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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라스 Jasmine Nov 08. 2024

엄마의 향기

메리골드차를 마시며


이른 아침

엄마의 향기를 마신다

곱디고운 금잔디 황금빛 꽃잎을 따시며

미국 만리 딸 생각을 하셨을까?


까만 먹물 같은 텍사스 토네이도가 오른쪽 눈 끝에서 회오리칠 때

한글학교 보조 선생님 붙잡고 내 눈에 뭐가 있다고 봐달라고

"선생님,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아이고 내가 이 말 안 듣는 아이들 가르치다 마침내 조현병이라도 든 것이야.

시꺼먼 먹물 같은 토네이도가 내 눈을 덮쳤는데

뛰어가 화장실에 비친 거울 앞의 내 눈엔 거짓말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 검은 소용돌이가 왜 내 눈에만 보이는 거야

정신병원엘 가봐야 하나


오른쪽 눈 망막에 구멍이 났단다

레이저로 메꾸지 않으면 실명한다고

안과 선생님한테 칭찬을 받았다. 빨리 잘 왔다고. 조금만 늦었어도….

몇 달을 기다려야 하는 병원 예약을 의사의 긴급요청으로 하루 만에 받은 레이저 시술

방송대본 쓰느라 밤마다 모니터와 씨름하던 내 눈이 결국은 병이 났구나.

이제 나 좀 그만 못살게 굴라고

애원해도 듣지 않는 주인

결국…

구멍이 나버렸구나.


난 왜 이렇게 운이 좋을까?


미국에 오기 전 받은 엑시머 레이저 수술로

렌즈를 끼지 않으면 밥상의 흰 것은 밥이요 빨간 것은 김치요 하던 내 눈이

렌즈 없이도, 안경 없이도 세상이 선명해졌다.

하얗게 퍼지던 달무리들도 온데간데없이 또렷한 하얀 달이 두둥실 떴다.


망막에 난 구멍을 메웠더니

이젠 녹내장 초기라고


엄마가 한 잎 한 잎 따서 말린

 메리골드 차의 향기를 마시며

오늘도 난 생각해 본다

난 왜 이렇게 운이 좋은 걸까?

엄마딸로 태어나


텍사스에서 메리골드 마시며 꽃향기 마시는

나는 최고의 행운아


"요즘 녹내장은 녹내장도 아니란다

너 눈 수술했던 이민재 선생님이 내년에 한국 올 때 꼭 오라더라

요즘은 녹내장 걸려도 실명도 안 하고 다 는다고 내년에 꼭 들리래"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

텍사스까지 넘어오느라 흐릿할 법도 한데

엄마의 애써 숨긴 걱정은 더 또렷하게 들린다


녹내장 까짓것 난 애초에 걱정도 하지 않았는데.

난 안압이 정상보다 더 좋은데

시신경이 너무 큰 거라고


봐!!! 맞잖아. 내가 세포가 큰 여자라고 했잖아!

난 시신경 세포마저 큰 거였어!!


이른 아침

메리골드 주황빛 엄마의 향기를 마신다

엄마의 딸로 태어난 난 최고의 행운아라고 읊조리며


에필로그


새벽에 메리골드차를 마시고

오후에 Trader Joe's 를 갔는데

글쎄!!

주황빛 탐스러운 꽃이 너무 예뻐서 다가가니

메리골드라고 쓰여있었다.

미국에서 수십 년을 살았지만

메리골드 꽃을 만난 건 처음!


새벽에 마신 메리골드차의  엄마 향기가 나를

메리골드 꽃으로 인도한 것일까?

아니면 메리골드 차 효과로 눈이 번쩍 뜨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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