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상견례 했을 때가 잊히지 않고 생생한데 자식이 상견례를 하는 날이다.
아들 상견례 할 때가 되다니...!!!
내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데 많은 일들이 지나갔다.
20대에 상견례를 했던 때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몸이 이곳저곳 아픈 것을 보면 세월을 속일 수가 없다.
내겐 아들 형제가 있다. 그중 첫째의 상견례 날이다.
아들이 동생도 상견례에 함께 하면 좋겠다하여 그렇게 하기로 했다.
며느리 될 집안의 동생도 함께했다.
늦둥이 남동생은 누나와 나이 차가 많이 났다. 사랑을 많이 받은 듯
인상이 순수하고 좋았다.
상견례에 가기 전 옷차림에 대해 생각했고 가족이 각자 신경 써서 차려 입었다. 둘째 아들은 평소 입지 않은 양복을 꺼내 입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귀금속은 하지 않기.
식사하기 편한 옷차림과 간편한 핸드백의 차림새를 했다.
승강기에 걸린 거울의 내 모습을 보니 초라하게 느껴졌다.
둘째 아들에게 물었다.
“엄마 목걸이라도 하고 와야겠니?”
“얼른 가서 하고 오세요...”
승강기를 붙들어 놓고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반 목폴라 위에 가느다란 목걸이를 했는데 한결 나아 보였다.
내가 상견례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처음 시부모님의 모습이 지금도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내 모습이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기억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두 깔끔하게 차려입고 나서니 이게 가족인가 싶었다.
아들은 차 안에서 오늘 상견례에서 금기시해야 할 말들을 단속하였다.
서로 얼굴을 익히고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하고 왔으면 했다.
아들의 입장을 존중하였다.
장소는 자식이 예약해 놓은 한정식당이었다.
상견례를 주로 하는 장소로 보였다.
사돈 될 분들이 먼저 와 계셨는데 반갑게 맞이해 주셨고 인사를 나누었다.
안사돈의 봄을 알리는 개나리가 연상되는 블라우스가 눈에 들어왔다. 신경을 쓰고 나오셨는지 알 수 있었다.
깔끔한 머리 손질과 네일아트를 하신 모습이 딸을 가진 부모와 차이를 느끼게 하였다.
‘딸이 있었더라면...’
한정식인 식당의 메뉴는 부족함 없이 잘 나왔다.
황태구이, 전복, 게장, 보리굴비 각종 나물, 소갈비 등 나중에 알았지만 보리 굴비는 내가 생선을 좋아한다 생각하여 며느리가 따로 주문했다고 했다.
어려운 식사 중에 사돈에게 얘기했다.
“결혼은 행복하려고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제가 힘들었던 시집살이 며느리에게 물려주지 않을 거예요”
사돈은 감사하다고 하셨고 안사돈의 모습에서 딸을 얼마나 염려하고 걱정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자리에서 한 얘기를 평생 지키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 한 사람이 행복해지려고 한 남자를 만났다. 그 선택이 한 가정을 이루려고 한다. 그 행복을 지켜주고 축복해 주고 싶다. 상견례는 그리 길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아들이 한마디 했다.
“어려운 숙제 하나를 했네요.”
예식장에서부터 모든 걸 아들과 며느리 둘이서 순서대로 하고 있다.
결혼 문화가 참 많이 바뀌었다. 책임감이 강하고 자기 관리에 철저한 아들이 한 달 전부터 상견례를 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사실 요즘 사는 것이 얼마나 바쁜지 얘기를 듣고도 잊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가끔씩 아들이 기억을 되살려 주었다.
“oo 날이 상견례 날이에요....”
그때마다 날짜를 기억하곤 했다.
결혼생활 30여 년 동안 결혼 문화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실감한다.
모든 것은 온라인으로 하는 요즘 젊은 세대들은 많은 정보를 접하고 비교하여 좋은 곳을 찾아낸다. 둘이서 큰일을 계획하고 해 내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생각이 없고 부모에게 의지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오히려 자립심이 강하고 스스로 해 내고 싶어 한다.
단지 제일 큰 숙제는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