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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주 Feb 09. 2023

내가 시댁을 자주 찾아뵙지 않는 타당한 이유.

멀면 멀수록 좋다.

신혼 때에는 한 달에 한두 번 꼬박꼬박 시댁을 방문했다. 

시댁이 300km 거리에 있어도 시어머니의 호출은 계속되었다. 그때의 남편은 "남들 다 하는 그 효자역할"을 하고 싶었는지, 우리가 좀 피곤하면 되지~ 라면서 열심히 내려갔다.

그래서... 친정도 꼬박꼬박 내려갔다. 시댁보다 먼 350km 거리였고, 부모님은 그만 내려오라고 하셨지만, 결혼 전, 시댁에 대처하는 나름의 글들을 읽었던 터라, 시댁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그대로 친정에 적용시키곤 했다.


3개월이 지날 무렵, 남편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힘들어도 너무 힘들었겠지. 

"난 가도 되는데, 힘들면, 당신이 직접 어머니께 못 간다고 말해."

어머니의 서운함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신혼 초에 포기하지 않고 동등하게 양쪽 집을 대한 것이 꽤 잘한 일인 듯하다.





그렇게 잠잠해져 가는 듯했다. 이것 또한 나의 착각.

손주가 태어나자 시어머니는 신혼 때보다 더 찾아오기를 요구했다.


맞벌이 부부였던 우리를 위해 시댁에서 손주를 키워주겠다.라는 말부터,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셨던 시어머니.

출산 후 [엄마]라는 공감대 부분이 형성이 되었을 시기였는지, 나는 시어머니를 이해해 보자 라는 심정으로 자주는 아니지만 찾아가서 인사드리고 나름 최선을 다했다. (그 갓난쟁이를 안고 시댁에 갔단 말이다.)


그 시댁에 몇 번 방문하고 나서야 나는, 잠시 잃어버렸던? 현실감각을 되찾을 수 있었다.

뭘 하든 만족스럽지 않은, 변함없는 시어머니였기에,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신께 너무나 감사한 순간이다.


그렇게 계속 찾아가는 게 누구에게 좋은 건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들은 무슨 죄인건지...

너무 힘들었던 나는, 양가 모두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남편은 미안하다며 동의해 줬다. 


 



지금은 시댁에, 명절에만 방문하고, 내 기준으로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야 찾아뵙지 않는다.


처음엔 너무너무 서운해하셨다. 며느리도 보고 싶다고 말씀하시고, 남편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서 나를 설득해서 찾아뵙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시어머니의 서운함보다 내 정신건강이 더 우선이다.


자주 찾아뵙지 않아도 되는 타당한 이유는 모두 시어머니가 만드셨다.(감사해요 어머니,)


먼 거리를 자주 찾아가도 매번 보고 싶다고 연락하셨다. 

지난주에 방문했는데 다음 주에 또 보고 싶다고 언제 오냐고 하신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못 갈 상황에도 보고 싶다고 연락하셨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남편에게 말했다. 

"자주 찾아뵐 때도, 그렇지 않을 때에도 무조건 보고 싶다고 하시는 거면, 우리 서로 적당히 하자."


자주 찾아오는 아들 부부에게 불편함을 주셨다. 

찾아뵐 때마다 과일, 고기, 떡 등등 간단한 선물부터 비싼 선물까지 사들고 내려갔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주 찾아갔던 터라, 빈 손으로 방문했을 때가 있었다. 딱 한번 말이다. 그 순간을 시어머니는 놓치지 않고 한마디 하셨다.

"어른 집에 올 때 빈손으로 오는 거 아니다. 작은 거 하나라도 들고 와야지~"

헛헛한 웃음이 나왔다. 우리 부모님은 뭘 들고 오냐고, 다 준비했으니 다음엔 빈손으로 오라고 하시는데...

어쩜 저렇게 다를까 싶다. 

저 말 한마디에 남편도 기분이 상했는지 그 뒤로는 파리바게트의 빵 몇 개, 우리 아이 먹을 과일 조금, 이런 식으로 챙겨간다. 시어머니는, 당신 말씀처럼 작은 거 하나라도 들고 오니 더 별 말 못 하시는 상황이다.


나에게 부담감을 주셨다.

사실, 남편이 "시댁 갈까?"라고 물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난, 그럴 때마다 "갔다 와~ 난 안가."라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시댁에 방문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사실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고, 시어머니가 나에게 만들어주신 이유이기도 해서 당당하게 안 간다고 말한다.


시댁에서 식구들이 다 같이 모여 술을 한 잔씩 마실 때였다. 술에 조금 취하셨는지 시어머니의 방부제 가득 담긴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속상해~ 며느리 왔다고 친구들한테 말하면, 그 때마다 친구들이 꼭 물어. 며느리 왔는데 용돈 잘 받았냐고~ 매번 받지 못해서, 아무 말 못 하는 내가 너무 속상해."

옆에서 같이 듣던 큰 시누가 말했다.

"엄마, 너무 속상해하지 마~ 내가 좀 더 챙겨줄게"


마시던 맥주를 뿜을 뻔했다. 눈앞에서 한 편의 시트콤이 펼쳐지는 듯. 

올 때마다 용돈을 바라시는 시어머니. 

그걸 또 안쓰러워하며 위로해 주는 큰 시누.


찾아뵐때마다 용돈을 달라고 하시는건가. 

며느리 돌려까기를 잘 하시는 시어머니의 특기가 발휘된 순간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시댁을 이해해 보려고 그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기로 했다.

 



낳아주신 부모님을 찾아뵙는 건 자식의 당연한 도리이다. 

그래서 거리가 멀어도 같이 찾아뵈려고 노력했었다. 


그렇게 찾아간 곳에서 나는 불편함과 부담감을 느끼기만 했다.

그리고 말 한마디에 상처를 입고, 그 감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우울하기만 했다.


그렇게 꽤 오랜 기간,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내가 이곳까지 힘들게 와서 왜 상처를 받아야 하나?

난 자식이 아닌데? 난 도리를 필요가 없는데?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 

나를 가장 잘 알고 가장 친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시어머니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저 남편의 어머니이자, 내 아이의 할머니. 

나와 친하지 않은 사람이자 친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

그래서 내가 최소한의 도리만 하면 되는 사람.


찾아뵐 때마다 내 시간과, 내 돈과, 내 기분을 낭비하는 것 같은 상황.

내가 굳이 상처받아가며 찾아뵐 필요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지금도 보고 싶다고 여전히 노래를 부르는 시어머니지만, 

그 때마다 난 웃으며 "네, 네~" 대답만 잘한다. 

대답은 시간과 돈이 들진 않으니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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