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나 일반도로에서 사고가 나거나 고장이 난 차량을 렉카가 달고 가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했었다.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제 내가 견인차를 타게 되었다.
내 차는 2012년식이다.
이제 120,000km를 뛰었다.
그전까진 문제가 없었는데 올해 초부터 차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엔진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고 건강하지 않은 소리를 냈다.
엔진오일도 제때마다 교환해 주고 카센터를 지정해 놓고 관리를 잘해 오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느끼기에 차가 아픈 것 같았다.
그러다가 롯데월드에 다녀오던 날, 신호 대기 중에 차 시동이 꺼졌다.
두 어번 정도 그래서 집에 못 오면 어떡하냐 하면서 조심조심 집으로 돌아왔다.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릴 때 액셀을 밟아도 차가 안 나가는 느낌도 많이 들었다.
바로 카센터 가서 점검을 받았는데 기기를 연결해 살펴봐도 이상은 안 뜬다고 했다.
사장님이 일단 가장 의심이 가는 크랭크각센서를 교체해 보자고 해서 그렇게 했다.
그 후로 시동이 꺼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장거리는 불안해서 근거리 주행만 해 왔다.
그랬는데 서울에 꼭 가야 할 일이 생겼다.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출발했는데 가는 도중에 별다른 이상 징후가 없어서 안심을 했다.
일을 다 마치고 집으로 오기 위해 고속도로를 타려고 했는데 차가 밟아도 안 나갔다.
그러면서 점검등이 들어왔다.
일단 눈에 띄는 가까운 카센터로 들어갔다.
오류코드를 분석해 보니 연료 레일 압력이 낮다고 나온다며 연료 고압펌프를 교체해야 하는 것 같다고 하셨다.
애매하게 진단을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섰다.
일단은 집으로 와서 단골 카센터에서 찬찬히 알아보고 고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반포에서 이천까지 가야 하는데 지금 운행이 가능할까를 물어보니 갈 수 있다고 하셨다.
오류가 뜬 것을 지워주고 간단히 점검을 해 줬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며 출발을 했는데 출발한 지 5분도 안 돼서 신호 대기 중에 시동이 꺼졌다.
도저히 고속도로를 탈 수 없을 것 같아 일단 차를 빼서 눈에 보이는 공용주차장으로 주차시켰다.
아무래도 견인 서비스를 이용해야 할 것 같아 보험사에 연락을 하고 접수를 했다.
견인차 기사가 배정되어 전화가 왔는데 내가 있는 쪽이 정체가 심해서 오는데 40분이 걸릴 것 같다고 기다리라고 했다.
시간은 벌써 5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견인차를 기다리며 차에 앉아 있으니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속도로에서 차가 멈췄다면 사고가 크게 날 수도 있는 상황이고, 사고 처리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됐을 수도 있었다.
어차피 견인차를 불렀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리자고 마음먹었다.
2월에 차를 바꾸려고 계약을 하고 출고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인데 이런 일이 또 생기니 어서 차가 나왔으면 하는 마음만 들었다.
한편으론, 렉카차를 타는 경험을 하게 된다니 신기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가고 드디어 렉카 기사님이 오셨다.
나는 이런 렉카를 예상했었다.
그런데,,,
다른 차가 왔다.
이렇게 생긴 차가 왔다.
(이미지는 퍼 온 것)
3.5톤짜리 캐리어가 와서 기사님이 시키는 대로 차를 실었다.
그리고 기사님과 나는 앞 좌석에 나란히 앉아 오게 되었다.
보험사의 견인 서비스는 60KM까지만 무료이고 더 먼 거리는 별도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고 했다.
나의 거리는 55KM여서 추가 비용은 없었다.
견인차를 타고 오면서 남편과 아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엄마가 7시가 넘어 도착할 것이라는 사실과 저녁을 아빠와 시켜 먹으라는 당부를 했다.
기사님이 네비로 도착 장소를 찍어 보고는 1시간 30분이 걸릴 거라고 했다.
처음엔 둘 다 말없이 기사님은 운전을 하고 나는 핸드폰을 봤다.
기사님이 운전 중간에 약통을 꺼내 약을 입에 넣고 물을 마셔서 속으로 '어디가 아픈가?'생각했다.
옆에서 간간히 곁눈질로 보니 인상이 굉장히 좋은 편이고 나이는 나보다 어려 보였다.
그렇게 불편한 동행이 계속되다가 서울을 빠져나와 자동차 전용도로로 접어들었을 때, 내가 말을 걸었다.
원래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로 내려와서 처음에 적응하기 힘들었단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부터 기사님의 말문이 봇물 터지듯 터졌다.
자신의 과거 이력부터 시작해서 서초동으로 옮겨와서 겪고 있는 애로와 고충이 줄줄이 이어졌다.
그 업계에서 이른 나이에 인정을 받은 22년 차 베테랑인 기사님은, 화재보험 소속이긴 하나 프리로 뛰는 분이었다.
1건당 25,000원을 받고 견인을 한다고 했다.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데가 없었다.
전라도 신안까지 견인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자기가 보험 사기 전문이기도 하다면서 그동안 사기를 잡아낸 얘기도 했다.
보험사 긴급출동 기사를 하면서 별의별 진상 고객을 다 상대해 봤다고 했다.
논길에 처박힌 차를 간신히 빼서 이동해 줬더니 견인하면서 차를 끌어서 차 밑바닥이 아작이 났다고 민원을 넣어 자신이 차를 들어서 실었던 것을 증명해 낸 케이스, 차를 집까지 가져다줬는데 차키가 망가졌다고 보상해 달라 했던 케이스, 차를 내리면서 차주가 후진을 하면서 일부러 차를 벽에다 살짝 박았던 케이스 등등.
얼마 전에 아우디를 견인해 줬는데 차주가 기스가 났다면서 500만 원을 요구해서 거절했더니 고소를 해서 법원에 6번이나 다녀왔다고 했다.
그래서 아까도 머리가 아파 약을 먹은 거라고 했다.
차주가 직접 차를 이동해서 싣고 내렸는데 말도 안 되는 억지를 쓰는 거였다.
결국 법원에서 무혐의를 받았지만, 그런 비양심적인 고객들로 인해 마음고생이 많다고 했다.
그런 진상 고객은 대부분 외제차 차주라고 했다.
자기가 하도 당해서 차를 실을 때나 내릴 때 자신이 운전을 안 하고 차주를 시키고 자신은 차를 절대 건드리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오늘 견인도 반포동에서는 기사들이 진상이 많기 때문에 서로 안 하려고 해서 거리가 있는 자기가 오게 된 거라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집 근처 정비소에 도착했다.
정비소는 문을 닫았지만 주차장은 열려 있어서 그곳에 차를 주차시키고 월요일에 정비를 받기로 했다.
기사님은 내가 주차를 하는 동안 안내를 해 주고 지켜보고 있었다.
서로 고마웠다고 인사를 하면서 마주 보고 웃었다.
웃으면서 나중에 고객 설문 조사가 문자로 오면 높은 점수를 달라고 해서
"걱정 마세요, 조세호 닮은 기사님! 꼭 만점 드릴게요."
라고 했다.
다시 서울로 돌아갈 거리가 꽤 되는데 식사는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주차한 서비스 센터 바로 옆에 중국 음식점 간판이 보였다.
기사님이 그렇잖아도 배가 고프다고 하면서 여기 음식이 어떠냐고 해서 괜찮다고 들어가서 드시고 출발하시라고 하고 헤어졌다.
왕복 8차선 서울 도로 한복판에서 시동이 꺼져 엄청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했었다.
그러다가 성실하고 말솜씨 좋은 기사님을 만나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던 하루가 참으로 길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