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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드레 May 14. 2024

자연스럽게 죽음을 대하는 방법

내가 봉사를 시작하게 된 건, 

30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가던 시기였다.

그전까지는 타인에게 관심을 가질 여유 없이 밤낮으로 일을 하며 바쁘게 살고 있었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마음이 너무 힘들어 혼자 끙끙대고 있을 무렵, 동료가 내게 봉사를 권해 주었다.

그분도 죽을 만큼 힘든 일이 있었는데 우연히 봉사를 시작하게 되고 하다 보니 치료가 되더라고 했다.

봉사는 남을 위해 하는 게 아니라 나를 살리기 위해 하는 거더라고 그분이 말했다.

그분 말을 듣고 근처 노인복지관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도시락을 배달해 주는 봉사를 시작했다.

처음엔 내가 이렇게 힘든데 남을 돕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컸다.


오전 10시 30분까지 복지관으로 가서 식당에서 도시락통을 받아서 어르신들 댁으로 배달해 주는 봉사였다.

식사 준비를 위해 봉사자들이 매일 나와서 식당 일을 돕고 계셨다.

교회나 성당에서 나오신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나 말고도 한 분이 더 도시락을 배달하고 있었다.

둘이서 각기 다른 지역을 돌며 도시락을 돌렸다.

우리는 화요일에 오는 사람들이고, 요일마다 봉사자가 달랐다.

많은 분들이 봉사를 하고 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배달 봉사를 하고 복지관으로 돌아오면 밥을 먹고 가라고 하셔서 같이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치매를 앓고 계시거나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 대상자였다.

그분들은 다세대 주택이나 빌라에 거주하고 계셨는데 낮에는 요양보호사가 와 계신 집이 많았다.

내가 도시락통을 갖다 드리면 전날 드신 도시락을 내게 반납하시고, 그날 배달된 것으로 점심을 해결하시는 거였다.

보통 8-9개의 도시락을 배달했다.

내가 도시락을 배달해 주면 고맙다고 잘 먹겠다는 인사를 잊지 않고 건네셨다.

하루 종일 누워 계신 분들도 있어서 누워 계신 채로 인사를 주고받을 때도 많았다.

치매가 있으신 분들은 한 달이 지나도, 일 년이 지나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셨다.

매주 처음 보는 사람처럼 인사를 했다.

그래도 항상 반가워하고 좋아하셨다.

내가 봉사자 중에 가장 어린 편이어서 나는 사랑을 더 받았다.


어느 날, 봉사를 갔더니 도시락이 2개가 적었다.

복지사 선생님이  한 분은 돌아가시고, 한 분은 치매 증세가 심해져서 요양병원으로 들어가셨다고 했다.

돌아가신 할머니는 파킨슨병을 앓아서 항상 누워 계셨지만 나를 보면 방긋 웃어주던 분이셨다.

그날은 도시락을 돌리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도시락을 들고 오는 시간에 맞춰 항상 바깥에 나와 의자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가 있었다.

한 손엔 전날의 도시락통을 들고 앉아서 나를 기다리셨다.

경증 치매를 앓고 계신 분이셨는데 왜 나와 있으시냐고 하면 답답해서라고 하셨다.

그 할머니는 내 손에다 사탕이나 초콜릿을 하나씩 꼭  쥐어주시는 분이셨다.

작은 체구에 귀엽게 생기시고 머리는 백발이셨다.

언제나 고맙다고 하시면서 아이처럼 웃어주셨다.

그 할머니를 좋아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 같았다.


그날도 할머니께 도시락을 배달해 드렸는데 어김없이 내 손에 사탕 하나를 주셨다.

나는 사탕을 까서 입에 넣고 할머니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 할머니도 언젠가 인사도 못 나누고 떠나실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할머니, 저 어느 요일에 오는지 아세요?"

"그럼, 화요일 11시 40분에 오지."

"아시고 있었구나."

"그럼, 그래서 기다리는 거잖아."

"그랬구나."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자꾸만 눈물이 나서 손으로 눈물을 훔치는 데 할머니가 아무 말도 없이 내 등을 부드럽게 쓸어 주셨다.

등을 토닥여주는 할머니 손길이 너무 따뜻해서 나는 한참을 더 울었던 것 같다.

그 후로, 봉사활동을 계속하는 동안 내가 배달하는 도시락은 하나씩 줄기도 하고, 또 늘어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서서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나는 동료가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봉사는 남을 위해 하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 하는 행동이라던 그 말을.


이번달 미용 봉사를 하러 갔는데 대상자 한 분이 줄었다.

내가 복잡한 감정을 지니면서 미용을 해 주던 알콜홀릭 어르신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유일한 방문객이었던 요양보호사가 발견해 센터에 전화를 했다고 했다.

그걸 알았던 순간, 마음이 많이 착잡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변의 죽음들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 참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어떤 죽음이든지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내 손이 닿았던 그분의 육신이 영원히 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힘들었던 지난 시간들이 스쳐갔다.

죽음이란 이렇게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겪게 될 과정일 텐데도 여전히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나 또한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세상과 이별하게 될 것이다.

그 순간에 어떤 마음을 갖게 될까.

예상을 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후회가 남지 않게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거.

순간을 영원처럼 영원을 순간처럼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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