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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서 Sep 26. 2024

08. 네 수고 내가 알지!

After 이혼


자기 연민


가끔은 나도 모르게 자기 연민에 빠질 때가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기를 비난하는 것보다는 자기를 동정할 때 오히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줄 수도 있다고 한다. 자기 연민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지만, '내 인생 이만하면 괜찮지.'라는 생각을 부침개 뒤집듯 홀랑 뒤집어 버리게 만드는 자기 연민은 그리 반가운 감정은 아니다. 


요 며칠 자기 연민에 빠졌더랬다. 대체로는 씩씩하지만 가끔 '내가 언제까지 이런 모드로 살아야 하나' 한숨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요즘이 그랬다. 내 상황이라는 것이 큰 변동이 없는데 왜 그럴까. 스스로 분석을 해보니 꼭 감정 때문만은 아닌 것도 같다. 습한 날씨와  저조한 컨디션 때문에 생긴 복합적인 이유다. 인간을 지배하는 건 내면이 전부 인 것 같지만 햇살과 바람, 온도와 습도처럼 자연환경의 사소한 영향도 무시 못하니까. 


길게 가져가기 싫어서 상황을 타개할 계획을 세우고 계산에 들어갔다. 뭐든 빠르게 계산하고 실행하는 게 내 스타일이다. 귀차니즘 모드가 차라리 나을 때는 바지런함이 손해라는 것을 알면서도  미리미리 계획하곤 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혼자 고민하다가 전남편에게 톡을 보냈다. 모양새는 의논이었지만, 자기 연민과 한탄을 마음껏 버무렸다. "내 인생은 왜 이런 걸까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 언제까지 계산하면서 살아야 하는 건지, 현재를 인내하며 미래를 희망해야 하는 건지 암담해져서 한 소리였는데,  반응이 따스했다.


그러게. 평생을 고생만 하네.


함께 했던 세월


내 삶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옆에서 모든 걸 지켜본 사람은 결국 배우자일 것이다.  목표와 성취에 몰입하느라 바빠서 가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이들은 어떻게 큰지조차 모르는 가장도 있겠지만 우리 세대 남자들은 가부장적인 아버지와는 달랐다. 직장동료의 남편을 보면 평생 일하는 아내와 살기 때문인지 집안일에도 익숙했고 양육도 함께 했다. 딸의 머리를 빗겨서 출근길에 직장 어린이집에 맡기고 퇴근 후 데려가는 아빠들도 많았다. 요즘은 남편이 먼저 퇴직해서 아내를 출근시켜 주고, 고등학생 딸들의 밥을 담당하는 아빠도 흔하게 본다.


애들 아빠도 그랬다. 비슷한 직종이지만 업무 강도가 강해서 매일 10시 퇴근하던 젊은 시절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함께 육아를 했다.  아이들이 밤새 열나면 큰 애는 전남편, 작은애는 내가 물수건으로 닦아주곤 했다. 물론 작은애가 3배는 더 자주 아팠고, 아이가 입원을 하면 병원에서 자는 건 엄마인 내 몫이긴 했지만 출근하는 아내를 위해 함께 해주려고 노력했다.


워킹맘으로 맡길 곳 없는 아이들을 키우며 재테크까지 하느라 정신없이 살았던 시간을 눈감고 외면한 남편은 아니었다.  그 시절을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전남편일 것이다. 고생스러웠던 시절은 바로 옆에서 지켜본 사람만 안다. 타인은 알 수 없는 뜨거운 삶의 온도, 과부하가 걸려 작동을 멈출 것 같았던 시절의 어려움은 엄마도 동생도 다 알지 못한다.  힘든 시절을 나만큼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곁에서 같이 겪은 전남편일 수밖에 없다.  그는 내 고생을, 내 수고를 알아주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수고를 알아준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풀릴 때가 있다. 나를 위해서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는 것은 본인을 위한 가사 노동이기에 수고라는 느낌은 없다. 내 선택일 뿐이다. 해먹을지 사 먹을지. 가사 노동을 할지, 말지 마음 내키는 대로 하면 된다. 먹고 싶지 않아도 요리를 하고, 어질르지 않아도 매일 청소를 해야 하며  자고 싶어도 못 자는 상황들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엄마가 된 이후 부여받은 혹독한 의무이다. 예상하지 못했는데, 이럴 줄 몰랐는데 날아온 과한 고지서처럼. 가족을 위한 노동은 보람이 있다가도 시지프스가 된 것 같은 우울에 빠지게도 만든다. 끝이 없는 고된 반복. '사랑하기 때문에' 힘을 내보지만 애씀의 티도 나지 않는 가사 노동은 스스로 의미를 찾지 못하면 권태로워지고 지겨워진다. 


재테크도 마찬가지이다. 나만을 위해서라면. 악착같이 모으고 아낄 필요가 있을까. 스스로만 감당하는 일은 마음부터 가볍다. 엄마라는 역할의 책임감은 아이를 출산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가벼웠던 적이 없다. 아이들을 위해서 악착같을 수밖에 없다. 자식을 키우는 일이 이럴 줄은 몰랐다. 대한민국 여성이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아이 둘을 키워내는 것은 기적이거나 불가능이 아닐까. 핏줄을 위한 본능이라 해도 하나가 아닌 둘, 셋은 버겁고 무겁다. 왕관의 무게는 무겁다는데, 엄마는 왕관을 쓴 자도 아니다. 하녀에 가까운 것이 진실이다. 벗어 버리고 싶은 무게가 껌딱지처럼 들러붙어 다른 행성에 온 듯 지나친 중력으로 작용을 할 때, 평생 해온 수고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위로가 된다.


전남편이 아이들의 엄마로서 수고를 알아주고 공감해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부부사이만 알 수 있는 온도,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통장 입금으로 도와주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구석구석의  묵은 수고를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끊어진 부부 사이지만, 아이들 문제와 관련해서 기댈 수 언덕이 있다는 사실은 힘이 되곤 한다.


이혼 이후에도 대체로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씩씩할 수 있는 것은 가 나를 책임질 수 있다는 당당함에도 있지만 내 삶을 증명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유인 것도 같다. 수고를 알아주는 사람이라면 가끔 밉더라도 평생 함께 하는 것이 좋겠고, 인연이 닿지 못해 끈이 끊어지더라도  서로서로 마음 도리는 하며 사는 것이 좋겠다. 







#이혼 #배우자 #아빠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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