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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걍보리 Feb 27. 2024

숲길에서

21. 경쟁과 협동

  사회심리학자 셰리프는 1954년 오클라호마에 있는 주립공원(Robbers cave)에서 12살 소년 24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였다. 12명씩 두 집단으로 나누었는데, 친한 친구들은 일부러 흩트려 놓았다. 대신에 각자가 소속된 집단원끼리 더 어울리게 하였다. 그 후 운동경기나 식사배급 등을 통해 두 집단이 경쟁하게 하였다. 두 집단 사이에는 긴장감이 돌았다. 서로 욕하고 위협했다. 심지어 예전에 친구 사이였던 아이들도 서로 미워하였다.

  일부러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지 않아도, 두 집단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서로 싸웠다. 심지어 같은 소속의 집단원 사이에도 다른 집단과의 경쟁에서의 기여도에 따라 상호평가를 하였다. 경기가 끝나면 기여도가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을 비난하였다. 서로 간의 증오심이 분위기를 지배하였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셰리프는 교육과 설득, 대화를 통해 갈등을 줄이려고 했다. 하지만 효과가 없었다.(지금은 이런 실험이 금지되어 있다. 비윤리적이기 때문이다. 연구에 의하면 아무런 갈등 요인이 없는 집단원을 A집단과 B집단 소속이라고 분류만 해 놓아도 양 집단 사이에 긴장이 생긴다. 갈라치기는 갈등을 키우고 자기편을 만드는 아주 쉬운 방법이다.)

  다행히 셰리프는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을 찾았다. 24명의 구성원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앞에서 그들은 서로 협력하였다. 공동의 과제(또는 적) 앞에서 그들은 연대하였다. 고장 난 상수도를 힘을 합쳐 고치고, 진흙탕에 넘어진 트럭을 협동하여 끌어내면서 서로 친해지고 화해하였다. 나중에 집으로 돌아갈 때는 구성원 모두가 친구가 되었다.

  사람들은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하면서 산다. 상대방보다 더 우월하려는 경쟁 상황에서 생기는 감정은 경계심과 미움이다.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오락 상황에서도 경쟁심이 커지면 경쟁자를 미워하게 된다. 명절에 가족끼리 화투를 치다 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나친 경쟁심 때문이다.  

  반면에 서로 협력하여 과제를 해결하는 상황에서는 함께 일하는 사람사이에 연대감이 생긴다. 도움을 주고받을 때 서로 고마움을 느낀다. 협력자가 되어 과제를 해결하면 자신을 선한 사람으로 인지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된다.

  어떤 일을 할 때 경쟁형식을 취할 수도 있고 협동형식을 취할 수도 있다. 어떤 형식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참여자들의 만족도나 성과는 달라진다. 회사 사이에 경쟁이 치열해지면 회사 내부자들 사이의 협력은 강화될 수 있다. 가족원 사이의 갈등관계도 협력해야만 풀 수 있는 공동과제 앞에서는 협력관계로 바뀔 수 있다.

  우리 사회는 경쟁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여러 전문가들은 현대 한국에 자살자가 많은 원인을 지나친 경쟁현상에서 찾는다. 경쟁에서 우위에 있는 자, 더 많이 가진 자를 위한 제도와 정책은 자주 만들어진다. 기득권이 제도와 정책을 만드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경쟁에서 밀리는 약자를 돌보는 정책과 제도는 기득권의 저항에 부딪혀 쉽게 약화된다. 

  다양한 자원을 많이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가 경쟁하면 누가 더 유리한가? 더 많은 자원을 가진 자가 유리하다. 따라서 불평등한 현실에서의 경쟁은 불평등을 더 확장하게 된다. 경쟁을 통해 더 많은 사회적 과실을 챙기는 세력은 언제나 기득권이다. 양극화가 지속되는 이유다.

  능력주의는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 있는 더 많이 가진 자들이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현실을 숨기고 왜곡하는 이념적 장치다. 입시에서 대학이 수능성적 외에 논술 경시대회성적 봉사활동점수 등을 늘리는 정책은 공정성을 확장하는 정책일까? 그 정책이 능력주의를 보장해 줄까? 입시정책이 복잡해지면 해질수록 더 불공정해진다. 과도한 경쟁체제는 명백하게 자원을 갖지 못한 학생에게 더 불리하다. 실제로 이른바 서울의 일류대학은 점점 더 부유층 자녀들 비중이 커지고 있다.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게 된 것이다.

  학교는 사회의 경쟁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한다. 학생들은 협동을 통한 우정을 배울 기회를 빼앗겼다. 경쟁을 통한 성공신화에 매몰되어 그릇된 개인주의를 심화하고 있다. 유치원에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서열화는 극심하다. 1명의 승자 아래 99명의 패배자가 서 있다. 1명의 승자도 추락의 불안에 떤다. 경쟁심에 사로잡힌 학생에게는 교실에 있는 모든 사람이 경쟁자다. 친밀감이 자랄 마음의 공간은 작아진다.

  우정과 연대 그리고 자긍심을 익히지 못한 학생들은 심리적 외톨이로 자란다. 스스로 외톨이가 되어간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는 강한 경쟁교육으로 경쟁력 있는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자원부족을 이유로 한국 학교교육의 과도한 경쟁상황을 정당화하려 든다. 정말 그럴까? 아니다. 경쟁학습보다 협동학습이 과정이나 결과에서 더 우수하다는 연구가 그 반대보다 많다.

  인류는 경쟁보다는 협력을 통해 더 많이 발전해 왔다. 경쟁을 통해서만 많은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현대 한국의 경쟁을 통한 성공신화를 반성해야 한다.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경쟁심보다는 협동심을 길러야 한다. 일상의 곳곳에서 협동을 통해 더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협동을 유도하는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가정에서, 일터나 활동공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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