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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로마테스 Feb 18. 2023

호곡장(好哭場)의 순례자들

2021.09.23 개인 SNS에 올린 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치가, 그리고 문인이셨던 연암 박지원 선생의 열하일기에는 좋은 울음터, 이른바 호곡장(好哭場)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한평생 산 뿐인 좁은 반도에 사시다, 청나라에 가시는 길에 사방팔방 어디를 봐도 거칠 것 하나 없는 요동벌 평야를 보고 외치신 말씀이시다. "훌륭한 울음터(好哭場)로다, 크게 한 번 통곡할만하구나!" 그와 길을 동행하던 정진사가 그 이유를 물으니, 칠정(七情)이 극에 달하면 결국 울음을 자아내기 때문이라 답하셨다. 기쁨이든, 답답함이든, 후련함이든, 즐거움이든. 그 어떤 감정도 극에 이르면 눈물이 나오고 울음이 터진다. 인식의 범위를 한참 넘어선 거대한 평야를 눈앞에 두니 감정도 역시 극에 달한다, 그러니 애곡 하기 마땅하지 않겠느냐, 연암 선생께서 설명하셨다.


호곡장. 인식의 저변 너머로 멀리 뻗은 벌판. 수학이 바로 그렇다. 광막하고 망연히 뻗은 광야에 작디작은 수학자는 옳은 명제를 찾아 순례한다. 으레 순례길이 그렇듯, 우리의 여정은 결코 순탄치 않다. 찾고자 하는 명제는 너무나 산발적인 반면, 우리는 심각한 근시라 고작 지척 앞밖에 볼 수 없다. 여정을 인도하는 직관이란 길잡이는, 때로는 우리를 구덩이에 밀어 넣어 골탕 먹인다. 못 미덥다만 다른 길잡이랄 게 있나, 직관에 의지해 손으로 더듬어가며 명제를 찾는 여정은 모든 수학자들의 일상이고 일생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일까?


나는 타원곡선의 완전한 이해를 꿈꾼다. 이것이 나의 둘시네아이고, 파티마이며, 에바 부인이다. 다른 수학자들 역시 각자 완전한 이해를 꿈꾸는 것이 있다. 열망의 대상은 제각기 다르겠다만, 그 열망은 수학자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대부분의 경우, 평생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는데 실패한다. 위대한 의문은 위대한 학자보다 수명이 긴 법이다.


하지만 이루지 못할 꿈을 꾸고, 이기지 못할 적과 싸우고, 견디지 못할 고독과 맞서고, 완성할 수 없는 증명을 써 내려가는 그것이 수학자다. 결코 이룰 수 없는 사명을 묵묵히 견디는 모습이 돈키호테와 닮아있지 않은가. 완전한 이해와 절대적 이성을 향한 이해할 수 없는 집착과 비이성적인 광기란! 참으로 고고하면서도 비참하고, 숭고하면서도 안타깝지 않은가.


모든 수학자들은 마음속에 각자의 둘시네아를 품고, 제각기 다른 속도로 순례한다. 하지만 그들의 일생은 놀랍도록 닮아있다. 그래... 결국 모든 수학자들은 동형(同形; isomorphism)이다. 이 망연한 플라톤의 광야에 마주치는 모든 방랑자들에게, 여기 작은 향사는 축복을 건넨다. 당신의 여정 끝에 당신이 찾던 답을 구할 수 있길.


"밝은 대낮 수학자는 개울가의 돌을 하나씩 뒤집어보듯 정확성을 기하며 그가 만든 수식과 그 증명을 확인한다. 그러나 휘영청 보름달이 뜬 밤에 수학자는 꿈을 꾼다. 별 사이를 두둥실 떠다니며 천상의 기적에 감동한다. 수학자는 바로 거기에서 영감을 얻는다. 꿈이 없다면 예술도, 수학도, 삶도 없다." - 故 마이클 아티야 경


최근에 수학자들이라는 에세이집을 펼쳐보았다. 나이도, 문화도, 언어도, 분야도 모두 다른 54명의 수학자들, 허나 그들의 이야기는 비슷한 울림이 있다. 그 울림은 나의 고유진동과 잘 맞아떨어졌는지 내 마음을 공명하게 했다. 그들 인생의 이야기에, 그리고 나의 인생의 이야기에 작은 헌사를 남기고 싶다. 순례를 떠나 줘서 고맙다고, 순례를 함께해 줘서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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