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으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소설가 한강님.
2016년 소설 '채식주의자'로 영국의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에, 한국어 원작이 아니라
영어 번역본을 먼저 읽었다.
그 후에, 이 소설을 영어로 번역한 번역가가 원작 작가 한강와 같이 맨부커상을 공동 수상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번역에 대한 공로를 인정해 주는데 대한 작은 감동을 느꼈더랬다.
번역,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를 내가 논할 자격이나 있나 모르겠다.
대학 때 전공이 영어영문학이었던 나는 우리말 소설도 무척 사랑했으므로, 자연스레 번역에 관심을 가졌고
그때 안정효 님의 번역 관련 서적을 몇 권 사서 읽었다.
그리고, 그 섬세하고 아름답고 고되고 외로운 일을 나는 잘할 자신이 도무지 나지 않았다.
온전한 헌신과 열정이 아니고서는 걸어 나가기 힘든 일이라는 것만을 확실히 배웠다.
2016년 내가 영어로 만난 '채식주의자'는 문장이 분명하게 다가오지 않고, 어렵고 모호할 때가 있었다. 그건 번역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나의 영어어휘, 이해력의 부족일 것이라 생각한다.
소설이 가진 분위기와 주제와 문장들이 생소하고 낯설기는 우리말 원작을 시간차를 두고 읽었을 때도 그러했다.
그러니, 이국의 언어로 된 채식주의자를 나는 어느 만 큼 이해하고, 작가의 세계에 닿았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저 기묘함과 불편함을 가진 채, 끝을 향해 한 발 한 발 고행의 발자국을 내딛듯이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수행하듯이 넘겼었다.
원서를 읽어가다가 잘 모르거나 이해가 안 되는 표현이나 문장을 만나도 그 부분을 붙들고 늘어지기보다는 전체적인 흐름과 맥락대로 속도감을 유지하면서 읽어나가는 편이다.
그런데, 번역이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머릿속에 어떤 심상은 떠올랐을지라도, 우리말 문장으로 치환이 가능하더라도
그 표현이 가지는 미묘한 색채를 온전히 전하기 위해서
단어의 순서, 단어의 선택, 조사의 한 끝, 문장의 구조까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 번역 아닌가.
그러기에,
오는 날 한강님의 노벨상 수상에는 질 높고 문학적인 좋은 번역가의 역할은 너무도 중요한 요건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2024년 10월 13일 자 보도에서 '채식주의자'를 번역하여 한강의 작품을 세계에 알린 영국인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덧붙여,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페이지 모리스, 이예원 두 번역가의 공동번역인데,
모리스는 "노벨 문학상에 대한 대화의 전면에 번역가를 내세워 준 언론인들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소셜 미디어에 올렸다고 했다.
나의 무지와 둔감함 때문인지 정작 여기 한국에서는 번역가에 대한 관심은 깊고 뜨겁지 않은 듯하다.
아마, 번역의 길을 걷기로 작정한 이들이라면 이미 세상의 찬사와 인정과 영광에서 초월한 이들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여기 오늘 나의 존재가 그들에게 가 닿지 않더라도, 감사와 경탄의 마음을 이 글에 표하고 싶다.
다른 언어, 다른 세계
하지만 그 둘을 연결하는 다리 놓는 사람들
당신들이 있기에, 낯선 이방의 세계를 보고 듣고 읽습니다.
감사합니다.