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킷 12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의 이유는 남의 이해가 필요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여다볼 필요는 있지

by 준성 Dec 04. 2024

논리의 잣대로 평가하기 좋아하는 세상에서 가장 혼돈스럽고 뜬금없는 이유.

분명히 다다른 과정은 있지만 그 비약 때문에 남에게 내 생각을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때 내뱉는 단어.

무책임하고 생각없어 보이며 그러나 때로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


그냥.


나는 남들에게 내가 옳다는 것을 늘 증명해야한다고 생각해왔다.

그게 사회가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냥의 이유를 대고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에는 혼란이 오겠지.

행동의 이유를 알지 못하면 다음 행보의 예측 가능성이 크게 떨어져, 자신에게 올 피해를 예측하거나 세상에 끼칠 피해를 예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나의 이유를 남들에게 인정 받아야할 이유가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

남들의 인정에 안정감을 느끼던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나 하는 생각.

이에 따라 비로소 진짜 자유를 느꼈을 때의 해방감.

무엇이 옳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다. 이건 나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해라.'

누군가는 그렇게 무책임한 말이 없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먹고살만해야 가슴이 시키는 일도 하는 것이라고. 그러나 가슴이 시키는 일이 꼭 불가능에 도전하고 이뤄낼 수 없는 것을 꿈꾸는 것인가? 

아니지. 현실적으로 먹고살만해야 가슴이 시키는 일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현실적으로 먹고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슴이' 시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잘못됐나? 그를 나의 생각대로 설득시킬 이유가 있나? 그건 그 사람만의 이유일 것이다. 이때 이 사람의 선택에 나의 의견이 중요한가? 싸움만 날 뿐이다.


전에는 대단한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다. 절대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 

이제는 뭔가에 열정을 쏟는 모습을 지닌 사람들의 모습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왜 저렇게까지 하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사람들.

무아지경에 빠져 그것을 할 때에는 이 세상에 자신과 그 행위 단 둘만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

진짜 부러운 사람들은 돈을 정말 어마어마하게 벌어서 펜트하우스에 살거나 프랜차이즈 100개 가게를 가진 대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다. 그게 없이 얻은 성공은 모래 위 성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대체될 수 있는 성공.


내가 정말 좋아하는 선배가 대학을 졸업하고 시작한 한 운동종목의 국가대표가 되고나서 물어봤었다.

국가대표가 될 줄 알았냐고.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운동을 시작했냐고.


'그냥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던데.'


너무 명쾌한 답이라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원래도 상남자의 표본인 선배가 그런 말을 해서 멋있는게 아니었다. 그래, 그 가능성을 가늠해보는건 누구도 아닌 자신의 특권이다. 그가 가진 재능이 월등했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분야에서 시도해보기 전에 포기한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가끔은 선택을 철회한 이유에 이것저것 부연설명을 붙이는 사람들이 있다.

아, 나 그거 안 하기로 했어. 왜냐하면 내가 지금-

아, 나 다른 거 하기로 했아. 왜냐하면 뭘 봤는데 거기서-

왜 내게 그것을 설명하고 앉아있는가? 나는 그게 궁금하지 않다.

내게 그런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그러한 선택에 아쉬움을 느끼지 않으려고 절망적으로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아쉬움을 느낄 수 있지. 하지만 그 또한 다른 선택일 뿐이다.

이건 이래서 그렇습니다. 저건 저래서 그렇습니다. 아니요, 그런 의도가 아니라...

혀가 길어지면 멋이없다.


'그냥'이라는 말은 선으로 연결된 종이컵 전화기와 같다. 

어질러진 방. 손에 쥔 종이컵.

가느다란 실이 흐트러진 방 물건들에 뒤덮여 있는지도 확인이 안 되지만, 실이 튀어나온 반대쪽 컵이 보인다면 우리는 단번에 실의 존재를 유추할 수 있다.

'그냥'이라는 말은 방 어디선가 내가 들고있는 컵의 반대쪽 컵을 발견한 것과 같다.


때로는 나조차도 선택의 이유를 알 수 없을 때도 있다.

이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어떤 것을 하기로 한 이유가 없다면, 그냥 그런 것이다.

왠지 그렇게 해야할 것 같은 촉, 빅데이터, 직감, 이런 말까지 갈 필요도 없다. 이 또한 내가 앞으로 할 일들을 남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포장된 말일 뿐이다.

나는 그냥 반대쪽 컵을 발견한 것 뿐이다. 

그래, 실이 어딘가에 있겠구나. 내가 하고 싶은 게 바로 그거였어.

내 선택의 이유를 들여다 보는 것은 내가 했던 선택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서 그 근원지를 들여다보고 싶어 궁금해 미칠 때 뿐이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을 때 말이다. 이때에도 남을 설득하기 위해 그 근원지를 뒤지지는 말자. 그것은 말을 꼬이게 만든다.

누군가 내가 내린 결정에 이것저것 토를 달면, 그냥 한마디 내뱉어주자.


'내가 그렇게 하겠다는데, 무슨 상관?'




작가의 이전글 비 온 뒤 맑음 뒤 눈 옴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