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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Sep 30. 2024

너의 삶을 살아라

이李씨(이하 이): 아버지가 영웅인 소년의 삶은 어떨까? 

정작 자신은 아버지의 기억이 전혀 없는데, 아이가 만나는 어른들은 아버지를 기억하며, 아이에게 아버지 얘기를 하지. 


그러면서, '너도 언젠가는 아버지처럼 영웅이 될 것이다'며 아이가 아버지를 닮기를 바라고. 


점선면(이하 점): 두 가지 단어가 떠오르는데, '그리움'과 '두려움'.

사람들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만나보지 못한 자신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내가 과연 사람들의 기대만큼 아버지를 닮은 남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 여기, 전설적인 투우사였던 후안 올리버Juan Olivar의 아들 마놀로 Manolo 올리버가 있어. 

아버지는 스물두 살이라는 젊은 나이, 마놀로가 세 살이던 해에 투우를 하던 중에 황소의 공격을 받고 세상을 떠났어. 


스페인에서 남자가 투우를 시작하는 최소 나이가 열두 살이었으니까, 십 년을 투우장에서 영웅의 칭호를 받을 만큼의 활약을 한 거지. 스물두 살이면 누군가에게는 막 성인의 인생이 시작되는 나이란 걸 생각해 보면 

너무 이른 죽음이었다고 할 수밖에. 


마놀로는 이제 열두 살이 되었고, 투우사로서 살아가기 위한 준비과정에 들어가지. 

하지만, 늘 언제나 그에게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 

그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마놀로 올리비아가 아니라 후안 올리버의 아들이야.

그에게 투우에 대한 사랑, 열정, 기술은 본인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어. 피 속에 흐르고 있을 거란 주변의 기대로 지워진 부담일 뿐. 


: 이제 열두 살, 이른바 어른들의 목소리를 대항해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춘기의 시작이잖아. 마놀로가 진정 투우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느 시점에서든지 마놀로는 주변의 기대를 부수더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의 걸음을 선택해야 할 것 같군. 


: 어느 날 마놀로도 인생을 뒤흔들만한 떨림과 소명을 발견하는 순간을 만나. 그렇게 보면, 어린 영혼들이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듣느냐는 정말 중요한 것 같아. 


세상의 필요와 나의 즐거움(헌신)이 만나는 곳이 곧 소명의 자리라고 하던데, 마놀로가 소명에 이끌림 받도록 안내해 준 사람은, 외과의사였어. 

그는 스페인사람들이 열광해 마지않는 투우. 그 행위가 가지는 어리석음과 해악을 말해주지. 

물론, 소설은 투우를 폄하하는 소설을 절대 아니야. 

어찌 보면 잔혹하게 보이는 투우를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유를 아름답게 풀어내기도 해. 

죽음이라는 공포를 넘어서는 인간의 투지를 찬양하고, 

강력한 생명력으로 죽음을 향해 돌진해 가는 황소들의 움직임과 힘을 찬양하는 면이 있어. 


주인공 마놀로는 투우보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료행위에 매료되었어. 더군다나 투우로 생긴 외상을 고치는 의사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자신이야말로 나이 많은 외과의사를 이어 상처 입는 투우사들을 돌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지. 그리고, 마놀로보다 나이가 많은 후안 Juan는 투우에 대한 진실한 사랑, 진정한 헌신의 준비가 되어있음을 알았기에, 마놀로는 그를 위해서 소년영웅으로 투우장에 서는 기회를 양보해.


이제, 두 사람은 각자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향해 나아갈 거야.


소설은, 그 마지막의 깨우침과 결심까지를 잔잔히 따라가면서 마놀로와 엄마, 마을 사람들, 투우에 삶을 건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 투우를 좋아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내가 직접 투우장으로 걸어 들어갈 일도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는 투우장의 모습과 그 느낌을 누군가는 다르게 느낄 수도 있다는 걸, 그것을 내가 평가할 일은 아니란 것은 알았네. 


책은 오래전에 출판되었지만, 청소년소설이며, 소재가 우리나라에서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되었는지, 번역서로 소개된 적이 없어. 

2024년을 사는 스페인 사람들과 투우사들의 삶은 어떨지, 아마 이 책이 나온 1960년대와도 많이 달라졌겠지?


하지만, 오늘날도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욕망을 살아내야 하는 청소년들이 있다면, 이 책은 분명 그들에게는 

위로와 도전이 될 것 같아. 

이 한마디를 전할 수 있기를 바라.

'너의 인생을 살렴.'


오늘의 책은 'Shadow of a Bull'입니다. 청소년소설이라 분량도 가볍고, 문장과 어휘도 쉬워서 쉽게 한 권을 읽어내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중간중간 스페인어들이 등장하는데, 책 뒤편에 각 단어마다 영어 해설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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