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이혼
너만큼 하고 사는 사람
루서, 너 만큼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사는 사람이 어딨 니.
공연 보고 싶을 때 공연 보고, 여행 가고 싶을 때 여행 가고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잖아.
주변에 잘 나가는 사람들만 보지 말고, 나를 봐~
난 뭔가를 하고 싶어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아니 뭐... 다들 주변에 나보다 괜찮게들 살던데.... 어쩌고, 저쩌고... 어떤 맥락에서 갑자기 언니가 말했는지 모르겠다. 하고 싶은 게 많다고 했던 말 뒤였나.. 언니의 말을 듣는데 문득 무안해졌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언니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언니가 그 뒤에 붙인 말은 이런 거였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꼼짝할 수 없어서 답답하다. 그냥 생각하지 말고 집에서 뭐라도 해야 한다고."
언니는 연로하신 엄마를 챙겨드리느라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언니나 나나 인생의 비슷한 시기에 이혼을 했지만, 결혼생활의 온도도 이혼 이후의 평안도 다르다는 것을 잘 안다. 가부장적인 남편에 뻔뻔한 시댁 식구들로 인해 고생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 이후 전남편의 경제적 조력을 받지 못한 것을 모르지 않는다.
내가 그리 편하고 여유롭게 살아온 것도 아니다. 친구나 언니처럼 부모님으로부터 필요할 때 경제적 도움을 받은 적도 없고 상속이나 증여 같은 기회는 누려보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언니가 부러울 때도 있었다. 어려서는 가난하게 지냈다고 해도 중년 이후로 무언가를 물려받지 못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보였다. 철저한 "내돈내산 인생"이 나에게 주어진 운명인걸 어쩌랴.
결혼할 때 얼마를 도움 받고, 얼마를 물려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하나하나 내 손으로 일궈야만 했던 시간이 더 뼈져렸지만 그 시간이 내게 준 성취도 있었기에 괜찮았다. 뭐든 내 힘으로 했다는 자부심도 있기에 남들이 나보다 나아 보여도 자괴감이 빠지거나 한탄한 적도 없는 것 같다. 알아서 개척하고 알아서 자력으로 일구어온 삶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자력을 방해하는 나쁜 사람들이 주변에 없어서 다행으로 여길 때도 많고, 주변 사람들이 착해서 고마울 때가 더 많다. 거기에 나이가 들어가며 언니 말대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좋다. 나는 나만 마음먹으면 된다. 한마디로 걸림돌이 없다. 가끔은 외롭다거나 쓸쓸하다는 감정이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런 감정들을 언니에게 말할 정도는 아니었다.
언니의 말을 분석해 보았다. 언니는 내가 부러운가 보다. 이혼을 하고 아이들이 성인인데도 경제적으로 챙겨주는 전남편이 있고, 아이들이나 친정엄마나 신경 쓰게 하지 않아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며 다양한 경험을 하는 내가 부러워서 그랬나 보다. 언니가 어떤 마음으로 하는 이야기인지 이해가 되었지만, 낯설기도 했다. 내가 누군가에 에 부러운 삶일 수도 있다는 것이.
네가 부러워!
"나 이제 주말에 시간 많아~ 심심할 지경~ 약속 주말에 잡아도 돼."
언니들과 카톡방에서 대화를 하다가 주말의 심심함을 이야기했더니, 언니가 그런다.
"이 언니 제사 하느라 뼈 빠졌다. 제사 안 지내는 루서, 네가 부럽더라."
결혼 생활 중에도 제사 스트레스는 없었지만, 이혼 후에는 아예 제로인 상태. 제사 때문에 일정을 바꾸고 머나먼 친척 접대까지 해야 하는 언니는 제삿날만 오면 이혼녀가 제일 부러울 것이다. 성격이 워낙 좋아서 그렇지, 평생 시어머님 모시고 사는 언니의 삶, 조금만 예민해도 힘들었을 인생이다.
"맞네. 제사 없는 내가 최고네."
맞장구를 쳐주었다. 이런 부러움은 오랜 주부 생활을 해 온 사람으로서 천만 프로 공감! 그 부러움이 무엇인지 알기에 기분이 좋다.
오랜만에 퇴직한 언니들을 만났다. 만나자마자 그런다.
"루서, 너의 결단이 부러워!"
'아니 왜 이렇게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
결혼생활 20-30년 된 중년 여성들은 이혼녀가 제일 부러운가 보다. 20년간 이어지는 인연 속에서 언니의 결혼생활이 얼마나 신산한지를 잘 알기에 언니의 말이 또 백 프로 공감된다.
언니는 늘 나의 이혼을 부러워했다. 집에 같이 있기만 해도 답답한 남편에게 속을 털어놓지 못하고 참고 살아야 하는 세월이 몇 년인지. 환갑이 지나고도 그렇게 사는 언니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 타인의 삶에 대해 조언도 평가도 비판뿐 아니라 감정 표현도 안 하려고 노력하지만, 언니만 보면 속이 타서 자꾸 말하곤 한다.
"언니도 결단을 내리고 이제는 좀 자유롭게 사세요!"
그렇게 못하는 언니가 안타까운데, 들어보면 이해가 된다. 현재 상황이 안 좋은 남편과 지금 이혼하면 그를 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에, 이혼을 하더라도 일이 풀리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는 언니. 평생 가슴앓이 하면서 참아와서 암까지 걸렸지만, 형부는 그런 언니의 속을 잘 모른다. 내내 참아온 사람이 이혼을 하자고 하면, 그럴만했다는 반응이 아니라 이제 와서 갑자기 버리냐고 할 것이 뻔하다. 가족을 생각하다 보니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언니는 짜장면 배달하듯 신속 정확하게 이혼을 한 나를 몹시 부러워한다.
언니는 내가 아이들을 어떻게 키웠는지, 얼마나 바동거리며 결혼생활을 했는지, 얼마나 애쓰며 동동거리며 살았는지를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내 삶이 편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잘 안다. 지금의 자유로움이 그럴만한 거라고 응원해 준다. 언니는 어디 가서 꺼내지 못하는 속 터지는 스트레스를 우리에게 풀어놓으며 위로를 얻는 것에 만족한다. 그랬던 언니가 선명하고도 정확하게, 구체적으로 나를 부럽다고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이혼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강렬한지, 피부에 와닿는다.
생각해 본다. 나의 현재를. 이혼을 하고 잘 살아가고 있는가 보다. 나만의 시간을 잘 꾸리며 지내는가 보다.
가끔은 "내가 이혼을 해서 이런 일도 당하나, 전남편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어요."
말은 했지만. 황당한 에피소드들도 아무나 겪어보는 것은 아니니 생각하기 나름이다. 언니들과 친구들은 유부녀라서 누려보지 못하는 특색 있는 경험이라 재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혼을 하고 "안 됐다... "라는 눈빛을 받은 기억이 없고 오히려 "이혼하고 참 재미있게 잘 사네"라는 말은 자주 들었다. 이혼 이후의 내 삶이 타인이 보기에 꽤나 괜찮아 보이는가 보다. 가끔은 '이혼하지 않았더라면.' 상상도 하는데, 오래가질 않는다. 현재를 어떻게 재미있게 살까, 미래의 내 시간을 어떻게 채울까. 하는 생각이 훨씬 크다. 많이 놀았는데, 이제 그만 놀고 배우는 시간을 가져볼까. 심심한데 사람들과 어울려 놀아볼까. 살면서 이런 고민 정도를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 흔하랴. 내 인생 참 괜찮다.
살다 보니 꼬인 인연으로 당황스러운 일을 겪기도 하고 이 나이가 되도록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게 없어서 허탈할 때도 있다. 별 볼일 없는 인생이라는 걸 잘 알기에 스스로를 '놀기 좋아하는 뽀로로'라고 규정하고 "노는 게 제일 좋아"라며 합리화했다. 합리화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위를 쳐다보면 부러운 사람들이 많아서 내 수준에 만족하려고 했고, 실제 만족하고 있다. 일과 놀이, 관계의 삼각관계를 그런대로 조율하며 지내왔다고 스스로를 평가한다.
돈, 건강, 취미, 관계
나이가 들수록 돈, 건강, 취미(놀이), 관계 가 가장 중요하단다.
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돈을 쓰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하며. 돈과 시간이 주어졌을 때 할 수 있는 놀이, 취미생활과 그것을 할 수 있는 관계망. 이것이 중년 이후의 행복을 좌우하는 요소라고 한다. 악착같았던 젊은 시절과 미리미리 대비하는 성격 때문에 특별한 리스크만 아니라면 노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명품은커녕 이 만 원짜리 원피스에 행복해하는 낮은 소비 수준 만족도를 갖추어 다행이다. 나이 들수록 투자를 하고 저축을 하려고 하지 말고, 소비 수준을 낮추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는데 알뜰하게 살아와서 이미 익숙하다.
건강은 아쉬운 부분이지만, 약골도 아니고 병이 있는 것도 아니니 앞으로도 잘 챙기면 된다. 몸에 좋은 것 먹고, 술 줄이고, 운동도 꾸준히 하면 나쁘지 괜찮을 것이다. 놀이와 취미는 부자다. 몇 가지 더 배우고자 하는 의욕도 있으니, 취미 그래프는 누구보다 상위그룹에 속할 것이다. 인간관계는 타인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지 몰라서 단언할 수는 없으나, 오랜 인연들이 있어 외롭지는 않다.
새로운 사람 만니는 것도 좋아한다. 살다 보니 사람들에 대한 불신으로 경계심이 생기긴 했지만 어려서부터 사람들을 좋아하고 맞춰주며 도와주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이혼을 하며 새롭게 벌어진 인들이 낯설어서 날을 세운 적도 있지만, 잠시 뿐이었다. 지금은 정서적으로도 편안하다. 필요하다면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다만 놀이와 취미, 관계망을 위해서는 돈이 많이 든다. '내가 돈이 많이 드는 여자인걸. 화장 안 하고 가방이나 옷은 싸구려라 꾸미는 돈은 안 들지만, '공연 보고 사람 만나느라 돈 많이 쓰는데?' 자각하며 웃기도 한다. 그래도 외로움 비용보다는 낫지 않은가?
영국은 재경부, 복지부처럼 외로움부를 만들었다고 한다. 외로움을 처치하기 위한 비용이 많이 드는 현대사회를 대비해서 외로움부를 창설했다고 하니, 개인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도 외로워서 건강을 잃는 것보단 미리미리 준비하는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낫다고 여긴다.
경계할 부분은 있다. 사람에 대한 판단은 까다롭지만 잘 믿는 어수룩함이 있어서 휘둘릴 수도 있으니, 혼자서도 잘 지내야 한다. 혼자서도 잘 지내려면 혼자만의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 이혼 후, 자연스럽게 연습을 한 것도 같다. 혼자 걷고 혼자 책을 읽고 혼자 카페에서 자판놀이도 잘한다. 여기에 혼자만의 배움을 지속하면 완벽해질 것 같다. 배움은 또 새로운 관계망과 인연을 만들어 줄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래. 나도 누군가는 부러워할 수 있는 인생이구나.
정말 이혼녀의 삶이 부러울까? 부럽다고 해놓고 돌아서서 '그래도 이혼하고 사는 것보다 결혼생활 유지하는 게 낫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들의 속내 아닐까. 결혼을 비추하면서도, 결혼을 하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고 하는 것처럼. 그래도 결혼은 해보라고 하는 것처럼.
자주 듣는 말속에는 진심도 있을 것이다. 말로만 하는 위로가 아니라 부러운 요소도 있을 것이다. 바꾸고 싶지는 않아도 나에게서 떼어와 그녀에게 붙여보고 싶은 영역이 있기에 하는 말일 것이다.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다. 만족스러운 삶이면서도 어쩌다 찾아오는 정서적 불안이 속상할 때도 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겠다. 누군가에게 단단하고 당당하면서도 재미있는 삶으로 보이는 것처럼 진짜 그런 삶을 살면 되겠다.
갑자기 쏟아진 비 이후 이뻤던 하늘이 저녁 내내 이뻤다.
소나기 이후 이뻐진 하늘처럼.
갑자기 번개 치고 천둥 치고 벼락 쳤던 이혼,
이혼 이후 내 삶도 하늘처럼 이쁘게 마무리되며 아름답게 저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