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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영 Dec 12. 2023

네덜란드에서 직장을 다니며 난생처음 공황을 마주했다.


네덜란드는 잘못이 없다.


나는 박사학위를 마치고 일을 하러 네덜란드로 갔다.

네덜란드는 교육이나 복지 시스템이 더 선진화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직장 문화도, 워라밸도 좋겠고, 더 자유로운 분위기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 맞는 말이었다. 네덜란드는 선진화된 사회 시스템을 갖추었고 자유로웠다. 그런데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어딜 가나 좋은 사람도 있고 이상한 사람도 있다. 좋았던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될 수 있기도 하고.


네덜란드에 가면서 코로나만 안 걸렸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델타 변이가 막 나오던 때였던가.. 코로나 감염이 폭증하던 시기에 거기서 지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코로나에는 감염되지 않았다. 하지만 공황장애를 겪게 되었다. 내가 공황장애를 겪은 것에 대해 네덜란드를 탓하고 싶지 않다. 네덜란드는 아무 잘못이 없다. 네덜란드에 있는 동안 생전 없던 공황증세가 생긴 것뿐이다. 사람 때문에 생긴 것이고, 기타 상황들이 이를 증폭시켰다. 난 원래 긍정적인 사람이고, 멘탈이 강한 편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내가 공황장애를 겪을 줄 꿈에도 몰랐다.


공황 증상의 원인은 복합적이겠지만 주원인은 한 명의 '직장동료와의 갈등'이라고 하겠다. 누가 들어도 "야, 고생했다.."라고 할만한 근본적인 이슈가 있었다. 업무에 대한 것을 넘어 상대방의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어 그랬다. 그는 당연히 공적인 일과 사적인 감정을 분리하지 못했고, 심지어 제3자의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간질까지 더해져서 그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더욱 놀랍고 불필요한 디테일이 많기 때문에 이렇게 두도록 하겠다. 참고로 이 동료는 네덜란드 국적이 아닌 유럽인이고 나보다 직급이 높다. 주기적으로 '갈등을 일으키는' 행태가 반복되었다.


나중에 유럽 또는 해외 다른 국가에서 일한 경험 있는 지인들과 대화를 해봤을 때, 내가 겪은 게 결코 일반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네 경우는 정말 특이한 케이스다"라는 말을 들었다. 상담을 받기 위해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관계자에게 얘기했을 때에도 네덜란드 사람들 마저 내가 겪은 일련의 사건들이 리포트감, 즉 직장 내 보고 대상이라고 했다.  상담만 받았다. 상담은 철저히 당사자도 모르고 내가 속한 조직도 모르게 제3의 기관과 진행된다.


그저 사람 대 사람 간에 직장에서 일하다가 생기는 의견충돌이나 갈등의 범위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특이한 케이스라 할 수 있겠다. 나는 내가 겪은 구체적인 내용을 풀어도 전혀 상관없지만, 이 넓디넓은 인터넷 세상 속에서 익명으로 두고 상황 설명은 추상적으로 하려고 한다.

갈등 자체보다 공황을 겪었던 것, 자각하게 된 것, 네덜란드의 직장 내 시스템 속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방법, 그리고 개인적으로 노력했던 방법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매주 튤립 사는 낙으로 지냈다.



즐겁게 한국 예능 보고 있는데 왜 숨통이 조여오지..?


공황장애의 증세는 다양하다. 심각성의 정도도 넓은 스펙트럼에 분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내 증세는 누군가가 보기엔 상당히 약할 수도 있다. 내가 겪은 것에 대해서만 얘기하자면 가만히 앉아있는데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쉬기가 힘들었다. 저녁을 먹은 후, 소파에 앉아 한국 예능을 보고 있는데 숨 쉬는 게 너무나도 답답했다. 가슴이 두근두근 빨리 뛰고, 그걸 자각하게 되며 ‘왜 이렇게 빨리 뛰지?’ 하는 순간 더 빨리 쿵쾅쿵쾅 뛴다.


나는 매일 밥을 먹고 나서, 샤워를 할 때, 잠자려고 누워있을 때 상대방이 주기적으로 쏟아놓은 수많은 말들을 곱씹으며 하나하나 머릿속에서 반박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런 순간들이 쌓여 증세가 발현된 것 같다. '티비를 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는데 왜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지만, 내 정신과 마음은 가만히 있지를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공황 증상은 원래 예측하지 못한 타이밍에 나타난다고 한다.


난 이때부터 공황장애가 연예인들만 겪는 병이라는 인식을 완전히 바꾸게 되었다.




더 얘기를 진행하기 전 말하지만 다행히도 지금은 멀쩡하다. 6개월 사이에 간헐적으로 증상이 나타났고, 가장 심했던 건 2달 정도 기간이었다. 내 증상이 심하지 않기도 했지만, 원인이 있는 곳을 벗어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더 악화됐으면 됐지.


네덜란드를 미련 없이 떠난 후, 난 공황 증세 없는 평온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네덜란드는 아무 잘못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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