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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추자 Sep 26. 2023

가운데 손가락을 보다가

오른 손 가운데 손가락, 중지 - 왜 하필 가운데 손가락인지 참 공교롭다. - 거기에 얼핏 보면 쥐며느리 같이 생긴 흉터가 있다.

초등학교 2,3학년쯤 동네 공터에서 불장난을 하다 생긴 흉터다. 참 불장난을 자주 했다. 요즘은 일반 성냥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지만 집집마다 풍로, 곤로를 쓰던 우리 동네에서는 성냥 구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팔각성냥 한 통이면 불장난을 실컷 할 수 있겠단 생각에 맘이 든든했다.

동네 잡다한 쓰레기가 나의 땔깜이 되었는데 그 중 화력이 좋아 자주 태워졌던 것이 다름아닌 요구르트 병이었다. 그렇다.  밑둥을 이로 뜯어 그 곳을 빨아 먹으면 더 맛있었던 그 요구르트 병이다. 요놈을 불쏘시개로 쓰던 막대기에 주둥이를 꽂아 불을 살살 붙이면 마치 성화나 횃불처럼 쳐들수 있었는데 이게 나름 재미있다. 그러던 어느날, 횃불을 만들어 보고자 불붙은 요구르트 병이 있는 막대기를 휙~ 하늘 높이 쳐들었다가 사달이 났다.  

일찍이 노동자의 자식으로 태어나 노동 해방의 일선에 서있던 많은 동네 아재들을 봐 온 바 제법 각잡힌 동작이었지만 횃불이 되어 활활 타줄거라 믿었던 요구르트 병은 마치 늙은 여인의 젖가슴처럼 주르륵 흐르더니 내 손가락에 붙어 용암이 되어 버렸다. 뜨거웠다. 쓰라렸다. 아니 아주 놀라웠다. 뜨거움인지 쓰라림인지 느끼기 힘들만큼 놀란 나는 연신 손가락과 팔을 흔들어 제꼈다. 얼마나 흔들었을까. 조금은 통증이 덜하여 손가락을 가만히 쳐다봤더니 눌러 붙은 플라스틱이 새카맣게 변해있었다. 후후 입바람을 불며 조심스럽게 털어냈더니 그 플라스틱 조각은 떨어져 나갔고 그 자리에는 벌겋게 피부가 벗겨진 화상만 남았었다.

그날 저녁 엄마한테 직살나게 얻어 터지고 바세린을 듬뿍 발랐던 기억은 있는데 따로 병원을 가거나 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곤 지금까지 내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엔 그 흉터가 남아 있다. 쥐며느리같이 생긴 그 흉터가.

상처가 생기면 아물기는 해도 그 흉터가 남는다. 흉터를 보면 다친 그 날이 떠오른다. 몸에 남은 상처에 대한 흉터뿐 아니라 맘에 생긴 상처 그리고 흉터 또한 마찬가지다. 아물기는 해도 흔적은 남기 마련이다. 약해 보이기 싫어서 강하고 의연해 보이려고 그 상처를 애써 이기려 견디려 했던 시간이 있다. 생각해보니 참 부질없었다. 괜찮지도 않고 안 아프지도 않고 힘든건 마찬가지였다.

아플 땐 아프자. 아파죽겠는데 개뿔 무슨 씩씩한 척이냐. 내가 아픈 모습을 보여야 곁을 내주는 사람들도 보인다. 무슨 상처가 생겨도 멀쩡한 놈에게 누가 관심이나 갖겠는가. ‘와! 대단하다. 넌 그걸 어떻게 견디니’ 정도로 그 순간 경외의 눈빛을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 내곁에 남을 사람은 아니더라. 하지만 내 상처를 보고는 힘든 내 곁에서 눈을 마주보며 등을 토닥이고 어깨를 내어주며 따뜻하게 포옹해주던 그 사람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더라는 것이다.

상처가 있다면 애써 숨길 필요 없다. 훗날 그 상처의 흉터를 보며 후회하고 싶지 않다면 상처를 드러내고 치료하자. 내가 어떻게...라고 생각할 필요 없다. 혼자 해결할 일이 아니다. 몸이든 맘이든 치료 전문가인 전문의에게 보이는 것도 좋겠고, 가족에게 친구에게 연인에게 보이는 용기를 가져 보자. 치료 혹은 치유라는 것은 상처를 보여야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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