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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Jun 03. 2024

사악한 뻥튀기

이李씨(이하 이): 위키드 wicked라는 소설에 대해 말해볼까 해.

제목의 뜻 자체가 '사악한'인데, 원서 읽기 난이도도 나에게는 사악했지.


미국 페이퍼백paperback 소설은 중량이 가벼운 반면, 글씨가 깨알 같은 경우가 많은데, 침침해지는 시력으로 간신히 읽은 데다가 작가의 세계관이 비현실적 인물, 상황, 사건이다 보니 제대로 내가 이해했나 하면서 어렵게 읽어갔거든. 독서모임의 숙제가 아니었으면 분명 중단했을 것 같아.


아들이 동명의 뮤지컬 '위키드'가 좋다며 우리말 위키드를 샀는데, 집에 들어온 번역서의 분량을 보고, 또 한 번 놀랬네.

손바닥만 한 원서 한 권이 무려  여섯 권으로 부풀려져 있어서.

이 많은 분량이 어떻게 몇 시간짜리 뮤지컬에 다 들어가나 싶었어.


점선면(이하 점): 작가가 제목에 위키드 wicked를 쓴 이유는 이 씨가 경험한 사악함때문은 아닐 텐데, 어떤 의도인 것 같아?


: 표지를 봐, 초록색 피부에 까만 망토와 기다란 모자, '오즈의 마법사 the Wizard of Oz'를 아는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는 사악한 서쪽 마녀인걸 단번에 알 수 있지.

도로시 Dorothy의 은빛구두를 빼앗기 위해서 계속 도로시와 친구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서쪽나라를 어둠의 마법으로 지배하는 심술궂고 못생긴 마녀말이야.


그런데, 서쪽 마녀의 이름을 뭘까? 어쩌다가 초록색 피부로 태어났을까? 그리고 처음부터 그녀는 그렇게 사악한 마녀였던 걸까?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또 다른 마녀들, 착하고 아름다운 마녀 글린다 Glinda와 도로시의 집에 깔려 숨진 먼치킨 나라의 마녀는 어떻게 살아온 걸까? 그들의 관계는 어떤가?


오즈의 마법사에서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들의 비하인드스토리를 작가의 상상력을 만들어내서, 기존에 알고 있던 마녀들에게 다른 캐릭터를 입혀놓았지.


: 그럼, 이건 도로시가 도착한 오즈라는 마법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인 거구나!


: 그래,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학교기숙사에서 지내면서 마법을 배우서 능력치에 따라서 마법사, 마녀가 되는 건데, 젊고 어린 나이의 인물들이니 그 안에서 우정도, 사랑도 배우고, 학교라는 공간으로 들어오는 공권력, 정치적인 개입도 경험하며 이 세계의 인물들도 성장을 하는 거야. 각자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고, 시련도 경험하면서.


뮤지컬이 원작보다 몇 배나 더 명성을 얻고 잘 알려졌는데, 뮤지컬은 앞서 말한 무난한 우정과 사랑과 성장 정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직접 보지 않아서 실상은 모름)해.  소설은 뭔가, 어둡고 불편한 무엇이 지배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일단은 엘파마의 출생에 대한 석연치 않음.

피부색이 다른 데서 오는 이질감과 사회적인 차별과 편견.

엘파바가 들어간 학교의 교수 중 염소 교수가 있는데, 동물들도 말할 수 있던 사회에서 동물들의 언어발화에 대한 금지령이 내려지고.

동물들의 권리를 높일 수 있는 계기는 결정적 인물이 살해되는 것으로 사라지는 불의함.

엘파바 사랑 노선의 문제, 죽음으로 인한 이별.

엘파바 동생의 장애, 괴팍한 성품과 그로 인한 통치체제의 문제,

도로시와 조우. 그리고 너무도 잘 알려진 물에 녹아 사라지는 죽음까지.


작가가 교수님이라서 그런지, 사건도 상황도 인물들도 참 쉽지 않았어. 어둡고 냉소적인 분위기.

뭐 이런 쓰레기 같은 경우들이 있나 싶은 설정.

오즈의 마법사 영화에 나오는 서쪽 마녀는 아무런 설명 없이 그저 '나쁜 마녀'였는데

소설 속에서는 엘파바가 어쩌다가 '서쪽의 나쁜 마녀'로 불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가공할만한 스토리텔링으로 이야기 속을 넋을 잃고 헤매게 만든 기분이랄까.


에잇, 이 소설 자체가 사악했다!

조금은 편하게 단순하고, 즉각적인 즐거움을 찾는 독자들을 조롱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잖아.


: 그렇다면, 이런 소설을 가지고, 대중이 호응하는 뮤지컬을 만들어낸 창작자들은 정말 천재라는 생각이 드네. 대중이 싫어할 요소는 다 쳐내버리고, 좋아할 만한 것만 취사선택해서 재가공하는 능력이라.

언제 기회가 되면 뮤지컬을 관람할 생각인가?


: 흠, 나에게 이런 씁쓸한 기분을 남겨준 소설 원작을 아는데, 즐겁고 흥겨운 기분에 해피엔딩으로 끝나버리는 뮤지컬을 보는 것도 별로.

엘파바, 어찌 보면 남보다 더한 시련을 겪은 비운의 여주인공이기에, 그 사연을 마음에 담은 것으로 끝내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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