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2024년 3월 9일의 단상(斷想)
오늘은 자꾸 내 마음을 혼란하게 하는 한 사람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 한다. 그를 통해서 내가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더 잘 알고 싶다. 이렇게 글로 써 보려는 이유는 지금의 내 생각을 잘 기록해 두었다가 훗날 어떻게 변했는지 알려는 데 있다. 기록해 두지 않으면 망각하거나 기억을 왜곡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는 몹시 불쾌한 사람이다. 이상하게도 점점 더 싫어진다. 그 사람에 대하여 별로 알고 싶지 않다. 가능하면 아주 멀리 하고 싶다. 나는 그의 언행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지 않다. 그것은 이차적인 것이다. 원천적으로 그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싫다.
역설적으로 그는 나의 반면(反面) 교사이다. 그처럼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를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또 무엇을 싫어하는지 명확해지는 것 같다. 지금 나의 불쾌감이 선입견이나 편견 등 오해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순전히 내 성향 탓인지 반성하기 위해서라도 더욱더 기록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10년 전에는 그를 전혀 몰랐다. 아무런 인연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대통령(박근혜) 탄핵소추 관련하여 특별검사팀의 한 사람이었다. 뉴스에 나왔을 때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들었다. 그 뒤로 이런저런 사건과 관련하여 그의 이름이 각종 매체를 타고 흘러 다녔다. 하지만 그것들은 내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 뉴스들은 소음이 되어 귓가를 스쳐 지나가 버렸다.
그가 ‘한국호’라는 배의 선장 후보가 되자 그의 역사관 정치경제관 인생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의 선택이 나의 삶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관심을 많이 가져보았자 내 힘은 극히 미미하다. 고작해야 나의 권력은 선거 때 행사하는 1장의 투표권일 뿐이다. 수천만 분의 1이다. 비록 작은 권력이지만 그래도 뭔가 알아야 내 주권을 행사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당나라의 측천무후는 공포정치를 했지만 백성들에게는 선정을 베풀었다. 태종 이방원 역시 권력투쟁으로 평생을 보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그를 세종 시대 번영의 토대를 닦았다고 평가한다. 마오쩌뚱도 박정희도 공과(功過)를 동시에 평가받는다. 그가 훗날 어떤 평가를 받을지 속단하고 싶지 않다. 그가 미국이나 일본에 우호적이며, 필요이상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적대시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와 달리 북한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면서 한미일 동맹관계를 강화하여 비정상적인 국가를 정상화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 정치적 견해일 뿐 정답은 없다. 그래도 결과는 온전히 국민의 몫이다. 일차적으로는 그런 선택을 한 정치인이 책임지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런 지도자를 선택한 국민이 책임을 지는 것이다.
내게는 정치인들의 언행이나 그에 대한 언론인들의 견해를 평가할 능력이 없다. 나라고 해서 왜 하고 싶은 말이 없겠는가? 그래도 말은 들어줄 사람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내가 목에 핏줄을 세워가며 떠들어댄들 무게 없는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내 분수를 알고 조신하게 굴면서 그저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펼치는 각종 행태를 구경하면 될 일이다.
검찰의 행태도 눈여겨보아야 할 것 같다. 내 보기에 검찰이 국회의원들 위에 있는 것 같다. 검찰의 캐비닛은 그 자체로 막강한 실체적인 정치권력이다. 가까운 친구가 검사였고 검사 조카도 있지만 검찰 조직의 문제점을 전혀 모르고 살았었다. 그런데 그를 통하여 정치검사의 폐해를 극명하게 알게 되었다. 선출권력인 국회의 지휘 감독 아래 있어야 할 공무원인 검사들이 국회를 주무르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언제까지 또 어디까지 갈지 두렵다.
내 눈에 그는 조금 괴이(怪異) 해 보인다.
그는 늘 법과 원칙을 내세운다. 법대를 나와서 법을 다루면서 살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법과 원칙. 얼마나 좋은 말인가? 그걸 내세우는 사람은 왠지 약자를 보호해 줄 것 같다. 나 같은 서민을 위해 권력을 사용할 것 같다. 법과 원칙을 내세우는 자를 보면 왠지 든든하다. 국가가 제대로 기능을 할 것 같다는 희망을 갖는다.
그런데 이태원 사건의 피해자들이나 해병대 채상병 사건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그의 법과 원칙은 피해자나 약자를 보호하거나 위로하지 않는 것 같다. 상당히 서운하다. 거리에서 울고 있는 유가족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이태원의 비극에 세월호의 슬픔이 겹쳐진다. 나는 옳은 사람보다는 따뜻한 사람을 더 좋아한다. 내 취향이 그러하다. 그래서 나는 그가 싫다.
그는 공정을 강조하기도 한다. 놀랍게도 그는 법과 원칙을 자신의 아내나 장모 및 지인의 큰 허물은 덮고, 정치적 반대편의 작은 허물을 들추는 데 사용한다. 침소봉대하는 법 기술은 대단하다. 눈앞에서 신공을 보는 것 같다. 나는 그 횡포가 두렵다. 그런 신공을 아무런 비판 없이 전달하는 기자들도 그와 한 무리인 것 같다. 정의감도 없는 것 같다. 그런 기자들도 대단해 보인다.
나는 지금의 검찰의 불공정성에 그가 작용한다고 느낀다. 그는 법과 원칙을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사용하는 것 같다. 처가의 땅투기나 아내의 주가조작에 그의 법과 원칙은 어디로 간 것일까? 불공정하기 짝이 없다. 그의 불공정에 화가 난다. 똥 묻은 개를 보호하고, 겨 묻은 개를 두들겨 패는 그가 비천해 보인다. 그는 왜 약자나 피해자에게 몰인정한 것일까? 그의 법과 원칙은 왜 그렇게 불공정한 것일까? 내 보기에 그는 본래 그런 사람인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일관되게 행동하겠는가?
약자를 함부로 대하는 것을 보면 사디스트(sadist) 같고, 패거리를 몰고 다니는 것을 보면 조폭 같으며, 앞에 한 말과 뒤에 한 말이 섞이는 것을 보면 술 취한 돼지 같아 보인다. 하루빨리 그의 선행(善行)을 보고 나의 이런 거친 언사가 순화되기를 소망한다.
나는 그를 보면서 위안을 얻는다.
그는 나보다 지위가 높다. 돈도 많다. 유명하다. 심지어 그를 지지하며 추종하는 사람도 많다. 나보다 덩치도 크고 노래도 잘한다. 그런데 그를 보고 있으면 짜증 나고 어이없고 우습기만 할 뿐 전혀 부럽지 않다. 그는 매우 고약한 사람 같다. 걸핏하면 화를 잘 낸다는 소문이 있다. 권력을 갖고 있지만 내면에 겁도 많은 모양이다. 어쨌든 그의 언행은 모순되어 어리둥절하다. 그가 가지고 있는 법이라는 자는 고무줄인 모양이다. 그런 고무줄 자를 사용하는 그가 너무 천박해 보이고 혐오스럽다.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것 같다. 그런 그가 무섭다. 정말 내 취향이 전혀 아니다.
때로는 그가 고맙다. 돈도 지위도 명예도 지식도 참으로 하찮을 수 있다는 진실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그보다 자신의 삶이 더 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내 오해일까? 적어도 내 주변에는 약자에게 가혹하여 혐오감을 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를 보면 도대체 학식(學識)이란 게 뭔지 물음표를 던지게 된다. 그는 서울법대를 나와서 고시를 패스하고 오래도록 검사로 살았다. 한국의 많은 부모들이 부러워하는 과정을 밟은 사람이다. 그를 보면 배움과 도덕, 나아가 배움과 사람의 가치는 정비례하지 않는 것 같다. 때로는 무관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는 지식과 도덕이 무관함을 온몸으로 내게 가르쳐 준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내 기준으로 보면 그는 시궁창을 뒹굴면서 즐기는 이상한 놈이다. 그 좋은 머리와 법 지식을 갖추고 약자를 돌보면서 살면 좋을 것 같은데, 공익(公益)을 위해 권력을 사용하면 훌륭한 사람이 될 것 같은데, 사익(私益)을 위해 공익을 훼손하며 쾌감을 느끼는 것 같다. 양평 고속도로 문제나 디올백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훗날 나의 생각이 오해였기를 바란다.
그를 보고 있으면 희극 비극이 엉킨 삼류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그는 일부러 악역(惡役)을 하는 싸구려 코미디 주인공 같다. 도대체 왜 그렇게 사는지 물어보고 싶다. 권력을 맘껏 휘두르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는 것일까? 우습기도 하고 화도 난다.
나의 소박한 소시민 생활도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다. 그에 견주어 보면. 적어도 남에게 혐오스러울 것 같지는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를 보면서 무얼 많이 소유하는 것이 꼭 좋은 것만 아니라는 생각도 한다.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가 내게 준 우연한 선물이다.
이런 시절에 화병 안 걸리고 무탈하게 지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냥 구경꾼으로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 소심한 생각을 해 본다. 언젠가는 이 시절도 끝날 것이다. 세월이 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