌 동물처럼 보이게 만드는 게 나의 임무다. 지우는 쿠키가 오븐에 들어간 십여분의 시간을 힘들어했다. 뛰어가서 가만히 지켜보다가, 돌아와서 도대체 언제 완성되냐며 투정을 부리다가 했다. 귀여운 내 아기.


D-1 뭐가 문제냐면,


   오랜만에 집에 온 외삼촌이 반가워 들떠있던 지우에게 넌지시 말했다. 엄마는 내일이면 비행기를 타고 중국으로 가야 하고, 50밤을 자고 나면 집으로 돌아올 건데, 지우가 30밤만 자고 나면, 엄마가 있는 곳으로 올 수도 있다고. 엄마가 있는 곳에 오면, 지우가 좋아하는 퍼레이드를 보러 가자고.

  

   내내 고개를 가로젓던 지우가 퍼레이드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슬퍼 보이던 얼굴이 활짝 폈다. 지우가 엄마와의 이별을 이겨낼 수 있을까?


지우야 잘 지내겠지, 네가 문제지 네가.



D-Day 요란한 이별


   일찍이 일어난 지우가 얼굴을 부비며 나를 깨웠다. 잠에 취해 웅얼거리고 있으면 뽀뽀로 깨워주는 스윗한 지우. 한동안 보드라운 지우를 안아볼 수 없겠지.



   평소와 같이 아침을 먹고, 예배를 드렸다. 부디 우리 지우를 잘 부탁드린다고, 내가 없으니 부디 좀 더 따뜻한 손길로 지우를 지켜달라고, 그리 빌었다.


   예배가 끝난 후 영유아부에서 신나게 놀던 지우를 찾아가 안아 들었다. 지우의 온도가 아니었다. 빨간색 체온계. 점점 말이 없어지던 지우는 내 품을 찾아 깊숙이 안겼다. 출국 세 시간 전의 일이다. 지우는 엄마와의 이별을 알고 있는 듯했다. 모든 것이 내 탓인 것만 같았다.



   잠든 지우를 내려놓고 공항으로 향하는 길, 주룩주룩 눈물이 났다. 창밖에는 요란한 비가 내렸다. 진은 우는 나를 놀리며 달래다, 내가 울음을 그치자 이내 눈시울을 붉히며 뚝뚝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상하이에서의 두 달간의 출장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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