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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드레 Dec 21. 2023

12월의 단상

나는 항상 세 가지를 기준으로 인생의 방향을 정해 왔다.


1.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2.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3.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이 세 가지의 기준을 가지고 때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해서 판단을 하고 움직였다.

20대엔 '하고 싶은 일'에 우선순위를 더 두고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을 넓히려고 노력했고, 꼭 '해야 하는 일'은 최소한만 하고 살았다.

30대엔 셋의 균형을 적절하게 이루며 살았다.

그래도 나에게 가장 우선순위는 '하고 싶은 일'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먼저 생각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 엄청난 축복이었다는 걸 나이가 들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양육하고 한 집안을 이끌어 가면서는 항상 우선순위가 '해야 할 일'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한 아이의 인생을 책임져야 하니까.

'하고 싶은 일'은 생각할 여유가 없어졌고, '할 수 없는 일'도 척척 해내는 '엄마'라는 슈퍼우먼이 되었다.

지난 10년 동안은 진짜 전쟁과 같은 하루하루였다.

보통의 육아보다 평범하지 않은 아이의 육아는 10배는 힘이 든다.

힘든 줄도 모르고 10년이 지난 것 같다.

아이의 치료를 위해 고군분투하며 도움이 될 만한 분야의 자격증까지 따면서 그렇게 정신없이 살아왔다.

어느덧 아이는 훌쩍 자라 있고, 나는 중년을 넘어서는 나이가 되어 있었다.

올해, 2년에 걸친 사회복지 자격증을 획득하고 나서 가을로 접어들었을 때부터 원인 모를 우울감과 상실감이 크게 밀려왔다.

보통은 우울감이 3일 이상 가지 않는 성격인데 여러 달 지속되는 걸 느끼면서 처음엔 갱년기인가 생각했다.

다른 신체적인 증상은 전혀 없는데 심리적인 부분에서 복합적인 감정이 든다.

무력감이랄까 허탈함이랄까 외로움이랄까

여하튼 나는 계속 나의 심리를 진단 중이다.

그러다가 찾아낸 것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차단이 원인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짙게 들고 있다.

나는 엄청나게 자유로운 영혼인데 가정에 매이고 아이 케어에 발목이 잡혀 있다 보니 답답하고 갑갑한 게 많다.

그동안은 이런 감정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육아에 전념하다가 아이가 안정적으로 크고 있고 내 보살핌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게 되니 한순간에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것들이 위로 솟구쳐 오르나 보다.

 한참 우울감이 클 때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일시적으로 해소가 됐었는데, 12월로 접어들면서 다시 우울해졌다.

그래서 요즘 그동안 3순위로 밀려나 있었던 '하고 싶은 일'을 자주 생각한다.

근데 이상한 건, 

그렇게 많던 '하고 싶었던 일'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없다.

그저,


1. 파트타임으로 일해 보기

2. 봉사 활동 더 많이 하기


이것뿐이다.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다.

'하고 싶은 일'이 없어졌다는 것은.

이것이 참 서글프다.

아, 하나가 더 있다.


3. 글로 열매를 맺기


이게 가장 어려운 부분인 거 같다.

올해 여러 크고 작은 공모전에 간간히 응모를 꾸준히 했었는데 성과가 없었다.

어떤 공모든 당선이 정말 쉽지 않고 나의 글이 너무 부족한 수준이구나를 확실히 느끼게 되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냉정한 평가를 받고 나니 기운이 안 난다.

이것도 내 우울의 한 원인이다.

글쓰기를 업으로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취미로 하는 일이니 그만큼 절실함이나 치열함도 없으니 당연한 결과임에도 슬프다.

유일하게 당선이 됐다고 연락이 온 어느 지역 문예지 담당자는 30만 원을 내면 등단을 해 주겠다고 했다.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고 너무 기뻐했는데 얘기를 듣다 보니 돈을 내라는 거였다.

심사 위원들 수고비와 등단을 하는 작가들의 글이 실리는 문예지 30권을 인쇄하는 비용이라고 했다.

호텔에서 등단식을 하는데 밥값도 내야 한다고 했다.

A4 용지 한 장 반 분량의 수필을 실어 주고, 자기네 문예 카페 회원 등록을 시키고 허접한 등단식을 치러 주면서 비용을 내라는 거였다.

자기네는 적게 받는 거라고 했다.

등단을 돈을 주고 한다는 얘기는 들어 보지 못했다.

그들이 내 글을 읽기는 했는지조차 의문이었다.

됐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씁쓸한 현실이었다.


올해 내가 우울한 여러 이유를 들여다보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누구도 내게 '하고 싶은 일'을 제쳐 놓고 '해야 할 일'을 하고 살라고 강요한 사람이 없다.

오로지 나의 선택이었고 나의 판단이었다.

근데 그렇게 십 년을 살고 나니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별로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나마 세 가지 중 3번을 빼면 나만을 위한 일도 아니다.

12월을 보내면서 나는 이제 

'하고 싶은 일'을 새롭게 찾아보자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래야 이 무력감이 없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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