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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드레 Sep 27. 2024

극단적인 날씨


오랫동안 깊이 생각함

                                                    - 문태준





이제는 아주 작은 바람만을 남겨둘 것


흐르는 물에 징검돌을 놓고 건너올 사람을 기다릴 것


여름 자두를 따서 돌아오다 늦게 돌아오는 새를 기다릴 것


꽉 끼고 있던 깍지를 풀 것


너의 가는 팔목에 꽃팔찌의 시간을 채워줄 것


구름수레에 실려가듯 계절을 갈 것


저 풀밭의 여치에게도 눈물을 보태는 일이 없을 것


누구를 앞서겠다는 생각을 반절 접어둘 것



급 가을이 왔다.

예고편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덥더니 

끝나지 않을 것 같이 끈덕지게 여름이 달라붙더니

하루아침에 가을로 바뀌었다.


이토록 극단적일 수가 있나

어쨌든 시원해져서 좋긴 하다.


매년 가을이 되면,

지나온 시간의 필름이 돌아가면서

내가 무얼 하면서 시간을 보냈던가를 생각하게 된다.


후회나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별다를 것 없이 무탈하게 흘러간 시간들에 감사하게 되는 여유가 생겼다.

무언 갈 꼭 이루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제는 구름수레에 실려 가듯 계절을 가고,

누구를 앞서겠다는 생각은 접어두고 

풀밭의 여치에게도 눈물을 보태는 일을 저지르지 않으며

사랑하는 내 사람의 팔목에 꽃팔찌를 채워 주며 

남은 올해의 시간을 채워가야지 싶다.

그렇게 가을이 오면서 

몽롱하기만 했던  머리가 맑아지며 선명해진다.


가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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