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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추자 Oct 19. 2023

혼자서 밥 먹다가 엉엉

귀한 사람에게…

요리를 곧잘 하는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취 경력이 무려 20여년이고 어려서부터도 필요한 건 스스로 해먹는 편이었다. 첫요리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9살, 초딩 2학년 때. 그때는 우리 집 부엌이 연탄 아궁이었는데 연탄 아궁이에 끓인 라면이 나의 첫 요리였다. 계속 머리를 들이박고 라면과 연탄불을 번갈아 보느라 볼이 벌겋게 달아 올랐던 기억도 난다. 그 매캐한 연탄가스 냄새와 라면 국물의 짭쪼롬한 냄새가 섞인 그 냄새 또한 잊을 수 없다.

내가 한 대부분의 요리는 내가 먹기 위한 것이었다. 혼자 산 시간이 많다보니 당연한 것일텐데 그야말로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요리를 했고 그렇게 때우듯이 밥 먹는 것이 익숙했다. 혼자 밥을 먹다보면 밥과 국, 반찬 가짓수를 챙겨가며 먹기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결국 냉장고에서 나왔다 다시 들어가야 하는 반찬통의 가짓수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자연스레 이어지고 그러다 보면 대충 비비거나 볶아 먹는 경우가 다반사다. 비비거나 볶은 밥을 또 상이나 식탁에 가져가는 것도 그 얼마나 비효율적인 행위인가. 자연스레 볶은 그 자리, 가스 레인지 위나 먹고 가져가야 할 싱크대 옆이 나의 식탁이 되었다.


싱크대 앞에서 벽을 보며 욱여 넣는 나의 볶은밥 혹은 비빔밥은 대부분 참말로 맛이 있었다.  밥과 반찬 그릇을 들고 냉장고에서 상으로 상에서 냉장고 혹은 싱크대로 옮겨다니는 에너지와 시간 낭비가 없으니 경제적일 뿐더러 또 필요한만큼만 덜어내서 냄비에 옮겨 담아 볶거나 비비니 음식물 쓰레기가 남지 않는 장점이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 애기가 나와서 말인데 혼자 살 때는 음식물 쓰레기 봉투, 음쓰봉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남길만큼 요리를 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약간 애매하게 남았다치면 그대로 다 먹어치웠으니 음쓰가 나올 여력이 없었다. 왕이 남긴 음식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수랏간 궁녀가 있는 궁에 사는 왕이 나였다면 그 수랏간 궁녀들은 자동 다이어트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암튼 이 또한 내 위가 커서라기보다는 그 애매하게 남은 음식물 쓰레기를 위해 음쓰봉을 사야하고 그 음쓰봉이 찰 때까지 기다려 버릴 수 있는 공간까지 가서 처리해야 하는 그 소모적인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기 위한 행위였다.  


식사에 있어서의 나의 이런 경제적(?)인 행위는 결혼과 동시에 제동이 걸렸다. 아내는 달랐다. 그녀는 어떤 경우에라도 밥상에 밥을 차렸다. 밥그릇, 국그릇, 반찬 그릇 다 따로였다. 반찬 그릇은 그 반찬이 조림인지 볶음인지 무침인지에 따라 달랐고, 탕이나 전골이 밥상에 오를 때는 앞접시와 작은 국자가 함께 상에 올라왔다. 결혼 초 ‘신혼이니까 그러겠지. 본인도 귀찮아지면 계속 이럴 수는 없을거야’라고 생각했지만 결혼 십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녀는 그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물론 밥상을 차릴 때 나도 거들어야 해서 종종 대충하자고 얘길하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되려 째려 본다. 그럴 땐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오금이 저려온다. 자연스레 그녀의 명을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혼자 있던 날이었다. 저녁 시간도 다가 오고 때마침 출출하기도 해서 냉장고를 열어 봤더니 딱히 비비거나 볶을만한 재료가 보이지 않았다. 여기 저기 뒤적이다가 컵라면을 발견하고는 예전 결혼 전처럼 싱크대 앞에 서서 호로록 먹었다. ‘약간 모자란데? 밥을 말까?’라는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밥솥에서 밥을 푸고 있는 나였다.


그 순간 띠로리~~ 현관 문이 열리고 아내가 들어왔다. 밥솥앞에서 주걱과 컵라면 용기를 들고 있는 나를 본 아내는 “또 서서 먹었어? 식탁에서 먹지~ 왜”라며 팔을 걷어 부치고는 나에게로 다가 왔다. 주걱을 뺏어 들고는 밥통을 보며


“이 많은 걸 다 먹어? 라면도 이미 먹었구만”


그 말에 뭔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나는 세상 나쁜 짓을 하다 걸린 아이처럼


“아니… 아까워서 마저 긁어 먹으려고…”


라며 배를 긁고 있었다.


“여보~ 제발… 내가 몇 번이나 말해. 밥상 차리는거 나라고 안 힘들겠어? 그래도 자기가 귀한 사람이었으면 해서 귀하게 대접 받는 사람이라 생각들게 해주려고 차리는거야. 그런데 왜 그렇게 밥을 먹어. 그리고 음식 아깝다 생각말어. 자기 몸이 훨씬 더 아까워. 그러니 음식물 쓰레기 나온다고 박박 긁어 먹지 말고 남겨. 그 정도는 남겨도 돼”


푸념인듯 잔소리인듯 한껏 속상한 표정으로 말하고는 그녀는 씻으러 들어갔다.


들고 있던 밥주걱을 슬며시 내려놓는데 울컥 목구멍에 뭔가 차오르는 느낌이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그 어떤 산해진미와도 견줄 수 없는 진한 감동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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