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李씨(이하 이): 책 뒤에 작가의 말이나 작가와의 대화, 토론을 위한 질문들을 빼놓지 않고 읽거든. 그래서 알게 되는 재미있는 점들이 꽤 많아. 질문 하나마다 나의 의견을 다 생각해 보는 건 아니지만, 질문을 읽는 것만으로도, 소설의 시사점을 파악해 볼 수 있어서 재미있고.
이제까지 읽었던 작가와의 대화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책이었어.
소설도 인상 깊지만, 작가 John Green과의 대화로 소설 쓰기 작업의 숨겨진 일면을 보았다고나 할까, 왜 멋진 공연도 감동을 주지만, 무대 뒤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 더 내밀한 차원을 경험하는 기분처럼. 영화 메이킹 필름도 재미있지.
점선면(이하 점): 그럼, 이 씨를 가장 매료시킨 질문 혹은 답 세 가지만 골라서 공유해 주라.
이: 27개 질문과 답 중에서 이렇게 골랐어.
1) 사람으로서 알래스카 Alaska를 좋아하는가?
작가는 좋아한다고 했어. 자신은 사람들이 덜 좋아하는 유형의 사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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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인 나는, 현실 세계 속 내 동급생 알래스카를 가까이 두지 못할 것 같아. 성격상 나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인데, 이렇게 소설로는 그 삶을 들여다보니, 이게 소설 읽기의 재미 아니겠어?
기숙학교에서 명성 있는 여학생. 즉흥적이고, 충동적이고, 반규율적이고, 장난으로 난처하게 만들기 좋아하고, 지나치리만큼 자유분방하고. 아휴, 내가 감당하기 힘든 인물이야.
강한 호기심은 느끼겠지만, 예측이 어려운 인물을 가까이 두는 것이 나에게 스트레스 요인이니까. 아마 이런 나에게 알래스카는 둔하고, 딱딱하고 고지식하고 재미없다는 인상을 받겠지. 자신의 악동짓에 동참하려고도 하지 않으니까. 우리는 가까워질 수 없는 거리를 둔 채 학교 생활을 할 것 같아.
2) 처음 글을 시작할 때 알래스카가 죽을 것을 알았는가, 아니면 글을 쓰는 과정에서 깨달았는가?
처음 소설은 소년의 죽음을 소녀인 화자가 말하는 것이었는데, 글을 쓰는 과정에서 완전히 바뀌었다고 해.
알래스카의 죽음을 중심으로 전반부를 000일 전, 후반부를 000일 후라고 세팅하는 것도 글을 쓰는 과정에서 주변 지인들의 조언으로 바뀌게 된 것이고. 독자들이 정신을 놓치지 않도록 연대기적 구성을 하도록 고쳤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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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 전체를 후루룩 넘기면서,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보는 습관이 있거든. 챕터를 숫자로 달았는지, 제목으로 달았는지, 파트를 나눴는지, 나눴다면 몇 파트로 되는지, 파트마다 제목은 어떻게 달았는지... 이런 걸 보는데, 이 책은 특이하게 두 개의 파트로 나눠졌는데 하나는 Before 나머지 하나는 After로 되어있고 중간 지점을 기준으로 첫 챕터는 one hundred thirty-six days before 136일 전, 마지막 챕터는 one hundred thirty-six days after 136일 후로 되어 있어. 완벽한 대칭구조, 아 좋다!
편집자들이 작가들에게 작품에 대해서 관여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런 방식의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그의 편집자와 멘토의 생각들이 반영되고 작품이 발전하는 것이 재미있었어.
3) 마일스 Miles의 성, 홀털 Halter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가?
Halt her.
작가가 위와 같이 두 단어로 답했어. '그녀를 멈추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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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예요, 작가님! 너무 기발한 거 아니에요? '라는 탄성이 나오더라.
책의 뒤표지의 표제어가 다음과 같아.
First drink. First Prank. First friend. First love.
특별할 것 없는 무색무취무해의 존재였던 남자주인공 마일스 홀터 Miles Halter가 기숙학교에 편입하고 나서 알래스카라는 여학생을 만나면서 경험하는 것들이거든.
점: 그럼, 학원물이네. 금딱지(마이클 프린츠 상)까지 받을 걸 보니, 학원가에서도 반응이 좋았을 것 같네.
이: 거기에 반전이 있어. 등장인물들이 우리나라 학제로 고등학생들이야. 만 12세 미만을 대상으로 하는 꿈과 희망과 사랑을 주제로 하는 건전소설의 색을 벗었어. 이제 과도기 어린 성인들이잖아.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기숙사 규칙을 어기고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과한 장난(타인의 안전을 침해하는 위협)을 하고, 성행위를 하고, 마약도 해. 한쪽에서는 청소년들을 위한 필독도서가 된 반면, 한쪽에서는 청소년에게 해롭다고 금서가 되었다는 아이러니.
그럼, 나는 어느 편에 설건가?
추천: 사춘기 청소년의 우정, 사랑, 상실, 인생과 죽음에 대한 성찰 그로서 자아가 확대되고 성장하는 경험을 다루었음.
비추천: 마치 비행과 일탈이 사춘기 청소년이 추구하고 누릴 수 있는 의미 있는 경험으로 미화. 이런 자극은 청소년독자들에게 비행과 일탈을 장려할 수도.
소년시절로 돌아가 독자가 된다고 하자.
이 소설의 인물들에게 매료되면 하루하루 평범하고 건전하게 살아가는 일상이 마치 지루하고 단조롭고 별 볼 일 없는 것처럼 느껴질 것 같아. 물론 그렇다고 독자들이 전부 비행과 일탈 행위를 하지는 않겠지만, 나름대로 가지고 있던 도덕적 기준이 하향할 것 같긴 해.
성인독자로서, 이 시기를 지나는 아이들이 경험할 수도 있는 이런 일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돼. 다만, 이 소설은 알래스카의 죽음이라는 극적인 사건 때문에 등장인물들이 겪어야 하는 혼란과 죄책감이 평범한 청소년들의 삶에는 흔치 않은 경험일테지만.
어쨌거나 인생에서는 모호하며, 답을 알 수 없고, 답답하고, 헤매는 듯 하나, 결국은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 시간들을 만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책으로 경험해보는것들이 의미가 있지.
우리나라 유교 정서상, 청소년독자들에게는 추천하지 못하겠으나, 청소년기 학생들을 상대하는 직업군에게는 권하고 싶은 정도로 결론을 맺을게.
점: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성인들도 많잖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고.
소설책을 읽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어?
이: 이 책에서 아주 인상적인 구절을 만났어. 얼마나 재미있던지 저녁을 먹다가 가족들에게 소개해 줬어.
'만약 사람이 비라면, 나는 부슬비이고 그녀는 허리케인이다.
If people were rain, I was drizzle and she was a hurricane.'
작가와의 대화에서 밝혔는데, 작가가 그 문장을 삭제하려고 하다가 편집자가 그냥 두자고 해서 남겨뒀다고 하더라.
그리고 대문자로 이렇게 덧붙였어. BOY, WAS SHE RIGHT.
소설이란 그런 거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를 생각하고, 내 주변의 인물들을 생각하고 알게 되는 거. 자기 이해와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훈련과 연습.
보이는 것 이면에 보이지 않지만 그 사람을 구성하는 그의 역사와 정서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상대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나 아닌 타인의 깊은 정신, 정서의 상태를 경험하는 것. 내가 경험했던 것을 다시 떠올릴 수 있고,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을 상상하면서 그 정서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
세상 좋다는 유명한 관광지와 맛집 여행에는 그다지 흥미를 못 느끼는 나는,
보고, 먹고, 듣는 감각을 즐기기보다는
사람의 깊은 내면으로 떠나는 여행, 거기서 타자의 감각을 느껴보는 것을 더 즐기기 때문이란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