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명절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스마트폰에 안부 인사를 전하는 감사의 연하장이 오고 있다.
설 명절이다. 맑은 정신이 들 정도로 날이 춥다.
화려한 봄꽃을 보고 울긋불긋 단풍을 엊그제 본 것 같다. 기다려 주지 않는 계절처럼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다. 순간의 시간이 지나간 것 같은데 일 년의 두 번 있는 명절이 또 지나가고 있다. 어른들의 말씀이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이 찰나였다.”하는 데 공감한다.
시간을 붙들고 싶은데 시절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나만 이리 바삐 지내고 있는지 가끔 생각한다. 주부가 무어 그리 바쁜 일이 있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변해 가는 세상에 맞추어 살다 보니 혼이 나갈 지경이다. 왜 이리 해결해야 할 일. 신경 쓸 일이 많은지. 가끔은 모든 일에 생각 없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렇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 길을 선택하고 싶다.
세상은 인간에게 편리함을 주기 위해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지식이나 재능이 개발된다. 그 편리함을 따라 하기가 벅차다.
현실 앞에 저절로 기가 죽는다. ‘마음은 청춘인데’라는 말이 어느새 내 얘기가 되었다.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철학자 같은 소리를 한다며 서로에게 얘기하고 웃었다.
인간이 산다는 것에 대해 “왜”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어쩌면 인생 중반을 넘어가면 철학 교수가 다 되어 갈 만도 하다.
그만큼 굽이굽이 나이를 먹었다는 뜻이다.
달력의 빨간 날은 잠시라도 둘러보고 쉬어 가는 날이 되었다.
‘벌써 구정이네. 한 살 또 먹었네.’ 하면 한 해가 간다. 1월 첫 달력을 넘긴 적이 엊그제 같은데 마지막 장이 되어 있다. 올해 첫 장을 보면서 ‘올해도 세월 참 빠르게 지나가겠네.’했는데 역시다.
시댁 어르신들 살아 계실 때는 명절 하루 전에 가족이 모여 음식을 만들었다. 거실에 푸짐하게 부쳐내는 부침개랑 가족 중에 좋아하는 음식까지 준비하다 보면 온종일 주방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다듬고 씻고 지지고 볶고 하는 노동이 이만저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싫다고 말을 할 그만한 용기가 없었다.
지금은 조리하기 힘든 음식도 그 맛을 알고 만들어 낼 수가 있다. 하루 세끼 푸짐한 상을 차리고 명절 연휴 내내 같은 음식이 상에 차려졌지만 물리지 않고 맛있게 온 가족이 먹었다. 어머님은 가족 끼니를 생각하면서 머리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이해가 간다. 어머님 세대는 삼시세끼 챙겨 먹는 것이 가정에서 제일 중요한 시대였을 것이다. 나는 50대까지 어르신들 뜻에 따르며 지냈다. 명절 연휴를 시댁에서 지내고 왔다. 시부모님이 살아 계셨더라면 올 명절도 변함없이 온 가족이 모여 함께 보냈을 것이다.
자식 손자가 모여 지내는 명절이 어른들은 어땠을지 싶다. 이제는 그렇게 지냈던 명절이 추억이 되었다. 시댁에서 함께 보냈던 명절이 생생하다. 아버님은 바다에서 나오는 음식을 좋아하셨다. 그중에 한 가지 석화를 참 좋아하셨다. 올 명절에 여수에서 석화를 주문했다.
시댁에서 배운 음식을 해 보았다.
큰 곰솥에 찜을 했다. 굴 껍데기는 버리고 알맹이는 따로 모은다. 국물에 익힌 굴을 넣고 참기름과 김, 대파를 송송 썰어 넣으면 시원한 맛이 난다. 음식 이름은 ‘피굴’이라 부른다. 바닷가 사람들이 해 먹는 음식이다. 그 맛을 배워서 이번 명절에 해 보았다. 남편은 맛있다며 감동하며 남김없이 먹었다. 먹던 중 목이 메듯 눈물을 보일 것 같았다. 한마디를 했다.
“내년에는 이 음식 하지 마. 생각나서 못 먹겠어.”
남편은 시간이 더 지나면 애틋했던 부모도 서서히 잊히고 좋아하는 음식을 찾을 것이다. 잊히는 것이 순리이다.
올 명절은 가족과 지내기로 했다. 30을 바라보는 두 아들, 가족이 좋아할 만한 명절 음식으로 준비했다. 피굴, LA갈비, 잡채, 떡국, 네 가지이다.
어른들 울타리 안에서 나오게 되었지만 낯설다. 30여 년간 길들어 있었다. 평소 밀린 일을 하며 시간을 쓰고 있다.
내년 명절은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해 봐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