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에 집에서만 지내다가 아파트 밖을 나갈 일이 생겼다. 현관을 나서니 목련 나무에 꽃망울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잘못 보았나 싶어 가까이 가서 올려다보았다. 그 곁에 나란히 서 있는 나무도 올려다보니 꽃망울이 맞았다. 핸드폰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곧 ‘하얀 목련꽃이 피겠구나.’
올 한 해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적어 보았다. 꿈을 생각하고 적다 보면 이루어지는 걸 느꼈다. 나는 어느 무언가에 자극받은 사람처럼 공부에 집착하고 있다. 올 연말이 되었을 때 지금 잊고 싶은 내 처지를 홀가분하게 얘기할 수 있었으면 한다. 2023년 1월 1일이 되기 전에 시간을 끌어다 쓰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2022년 말이 되니 마음이 분주했다.
꿈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 만한 커뮤니티를 찾아야 했다. 새해 첫날부터 시작된 챌린지는 나와 비슷한 다짐으로 모인 친구들로 생각되었다. 새 얼굴들과 마주한 신선함이 있었고 새해 첫날에 부지런함이 신뢰감이 들었다. 부족한 공부를 채워 주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소개해 주어 만남을 이어 갈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 덕에 올 1월에 이루어지는 일들이 생기고 있다.
조금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너무 과한 욕심을 내고 있지는 않은지 긴장감마저 든다. 14일과 10일 동안 하는 챌린지 두 개를 신청했다. 두 개를 마치고 나니 버킷리스트 중 꿈 하나가 이루어졌다.
새벽 4시 30과 6시에 하는 챌린지였다.
올해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목적이 있어서인지 제시간에 일어나는데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이번 챌린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마음이 따뜻하고 조용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이 사람들과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때론 실망감을 안겨주고 예상치 못한 일을 겪게 되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경험으로 생각한다.
힘든 과정의 일은 결과가 좋게 나타난다. 온 힘이 들어가는 것이 바르게 가고 있다는 것이다. 몸에 좋은 약은 쓰다는 말이 있다. 좋은 일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뜻이다. 쉽게 이뤘던 일, 달콤한 일에는 마침표를 찍었을 때 문제를 일으킨다. 내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
배움은 사람으로부터 온다. 올 버킷리스트에 사람을 만나는 것도 들어 있다. 온라인에서 만남을 두려움 없이 만나고 오프라인에서 활동을 해 보는 것이다. 거기에 추가할 것이 있다.
꿈이라기보다 소유욕 내려놓기와 조그마한 일에 소중함을 알아가는 것이다. 이런 기본을 모르고 지금껏 살아왔다.
새벽 4시 30분부터 7시까지는 오롯이 내 시간이다. 내 꿈은 나와의 싸움이다.
글쓰기도 그중에 하나이다. ‘꿈 마당’을 만난 것도 신년 초에 한 가지를 이룰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막연히 혼자서 글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기간에 써야 하는 압박감이 있기에 가능하다. 배움을 함께 하는 도반들이 있어 행복하다.
행복은 감사함이고 내 몸의 일부이기도 하다.
새벽에 일어날 수 있는 것, 한 공간에 가족이 쉴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하다. 행복은 늘 곁에 있으며 아주 작은 곳에 있기에 찾는 것이 아니다.
또한 내가 있고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행복이 있으니 내가 있는 것이다.
창문을 열어 밖을 볼 수 있는 것, 바람. 공기를 느낄 수 있는 것. 가끔 내리는 눈, 비는 내가 좋아하는 날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매일 반복할 수 있는 것이 사라지게 된다면
일상이 깨지게 된다. 당연한 일상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간다.
그 지루함이 있기에 다른 일들을 해 나갈 수 있다. 불만과 걱정도 다음 문제이다.
‘내 인생의 가장 불만스러운 것이 무엇인가?’ 묻는다면 나를 성장시키지 못한 부족한 나 자신이다.
나를 중심으로 살지 못했다. 스스로 이끌어 갈 힘이 없다. 그런 부족함을 남 탓으로 하며 불만을 느끼고 살았다. 때가 되니 남들과 같은 삶을 살고 결혼하였다. 남편과 생각이 맞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배우자와의 관계는 불만이기보다는 풀리기 힘든 문제이다. 자식 잘되게 하는 것이 내 인생이 잘 사는 길이라 스스로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각자의 삶이 있고 스스로 갈 길을 가는 것이 가족에게도 도움을 주는 것이라는 것, 지금은 잘 알고 있다. 남편에게 기대어 살 수 없다. 더군다나 자식을 바라보며 사는 세상은 더더욱 아니다.
나를 성장시키지 못한 그 책임이 내게 있다. 30년 전에 알지 못했다고 후회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도 자식들이 주었던 행복했던 일들이 있었기에. 가족 안에서 일어났던 경험으로 너그러움을 배웠다.
나를 성장시키는 데에 인내심을 주었다. 지나온 일들이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