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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로 920만원을 벌은 방법

똑딱이에서 라이카까지

by 준성 Dec 19. 2024

어쩌다 돈이 조금 모였다.

군적금과 지금까지 받은 용돈, 그리고 넣어놨던 보증금까지 정확한 액수는 말 못해도 내겐 꽤 큰 돈이었다.

문제는, 나는 돈이 모이면 쓰고 싶어진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한번에.


가장 큰 이유는 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불안에 더 가깝다.

지금은 교회도 안 나가고 성경도 하나 읽지 않는 가짜 기독교인이지만, 모태신앙으로서 내가 받은 달란트(돈)를 땅에 묻어두는 하인에 대한 근본적인 거부감이 있기도 하다.


나는 돈을 무서워하는 편이다. 돈이야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는 것이고, 그걸 좇겠다고 발버둥치다가 망한 주인공들이 나오는 영화나 소설을 너무 많이 봐서.. 그렇기도 하다. 근데 돈이나 꿈이나 파랑새이기는 매한가지인 것 같다


내가 특히 돈 감각이 없기도 하다.

내 친구들 중 몇몇을 보면, 돈 버는 감각이 탁월한 친구들이 있다. 사업이든 주식이든, 돈 버는 것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거나 일을 벌인다. 누군가의 니즈를 캐치하는 감각이 좋아서 빈틈을 잘 파고든다. 이렇게 하면 돈 좀 벌리겠는데? 하는 말을 많이 한다. 나는 그런게 없다. 내게 니즈는... 나의 니즈밖에 없다. 아니 심지어 그 니즈가 무엇인지 모를 때가 많다...


암튼 돈이 모여서 이걸로 뭘 할지 생각해야했다. 그리고 돈은 있는데 욕심은 없어서, 이걸 다 써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후보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적금, 주식, 차 등... 그런데 적금은 재미가 없었다. 이미 들고있는 적금이 몇 개 있었고 거기에 더해서 또 적금을 들면 너무 재미없게 사는 것 같았다. 주식은 당최 할게 못됐다. 조금만 가지고 있어도 수시로 장을 확인할 때의 내 모습이란.. 넣는 돈이 커지면 커질수록 이 생활이 지속될 것이라는 생각에 치를 떨며 돈을 다 뺐었다. 차는... 나는 유지비라는게 그렇게 많이 드는 건 줄 몰랐다.


그래, 내가 지금 돈을 쓸 구석이 없구나. 나는 어차피 옷도 안 사고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가구도 안 사니, 소비적인 것보단 내 발전을 위해서 돈을 쓰자, 가 내 결론이었다. 이게 주객전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영상만 만들었다. 연인의 졸업 스냅을 찍어주기도 하고, 지인들 몰래 운영하는 사진계정이 있기도 하지만, 사진은 늘 영상에 밀려 2순위였다. 그런데 최근 사진에 진지하게 관심이 생겼다. 영상에 정이 떨어진 것도 있었다. 나는 사진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카메라를 알아봤다. 정하면 뒤도 안 돌아보는 성격 때문에 그렇게 하나 둘 알아보다 보니 가격이 점점 올랐다. 차랑 똑같았다. 이 가격에 이 스펙이면.. 좀 더 보태서 어쩌고.. 그러다가 돌이킬 수 없는, 라이카까지 건드리게 된 것이었다.

과정은 대략적으로 이렇다. 워낙 길고 이상한 말들이 많아서 이해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귀찮은 사람은 다다음 문단부터 보길.


『원래 관심 있던 것은 캐논에서 새로 나온 조리개 2.8짜리 24-105 렌즈였다. 워낙에 비싸지만, 그래서? 살 수 있으면 사는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돈을 모으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가진 바디는 크롭 바디 뿐... 그래, 렌즈의 맛을 제대로 보려면 풀프레임으로 가자. 그럼 렌즈에 바디까지 하면... 어느 정도 들겠구나. 그런데 기왕 살 거, 프레스 바디인 R3으로 가자. 나는 사진으로 상업을 할 생각이 있으니, 한번에 좋은 기기를 가는 것이 맞다. 감당 가능한가? 감당은 가능하다. 그런데? 그 돈이면 조금 더 보태서 허세도 충족시켜줄 라이카 M을 사자. 그래 나는 사진을 진지하게 대할 거니까, M도 잘 쓸 수 있을거야(원래도 필름 카메라를 조금 썼고, 캐논 R7으로 AF보다 MF를 더 즐겨쓰기는 했다). 상업에서 라이카를 쓰지 못할리가. 그런데 나는 사진이든 영상이든 색감에 감동받지 않는데... 내 의도를 잘 표현하고 구도와 빛을 잘 이해하려면, 흑백사진을 찍어야겠다. 그럼 모노크롬으로 가는 거야. M10 모노크롬의 가격은... 1000만원.』

- 실제 생각의 과정은 훨-씬 길고 복잡하다. 아주 간략하게 간추린 것이 이 정도이다.


나는 장비의 경우 한방파라서 내가 살 수 있는 것 중 가장 좋은 것을 사는 편이다. 게다가 나는 근본을 너무 좋아해서, 내가 앞으로 할 것들의 철학이 집약된, 일부러 어려운 길을 택하는, 진취적이고 탐험의 자세로 사진을 대하는 예술가적 면모를 발휘하기 위해 라이카는 너무나 적당한 카메라였다. 영상이 안 되고, 컬러가 안 되고, AF가 안 되고... 라이카의 단점으로 보이는 '다른 카메라는 되는' 것들은 내게 거추장스러웠다. 어차피 나는 잘 쓰지 않는 기능들이 카메라에는 너무 많았다. 내게는 좋은 사진을 해야할 이유가 너무 많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사지 않아야할 이유도 없었다. 물론 이 합리화의 일부는 진실이고, 일부는 유머다... 어쨌든 나는 가지고 싶은 카메라가 있었고, 그것이 내 사진 생활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믿음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카메라만 사면 사진으로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러나!!!!!!! 결국 중요한 것은 카메라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찍고 싶은가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다.

흔히 상업 사진이라 불리는 장르들마다 필요한 기능들 또한 모두 다르다. 패션 화보와 상세페이지에 들어갈 제품사진에는 고화소의 바디를 써야한다. 디테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반면 밝은 환경에서 삼각대로 고정해서 찍기에, 저조도 고감도의 기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웨딩 스냅의 경우는 둘 다 중요하다. 주로 어두운 곳에서 찍기 때문에, 셔터 속도가 높아도 보정관용도를 위해 화질이 뭉개지면 안 되니까. 연사 속도와 바디의 안정성 또한 중요하겠지. 보도사진의 경우 비교적 화질보다 연사가 더 중요할 테고. 문제는.. 내가 이러한 것들을 경험해보지 않고 머릿속으로 결론을 내려 글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의 나는, 무엇을 찍든 일단 '찍어야'하는 단계인데 말이다.


당연한 깨달음과 별개로 라이카는 그런 카메라가 맞다. 허세와 철학이 동시에 담긴, 명품적 가치를 몸에 두르고, 그것을 브랜딩으로 승화시키며, 그러나 그러한 허세의 근본은 사진가의 마음을 흔들리게 만드는 철학이 베이스인. 언젠가는 반드시 갖게 될 카메라이다. 써봐야 직성이 풀릴 것 같거든. 그러나 지금의 나는 내 마음이 어떻더라도 라이카를 쓸 단계는 아닌 것이다. 내가 찍어야할 사진의 카테고리가 아직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마음가는대로 찍어봐야지, 라는 마음은 어떤 카메라든 상관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연인이 그러더라. 갖고 싶은 것은 가져야하고, 그걸 선택하는 건 내 몫이니 뭐든 좋다. 그치만 드는 비용 자체는 좋든 싫든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상업에 뜻이 있다면 처음에는 100만원짜리 카메라로 100만원을 벌어보고, 그 다음에 200만원짜리로 200만원을, 나중에 1000만원 짜리로 1000만원을 차근차근 벌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이에 내 생각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나는 평소에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사진을 해야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사진을 왜 찍지 않는가? 내가 무엇을 찍고싶은지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이다. 카메라 이전에, 내가 어떤 사진을 찍고 싶은가가 더욱 중요하겠다. 나는 카메라라는 도구를 통해 돈을 벌고 싶은 것이지, 카메라로 돈을 벌고 싶은 것이 아니니까. 다양한 사진을 많이 찍어보며, 내가 점찍어둔 분야는 있더라도 그곳으로 좁혀가는 과정이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연습부터.


결국 나는 이미 가지고 있는 R7에 물리려고 80만원으로 렌즈를 하나 사고 남은 돈으로 피규어를 몇 개 샀다. 1000만원짜리 라이카는 '우선' 포기했다. 그렇게 920만원을 앉은 자리에서 벌어버린 것이다.

그래, 나는 지금 돈을 번 얘기가 아니라 돈을 아낀 얘기를 하고 있다. 실제로 돈을 번 썰을 기대했다면, 어그로를 끌어서 미안하다. 여하튼 그래서 나는 지금 어디를 가든 카메라를 들고다니는 연습을 하고 있다. 우습게도 사진을 찍지는 못하고 있다. 남들 다 보고 있는데 카메라를 눈에 가져다대는 행위가 부끄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셔터를 눌러야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카메라의 무게에 친숙해지는 연습부터 하는 것이다. 우스운가? 그치만 내게는 용기가 필요한 연습이다.


왜 사진인가?

어떤 사진인가?

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겠다.

그보다는 다가오는 2025년에는 정말로 사진과 영상으로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을 해보며.


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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