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보면서 세월이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사이 몸과 얼굴은 세월의 시간을 속일 수 없게 되었다. 중년의 얼굴에서 삶이 어느 정도 보인다고 한다. 그만큼 자기 관리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문밖을 나서는 자식에게 “조심해라” 부모는 항상 말한다.
언제나 품 안의 자식인 줄 알았다. 귀여움과 때론 힘들게 했을 때도 내 인생의 좌표는 변함없이 자식에게 맞추어져 있었다. 살면서 자식들이 곁에 있어 기대고 살았다. 자식이 부모를 의지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나는 자식을 보며 살았다. 세월이 언제 이렇게 지났는지 싶다.
결혼할 여자 친구라며 소개해 주는데 이렇듯 예쁘고 야무진 친구를 만나고 다녔는지 기특했다. 양가 부모도 차례대로 만나고 꼼꼼하게 예식장을 둘러보며 미래를 준비해 가는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 무엇을 도와주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이리 무심해도 될지 싶다. 둘이서 결혼반지도 맞추고 부모에게 손 내밀지 않고 준비를 하고 있다. 아들은 처가 부모님을 찾아뵙기 일주일 전부터 어른들이 무엇을 좋아할지 고민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선물은 소고기로 정했다. 자상하게도 어머님에게 맞게 불고기용, 구이종류대로 준비하는 것을 보고
‘엄마인 나보다도 더 자상하구나,’라고 생각했다.
부모는 다만 보금자리를 마련할 때 약간의 도움을 주는 것밖에는 달리 해줄 게 없다. 내게 자식 결혼은 걱정이 되고 더 신중하다. 내 힘든 결혼생활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다.
“부모에게 너무 의존하지 마라. 부모에게 효도하려 하지 마라” 얘기한다. 효자 아들과 사는 며느리가 어떻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며느리에게만큼은 그 아픔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 며느리를 불편하게 하는 건 내 자식을 힘들게 하는 것이고 두 부부의 가정을 순탄하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내 자식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그 이유가 시댁으로 인한 제삼자들로 인해 평화가 깨지게 되는 걸 원치 않는다.
다행히 서로 성격 파악하고 순서대로 잘해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결혼 날짜를 잡고 상견례를 한다고 한다. 내가 결혼했을 때와는 순서가 달라지고 있는 것 같고, 결혼의 문화도 그사이 달라져 있다. 부모로서 자식을 믿고 뒤에서 그림자로 있어 주는 것이 역할인가 싶다.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나의 결혼 당시 모습은 저러지 못했는데...
스스로 잘한다고 했지만 지금 얘들처럼 똑 부러지게는 하지 못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고생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집 문제는 그중에서도 큰 문제다. 남녀가 만나 정식으로 부부가 되어 생활하다 보면 참 많은 일들이 생긴다. 축복해 주어야 할 자식의 결혼이 걱정부터 앞선다. 때론 자식도 결혼 문제로 예민해져 있다.
30년이라는 세월이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집을 어떻게 구해야 되는지. 성격은 잘 맞을지 걱정이 되지만 옆에서 표현하기에도 어렵다.
부모가 되고 60을 바라보게 되니 친정 부모님 생각이 난다.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했었는데 살아보니 보고 배운 대로 하고 있다. 내 기억에서 어릴 적 추억은 잊히지 않는다. 시골 향수는 평생을 안고 부모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갈 것 같다.
사회 초년생 때 건강이 나빠져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집에서 쉬고 온 적이 있다. 부모님은 시골 한의원에서 약을 지어 먹이고 내게 좋다는 약을 구했다. 머나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이고 지고 나르셨다. 그 덕분으로 건강을 되찾았고 직장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때 엄마가 툭 던진 말이 항상 기억에 남아 있다.
“자식이 뭔지!”라는 한숨 섞인 푸념이었다. 어깨에 실린 삶의 무게감이기도 했다.
평소 무뚝뚝하고 표현을 잘하지 않은 분인데 마루에 걸터앉아 툭 내뱉으셨다. 그날 엄마는 시골 장에서 두 시간을 걸어 내 약을 머리에 이고 온 날이었다. 먼 길을 걸어오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마당의 대문을 들어섰을 때 지친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금 엄마는 그 말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기회가 되면 엄마에게 말을 해 보려 한다.
“엄마 나도 자식을 길러 보니 엄마가 했던 그 말이 생각이 나는데. 혹시 그때 기억이 나요?” 하고. 아마도
“모르겠다.” 할 수도 있다.
얼마나 힘이 들고 자식 걱정이 되었으면 그런 말을 했었을지 싶다. 요즘 내가 시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면서 하는 넋두리이다.
‘자식이 뭔지!’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보다 자식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 재료를 산다. 혼자 말을 하면서.
30을 넘어가는 자식이 품 안에 있을 거란 생각이 짝사랑임을 알면서도 끈을 쉬이 놓지 못한다. 내 곁을 떠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어쩌다 자식들이 가게에 오는 날이면 제일 반갑다.
듣기 좋은 말 “밥 주세요” 자식 먹는 것을 볼 때에 부모 마음은 행복하다. 가끔 일상 얘기를 들려주는 것은 일종의 호의 같은 것이다. 신경 써 주는 마음이 고맙다. 부모지만 자식에게 말을 함부로 하는 것도 신경 써서 얘기해야 한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많은 생각을 한다. “너도 결혼해서 자식 길러 봐라” 부모가 내게 했던 말이다.
“네 자식 예쁘냐? 나도 너희들 그렇게 길렀다”
종종 엄마는 그런 말을 한다. 올겨울 친정에서 김장하고 왔다. 주방에서 설거지하고 있는데 엄마는 또 잔소리 시작이다.
“그릇을 이렇게 엎어 놓으면 안 된다. 보기 좋게 가지런히 놓아야 한다.”
“이게 뭐냐? 물이 질질 흐른다.”등 올해에도 마찬가지다.
아침에 먹은 그릇을 점심에 또 먹어야 하니 대충 그릇을 엎어 놓는다. 그게 내 성격이다. 그릇을 단을 쌓아서 보기 좋게 해 놓으라는 것이다. 엄마는 다시 그릇을 층을 쌓아 놓는다. 엄마 시대에는 자식을 가르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지 라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딸이 시집가서 이런 걸로 트집 잡히는 것이 싫었을 수도 있었겠다. 이렇듯 세대는 엄마 시대에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과 지금 세대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나도 자식들에게 잔소리한다. 지금 내 자식들이 엄마 잔소리를 들으면 맞지 않는 잔소리일 것이다. 엄마가 내게 했던 잔소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산전수전 많은 일들이 지나갔다. 원수 같은 남편이라 하면서도 둘이서 자식을 이만큼 길러냈다. 남편은 며느리감을 만나고 온 이후 주변에 얘기하고 다닌다.
“아들 결혼 한다며?” 이웃들의 인사말이 되었다. 올 한 해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