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터링 없는 대화의 끝.
시아버지, 시어머니 두 분이 살고 계시는 시댁은 18평 정도의 아파트이다. 차로 10분 거리에 비혼인 작은 시누이가 살고 있고, 한 시간 거리에는 큰 시누네 가족이 살고 있다. (큰 시누네는 4명이다)
명절 때나 특별한 기념일이 되면 우리 가족 3명과, 큰 시누네 가족 4명, 이렇게 다 모이게 되면 10명의 가족이 모이게 된다. 그렇다 보니 그때는 18평의 집이 다소 좁게만 느껴진다. 그렇지만 1년에 한두 번 다 같이 모이기도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다소 큰 불편은 없었다.(나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1년 전, 오랜만에 가족 10명이 시댁에 모였다. 코로나로 인해 잘 만나지 못했던 가족을 만나는 것에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집이 좁아도 북적북적한 공간이 나름 즐거웠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잠을 자기 위해서 큰 시누네가 작은 시누집으로 가기 위해 준비하고 일어날 때였다.(집이 좁아 나눠 잠을 잘 수밖에 없다.)
"아들~~~ 저 앞동은 넓은 평수인데 3천만 원만 보태면 살 수 있대. 네가 좀 보태서 집 좀 사줘라."
"...."
어머니의 한마디에 북적북적했던 공간은 정적이 흘렀다. 지금 생각해 봐도 꽤나 불편하고 민망했던 정적이었다.
"…. 엄마, 내가 삼천만 원이 어디 있어, 빚을 내야 하는데 그게 말이 돼?"
"...."
어쩜, 한마디 한마디 할수록 정적만 흐르는지..ㅎㅎ
"삼천만 원도 없어? 그리고 뭐, 삼천만 원이 빚이야? 너넨 젊으니까 갚을 수 있잖아. 요즘 그 정도 빚 없는 집이 어디 있니?"
"...."
이 당시에 나는, 이젠 어느 정도 시어머니의 필터링 없는 말에 적응이 되었고 해탈했다.라고 나름 생각했었는데... 적응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 듯.
당신은 그냥 툭 던지신 한마디였겠고, 말 한번 해보자 하는 가벼운 생각이셨겠지만 난 정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여기 두 분 사시기에 좁지도 않고, 우리 다른 빚도 많아. 삼천만 원 있었으면 우리 빚부터 갚았어."
".... 호호호호, 알았어~"
그렇게 의미 없는 대화는 끝이 났다.
시어머니의 그 말 한마디는 지금까지도 그 파장과 충격이 남아있다.
그러면서 문득 시어머니의 만족의 기준은 무엇인지 참으로 궁금해졌다.
급박한 상황도 아니고, 집이 없는 것도 아닌데, 자식이 빚을 내서 부모님 집을 해주면 정말 행복하실까?
집 평수만 넓어지면 만족이 끝날까?
남편은 "그냥 농담으로 하신 말씀이겠지. 그냥 듣고 흘리자."라고 말했지만, 난 사실 알고 있다.
시어머니는 저 말을 조만간 웃으며 또 하실 거란 걸.
지금의 난, 시댁과 관련된 많은 부분을 내려놨기에 (특히 시어머니 관련해서는 남편에게 알아서 하라고 했다) 하시는 말씀 대부분은 못 들은 척, 안 들리는 척하고 있다.
당신의 그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그날 하루, 아니 며칠의 내 기분이 휩쓸리는 상황이 너무 싫었고 남편과도 사이가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계속 모르는 척,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있으니 어머니도 내겐 더 별다른 말씀은 안 하신다. 가끔 저렇게 폭탄을 던지기도 하시지만 정작 본인은 모르는 척하셔서 나도 같이 모르쇠로 일관한다.
그리고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서로 집 일은 각자가 알아서 정리하자."
그 정리과정에서 우리 가족의 그 어떤 부분도 연관되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특히 경제적인 부분에서..
참으로 신기한 게, 친정은 무소식이 희소식인 집이고 시댁은 1년에 한두 번 꼭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집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피는 물보다 진하고, 며느리는 남이다.
시어머니의 만족감은 결국엔 아들과 딸들이 채워줘야 할 것이고 해결해야 할 것이다.
다만, 나는 그 말들에 크게 휩쓸리지 않아야 하고, 나완 관계없다고 계속 되뇌어야 하겠지만,
내가 남편보다는 상황이 좀 더 낫겠다 싶다.
그러나 한마디는 하고 싶다.
"어머니, 삼천만 원이 빚이 아니면 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