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걍보리 Oct 12. 2024

숲길에서

29. 작은 영웅

  “네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지 않아?”     

  “궁금하지. 사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

  “네게 말해주고 싶지만, 네가 안 믿을 것 같아서 말하기가 좀 조심스러워.”     

  “아니야. 한번 생각해 볼게. 말해봐.”     

  “너는 작은 영웅이야.”      


  나는 자신의 운명과 한계를 기꺼이 감당하는 사람을 영웅(英雄)이라고 생각한다.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도 결단하고 결행하는 순간은 영웅의 시간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그런 순간을 산다. 나는 보통사람의 영웅적 순간에 관심을 갖는다. 고난을 이겨내고 좌절에서 다시 일어서는 성공적인 삶은 멋있다. 가혹한 운명에 맞서다 쓰러지는 비장한 삶은 깊은 감동을 준다.

  사전에 의하면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을 영웅이라고 일컫는다. 여기에서 말하는 ‘보통사람’은 영웅보다 지혜와 재능이 부족하고 용맹하지 못한 사람을 뜻할 것이다. ‘보통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 역시 오로지 선천적으로 영웅의 자질을 받고 태어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영웅적 자질을 가진 사람이, 영웅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냈을 때, 그 사람을 영웅이라고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보통사람인지 영웅인지 알 수 없었는데, 어떤 상황에서 영웅적인 일을 해냈다면, 그가 본디 영웅적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아차릴 수도 있다. 영웅적 역량을 갖추지 못한 보통사람은 영웅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낼 수 없다. 그러기에 영웅이 아닌 보통사람이다.

  큰일을 성취한 영웅은 당연하게 찬양을 받는다. 거기에 나는 의문을 갖는다. 영웅적 자질을 갖춘 사람이 영웅적인 일을 했다고 해서 반드시 찬사를 보내야 하는 것일까? 헤라클레스 영웅담이 재미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는 영웅의 자질을 갖추고 태어났기 때문에 영웅적인 일을 해낸 것이다. 그걸 꼭 대단하다고 여겨야 한단 말인가?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이 달리기를 잘하는 것이 부럽기는 하다. 하지만 큰 감동을 주지는 않는다.     

  객관적인 역량은 대개 선천적으로 주어진다. 영웅의 자질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선행적으로 주어진 조건이다. 행운(幸運)인 것이다. 운 좋게 주어진 것 중에는 영웅적 자질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모 지능 부모와 환경 역시 주어진 것이다. 행운이 있고 없고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그것을 개선하려고 노력해도 변화는 쉽지 않다. 보통사람에게는 그런 불공평을 바꿀 힘이 없다. 살기 위해서는 세상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현재도 법적인 차별만 없을 뿐, 태어날 때부터 각자가 처한 조건의 차이는 실제로 존재한다. 어떤 아이는 부자 부모를 만나고, 어떤 아이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다. 물질주의가 팽배한 2024년 현재, 한국사회에서 각 가정이 소유한 자산의 차이는 신분차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한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자산의 크기로만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아이는 미모와 재능을 갖고 태어나고, 어떤 아이는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한 채 태어난다. 불행의 원인이나 이유는 다양하다. 누구는 행운을 누리지만, 누구는 불운을 피하지 못한다.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큰일을 용감하게 감당하고 바람직한 결말을 이끌어낸 영웅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영웅적 자질을 갖추었다고 해도 노력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어떤 사람이 영웅이 된 까닭은 영웅의 자질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불굴의 의지와 용맹성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보통사람은 노력하지 않는가? 아니다. 보통사람도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나름의 지혜를 짜고 정성을 다한다. 단지 크게 성취할 자질을 원천적으로 부여받지 못했을 뿐이다. 지혜와 재능도 부족하고 그다지 용맹하지도 못한 보통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불리한 조건과 불운(不運)을 견디고 버티며 끈질기게 생존해 가는 모습에 마음이 더 간다.

  화려한 장미나 모란만 꽃이 아니다. 이름 없는 들꽃도 꽃이다. 나 역시 보통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보통사람이기에 보통사람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도리어 그들에게 더 마음이 간다. 시련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가는 내 주변 사람들이 내게는 영웅으로 보인다. ‘작은 영웅’으로. 눈에 띄지 않는 영웅들. 나는 종종 그들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본다. 때로는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때로는 감동받는다.

  보통사람일지라도 자신의 존엄성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강자와 타협하되 비굴하지 않으며, 자신의 부족한 모습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보통사람이 자신의 존엄성을 망각하거나, 자긍심을 잃고 스스로를 낮추어 비굴해질 때다. 그 순간 보통사람은 ‘작은 영웅’이 아닌 미천한 존재로 전락한다. 그런 상황을 지켜보는 일은 힘들다. 슬프다.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에나 차이와 차별이 있다. 구별은 아무도 피할 수 없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불리한 능력과 조건을 가졌기에 간신히 생존해 가는, 불운한 처지에서 흔들리며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그런 보통사람이 내게는 영웅이다. 때로는 힘겹게 때로는 죽기 살기로 버티며 살아가는 주변의 친지 친구 지인들.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 죽음에 가까이 갔다가 간신히 살아난 사람, 장애를 안고 사는 사람, 아픈 가족을 돌보면서 정작 자신을 돌볼 시간은 잊고 사는 사람, 사업에 실패하여 좌절한 사람, 빈곤으로 고통받는 사람, 자녀의 일탈이나 가족해체로 슬퍼하는 사람, 외롭게 지내는 사람, 죽음보다 무거운 삶의 무게에 짓눌린 사람 등 갖가지 이유로 고단하게 살아가는 보통사람들.

  나는 종종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어떻게 살려하는지 직접 보거나 전해 듣는다. 우연히 기회가 되면 그들이 겪은 희로애락을 고개를 끄덕여가며 귀 기울여 듣는다. 그들의 내밀한 기쁨과 슬픔에 동참한다. 문득 나도 그들도 가여운 존재들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들을 위로해 주고 싶다. 나도 위로받고 싶다. 그들의 굴곡진 인생사가 들꽃처럼 아름답다는 것을 증언해 주고 싶다. 그들의 삶이 결코 무의미하지도 가볍지도 않다고 말하고 싶다. 그들의 삶을 변명해 주고 싶다. 그들의 삶에서 빛나고 아름다웠던 순간을 함께 찾아보고 싶다.

  절대로 죽지 않는 영화의 주인공이 빠지는 위기는 참된 위기가 아니다. 그러기에 종종 심드렁하게 여겨진다. 마찬가지로 영웅이 영웅답게 살아간 이야기는 재미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싱겁다. 그들이 살아간 이야기는 나와 같은 보통사람의 삶과는 너무 먼 이야기이기도 하다.

  보통사람이 자신의 인간적 한계를 불만과 불안 속에서도 감내하고, 주어진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결단의 순간을 살아갈 때, 그의 삶은 쓰고 시고 맵고 달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우연히 주어진 불리한 삶의 조건 때문에 힘겹게 사는 보통사람들. 자발적으로 선택하지 않았던 그 조건 때문에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이상 자신을 탓하지 않기를 원한다. 그들의 일상을 응원한다. 자기가 자신이 사는 세상의 주인공임을 자각하고 품격 있게 살기를 원한다. 종종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곤 한다.

  “너는 작은 영웅이야.”

작가의 이전글 숲길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