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드레 May 08. 2024

부모 노릇 자식 노릇

연휴 중에 하루는 아들을 위해 시간을 보냈고,

마지막 날은 우리 엄마, 아빠한테 다녀왔다.

당일엔 거리가 있어서 방문할 수가 없으니 미리 간 것이다.


시아버님은 내가 결혼하기도 전에 돌아가셔서 난 얼굴을 뵌 적이 없다.

시어머닌 아들이 다섯 살이 되던 해,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하늘나라로 가셨다.

애 키우느라 고단하고 정신없어서 뭐 하나 해 드린 것도 없이 시어머니를 황망하게 보내고, 한동안 너무 죄송한 마음이 커서 힘들었었다.

그렇게 시부모님은 세상에 안 계시고 내 부모님만 곁에 계시다.


나는 우리 부모님과  마흔 가까이 같이 살았기에 사이가 각별하다.

아무래도 다른 형제들에 비해 같이 산 시간이 기니 서로에 대해 많은 추억들이 공유된다.

결혼하기 전에 부모님과 여행도 많이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또, 내가 표현을 잘하는 편이라 애정 표현도 많이 하고 부모님이 나를 많이 아끼셨었다.

그렇기에 결혼해서도 자주 찾아뵙고 아이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부모님 댁에 가 있기도 하고 그랬다.

우리 집에 10년 만에 찾아온 아이이고, 결혼할 것 같지 않았던 딸이 늦게 시집가서 낳은 아들이니 우리 아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도 남다르시다.

엄마는 거의 매일 전화를 하시는 데 첫마디가

"우리 아기는 학교 잘 갔니?" 다.

초등학교 4학년인데 아직도 '우리 아기'다.

조카들은 다 성인이 됐으니 아직 어린 우리 아들이 마냥 귀여우신 거다.

가끔은 엄마도, 아빠도 너무 아들만 찾아서 서운할 때도 있다.

지난달에 엄마 생신도 있었고, 큰 조카 아들 돌잔치도 있어서 2주 간격으로 엄마네 집을 갔었다.

그러고 나서 어버이날이 가까워지니 또 가야 하나 고민을 했었는데, 연휴가 3일이나 되니 가는 게 맞을 것 같아 남편한테 가자고 했다.


차가 막힐 것을 생각해서 아침을 먹자마자 출발했다.

언젠가부터 연로하신 아빠는 외식을 부담스러워하신다.

귀찮고 싫다고 하셨다.

드시고 싶은 거나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을 포장해 가거나 준비해 가서 차려드리고 있다.

누룽지 오리 백숙을 좋아하셔서 주문하려고 했는데 며칠 전에 언니가 삼계탕을 사다 줘서 드셨다고 싫다고 하셨다.

오다가 시흥에서 갈비탕을 포장해 오라고 하셨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갈비탕이다.

꼭 그 집 갈비탕만 드신다.

어버이날이라서 할머니 집에 가야 한다니까 아들이

"그럼, 꽃집에 들러야겠네. 할머니 꽃 좋아하시니까."

라고 해서 꽃집에 주문을 하려고 했는데 꽃집이 10시에나 문을 연다고 했다.

엄마집 근처에서 카네이션은 사기로 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고 연휴라서 차가 밀렸다.


갈비탕을 포장해서 엄마집에 도착하니 점심때가 다 되었다.

아들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엄마가 벌써 왔냐며 엄청 반기셨다.

아빠도 우리가 오는 소리에 거실로 나오신다.

그새 더 늙으신 얼굴이다.

아들을 안아보며 주름이 가득한 얼굴에 아이같이 천진한 미소를 띠신다.

엄마는 밥을 안친다고 난리다.

천천히 하라고 해도 혼자 바쁘시다.


포장해 간 갈비탕을  끓여서 다섯이 식탁에 앉아 점심을 먹는다.

엄마는 아들과 내가 좋아하는 게장을 담가 놓으셨다.

우리가 온다고 하니 시장에 가서 꽃게를 사다가 손질해서 만들어 놓으신 거다.

우리 엄마표 게장은 내가 상품으로 출시하고 싶을 정도로 특별하다.

끓인 간장을 붓고 양념장을 만들어 무치는데 식당에서 파는 게장보다 100배는 맛있다.

내륙 출신인 남편은 해산물이나 회를 먹고 자라지 않아 그런 류를 잘 못 먹었는데 나와 결혼을 하고 우리 집에서 자주 먹으면서 그 세계의 맛에 눈을 떴다.

지금은 환장을 한다.

아들도 어릴 때부터 먹여서인지 회든 해산물이든 갑각류든 뭐든 다 먹는다.


아들이 게딱지에 밥을 넣어 비벼 먹는다.

"역시 게장은 밥도둑이지!"

하면서 밥 한 그릇을 뚝딱한다.

갈비탕도 맛보라고 주니까 잘 먹는다.

아빠, 엄마는 잘 먹는 아들을 보며 너무 흐뭇해하신다.

아들이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할머니께 드렸다.

자기 용돈을 모아서 샀다고 한다.

사실 내가 계산을 했지만 그렇게 말하라고 했다.

엄마는 너무 좋아하신다.

듬뿍 넣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용돈 봉투도 드렸다.

고맙다고 하신다.

아빠가 아들에게 어린이날이라고 사고 싶은 걸 사라면서 용돈 봉투를 주신다.

이에 질세라 엄마도 아들을 불러 용돈을 주신다.

아들은 완전 신이 났다.


과일을 먹으면서 엄마가 좋아하는 윷놀이를 했다.

저녁을 먹고 가라고 하신다.

아들이 뭐 먹을 거냐고 해서 점심때 먹은 반찬 먹어야지 했더니 싫단다.

치킨을 시켜달라고 한다.

부모님은 소화가 안된다고 치킨을 안 드시고 밥을 드시겠다고 한다.

아들이랑 남편은 치킨을 먹고 우리 셋은 밥을 먹었다.

엄마가 가는 길에 언니네 들러 오이김치를 전해 주라고 하신다.

저번에 엄마가 오이김치랑 알타리를 담가 주셔서 우리는 가져가서 먹고 있다.

바빠서 들르지 못하는 언니네를 위해 오이김치를 또 담아서 전해주고 싶으신 거다.

저녁을 먹고 남편이 설거지를 했다.


차를 한 잔씩 마시고 엄마집을 나온다.

두 분이 3층 계단에 서서 우리를 배웅해 주고 계신다.

아들이 방학 때 온다고 잘 계시라고 인사를 한다.

나는 빗방울이 떨어지니 어서 집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알았다면서도 계속 서서 우리가 1층으로 내려와 차에 탈 때까지 쳐다보고 계신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자주 오는 편인데도 헤어질 때마다 저렇게 자식이 가는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으려고 하시는 두 분의 마음에 나도 애틋해진다.

자식의 뒷모습에서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는 게 부모의 마음이고, 그런 부모의 모습에 쉽게 발을 못 떼게 되는 것이 자식의 마음이다.

나는 이제 부모의 마음도 자식의 마음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나이를 먹어서야 그 마음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부모님은 특별한 무언가를 바라시는 게 아니라 그저 아들 얼굴 한 번 더 보여드리고,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시는 걸 가장 좋아하신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은 경제적 능력이 있으셔서 용돈을 많이 주는 것도 원하지 않으신다.

받은 것은 꼭 아들이나 나한테 돌려주시려고 한다.

그냥 이렇게 평범하고 소소한 걸 같이 하는 걸 좋아하신다.

그런 부모를 둔 나는 정말 복이 은 사람이다.


운전을 하면서 생각해 보니,

오늘 그 말을 못 해 드렸다.

평상시엔 곧잘 하는데...

"엄마, 아빠 사랑해요!"

어버이날에 전화로 해 드려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어린이날엔 막국수 아닌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